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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적 측면에서 본 목회자와 교회 재정(2015/11/12)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세미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우리나라가 근대국가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사역을 통해 복음을 접한 초기 한국교회는 학원 선교를 통한 문맹퇴치와 계몽운동, 의료선교를 통한 치유사역, 문화발달과 적극적인 독립운동 등을 통해 한국사회가 근대화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후 한국교회는 양적 성장을 거듭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고, 선교대국으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런 한국교회가 처해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경원의 대상이 되어 버렸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교회에 실망하고 등지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필자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 재정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교회 재정 문제의 중심에는 목회자가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의 윤리의식을 함양함으로써 재정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한국교회를 제자리에 세우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교회 재정의 문제점

1) 교회간의 격차

우리나라는 6,70년대 산업화로 말미암아 사회구조가 급변했다.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군사 정부는 저곡가정책으로 농어촌의 인력을 도시의 값싼 노동력으로 유인했고, 이로 인해 농어촌의 젊은이들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인구 이동으로 도시가 비대해지거나 신도시가 생겨났지만, 상대적으로 농어촌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왜소화되고 위축되었다. 이에 따라 농어촌 교회는 왜소화되었고, 반면에 도시에는 일명 ‘대형교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결국 대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대형교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농어촌 교회의 성도들이 도시로 유입되면서 빚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 형성된 대형교회는 목회자들의 탁월한 설교와 리더십에 기인하는 바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산업화로 얻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대형교회는 농어촌의 소형교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의 중대형 교회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유입 인구로 채워지는 동안, 농어촌 교회들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는 자각에 미치지 못하고 책임감을 갖지 못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농어촌 교회와 도시의 영세 교회 등은 재정 자립이 어려울 정도로 어두운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중대형 교회가 소형교회와의 연대의식을 가지고 함께 공존하는 것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바램이 무색하게 교회 성장을 이루어낸 목회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치 자신의 ‘신령한’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 것이라고 여기고, 심각한 윤리 문제를 노출하고 말았다. 이러한 일이 거듭되면서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여론을 초래하였고, 그 피해는 다시 농어촌 교회 등 소형교회로 전가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2) 예산과 집행의 균형

일반적으로 교회마다 매년 연말당회를 통해서 다음 해의 목회 계획을 발표한다. 그런데 그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산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떤 목회 계획을 세우느냐에 따라 예산 집행의 방향이 결정된다. 교회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통계에 따르면 교회의 재정지출 현황 가운데, 운영비와 사례비, 부채상환비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 반면에, 교육비, 선교비, 구제비 등의 비율은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다. 한 교회의 예산이 어떻게 쓰여지는가를 살펴보면 그 교회의 목회 방향과 신앙의 척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예산도 성경적 가치관에 따른 계획에 따라 세워져야 하며 지출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세울 때부터 선교비와 교육비는 물론이고, 구제비와 사회봉사 그리고 영세교회와 농어촌 교회를 섬기는 일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도시의 중대형 교회가 농어촌 교회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연대하기 위해서는 이를 예산에 필히 반영하여 함께 하나님의 선교 사업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도 이러한 취지로 오래 전부터 농어촌 혹은 도시의 영세교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해 오고 있다. 또한 남녀 선교회에서 농어촌의 교회와 연결하여 지속적으로 후원하도록 함으로써 개교회주의를 벗어나 한국교회에 대한 책임감과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예산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구제비의 규모를 확보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예로 들면, 연말에 크리스마스 헌금 전액을 불우한 사람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이는 교인들로 하여금 주님이 인류를 구원하러 내려오신 의미가 사람을 살리고, 이웃과의 나눔에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예산 집행에 있어서도 공개적이고 납득할 만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목회 계획과 예산 계획이 세워지면 집행은 재정위원회에서 그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특별히 재정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당회의 결의로 집행해야 한다. 결코 담임목사나 몇몇 장로들의 판단에 의해 예산 계획과 집행이 좌우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예산 집행 상황에 대해 감사를 받은 다음에 제직회에 문서로 보고하고 교회 홈페이지에 공개하므로 공교회로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예산과 집행의 원칙만 잘 지켜진다면 교회 재정을 둘러싸고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3) 재정의 투명성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는 말썽이 빚어질 소지가 크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에 관해 비밀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교회의 예산과 집행에 대해서는 모든 교인들이 알 수 있어야 하고, 성도들 가운데 예산에 관해 의문점이 생길 때는 이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회 재정을 개인적으로 운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필자의 교회에서는 모든 통장과 도장은 담임목사가 보관하되, 돈을 인출할 때는 사무장이 출금전표를 가지고 와서 담임목사가 보는 데서 도장을 찍고, 통장을 가지고 가서 인출하게 된다. 모든 재정의 흐름을 문서로 남기고, 공공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또한 담임목사는 도장과 통장을 관리하되, 직접 현금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전체적 재정 현황에 대해서는 파악하되 직접 손을 대지 않음으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나 유혹으로부터 거리감을 두기 위한 것이다. 또한 3개월에 한 번씩 제직회에 보고하기 위해서 재정 감사를 받고 보고한다. 이러한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재정 문제가 단 한 건도 발생한 적이 없었다. 목회의 집중을 위해서라도 교회는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 문제에 대해 일체의 의문점이나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는 교회의 노력이 필요하다.

2. 윤리적 측면에서 본 목회자와 교회 재정

목회자의 영성은 물론 말씀과 기도에서 나오지만 그 실천은 윤리적인 재정 관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필자는 주변에서 훌륭하게 목회를 해서 존경받던 목회자들 가운데 재정 비리에 연루되어 목회의 위기를 겪는 것을 왕왕 목격하였다. 그 중에는 정말 훌륭한 목회자도 적지 않았는데 재정 비리에 휘말리면서 그동안의 목회사역 전부가 부정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목회자는 재물에 대해서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1) 목회자의 헌금생활

목회자도 일반 성도들처럼 헌금 생활을 한다. 그런데 목회자의 헌금 생활은 그 교회 성도들에게 모범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한다. 목회자가 헌금 생활에 소홀히 하면서 성도들에게 헌금의 의미를 논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최선을 다해 헌금 생활에 앞장서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재정적인 부분도 세밀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필자는 1997년 10월에 IMF로 온 국민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명예퇴직을 당한 이들, 감봉처분을 당한 이들, 자영업을 하다가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많은 성도들이 수입이 감소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목회자로서 어떻게 그들의 삶에 참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십일조가 아닌 ‘십이조’ 헌금을 통해서 성도들의 고통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것이 비록 그들이 당하는 고통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겠지만, 언제나 교인들의 경제 생활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18년 동안 십이조를 드리면서 많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필자는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의 60% 정도가 헌금과 세금으로 나가고 있다. 또한 우리교회는 전교역자와 직원들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도 세무서에 세금을 자진납부하고 있는지가 꽤 오래되었다. 2013년 교회재정세미나에서 발제한 최호윤 회계사(삼화회계법인)는 “납세는 사회공공비용의 분담이라는 차원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 의무를 이행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기에 납세에 동참한다는 조세형평성에 대한 만족도 지수를 높이며, 교회와 목회자의 언행에 최소한의 신뢰도를 부여하는 출발점이 된다”고 말했다. 가끔 목회자의 납세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가 있는데, 필자의 교회 성도들 가운데는 교회 목회자들과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납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가 이렇게 나름대로 세금과 헌금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크리스천으로서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평상시에도 훈련하기 위해서이다. 필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물질적인 유혹을 받을 때가 있다. 하지만 크리스천으로서 물질 문제에 대해 투명하고 깨끗한 삶을 사는 것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2) 목회자의 활동에서의 절제

필자는 목회를 하면서 돈에 관련하여 하나의 원칙 같은 것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그것은 목회 활동을 하면서 공사를 구분하고 특히 ‘돈에 대해 분명하자’는 것이다. 교회마다 ‘목회활동비’라는 것이 있다. 당연히 목회 활동을 하다가 들어가는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교회에서 정한 목회활동비 이상으로 지출하고 교회에 청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는 이것부터 분명히 하려고 했다. 필자도 교회에서 정한 목회활동비를 받고 있다. 외부 회의나 총회 참석,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는 등 대외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을 이것으로 충당한다. 그런데 때로는 모임이나 행사가 많아서 추가 경비가 들어갈 때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활동비 외에는 교회에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전에 교단 책임자 자격으로 외국에 가서 그 지역에 거주하는 선교사들이나 유학생 들을 초청하여 식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비도 개인적으로 처리했다. 필자는 교단장을 역임했기 때문에 가끔 해외에 가게 되면, 우리 교단 출신 유학생이나 이민 목회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는데, 이럴 경우 자비로 식사를 대접하곤 한다. 또한 제 3세계를 방문할 때는 그곳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선후배들에게 금일봉을 드리곤 한다. 이는 자칫 임의대로 사용하기 쉬운 교회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이며 투명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한 목회활동비를 비롯한 모든 예산은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교회의 사정에 따라 편성된 것이기에, 최대한 교회의 방침을 따라야지, 목회자 임의대로 지출하고 그것을 교회 경비로 충당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부흥회 강사비에 대한 처리도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가끔 부흥회 강사로 초청을 받을 때가 있는데, 부흥회에 가면 일반적으로 강사비를 받게 된다. 이런 경우에 교회 외적인 활동이라 부수입처럼 생각하고 십일조 헌금만 하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받은 부흥 강사비는 그대로 교회에 헌금해 왔다. 외국에서 부흥회를 인도할 때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부흥회를 다녀올 때 많은 경비가 발생하게 된다. 필자와 아내가 함께 가기 때문에 항공료는 상당히 경제적 출혈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역시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본인이 다 부담하고 강사비는 그대로 교회에 헌금을 한다.

필자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미 교회에서 일정한 사례비를 받고 있는 담임목사가 타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는 것 또한 우리 교회의 목회 사역의 연장선상에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부흥회 인도를 부수입의 기회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유별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주님 앞에서 물질에 있어서는 깨끗하겠다는 마음을 변치 않고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하는데, 영적인 자기관리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경건의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건의 연습 가운데 물질관리가 깨끗하면 다른 면에서도 깨끗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목회하면서 물질에 관련된 일로 두 번 실수한 일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목회 초에 경기도 도농교회라는 작은 교회에 있을 때였다. 그 교회는 1년에 14개월을 사례하는 교회였다. 즉 상여금이 200%였다. 그런데 1978년 그 당시 그 교회가 소속된 노회에서는 목회자 생활비를 상여금 400%, 퇴직적립 100%를 포함하여 17개월로 하기로 결의하고 각 교회에 통보해 왔다. 그래서 그것을 예산을 논의하는 당회에 보고했는데 당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장로님들이 듣기 거북한 말로 서로 주고받는 모습을 보고는 목회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사례비에 대해서는 언급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한 번은, 현 강남교회에서 지금부터 2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예결위원장 장로가 사무장에게 우리 교단에 속한 다른 교회의 목회자 사례 현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하더니 사무장이 가져온 자료를 보고 그게 다 거짓이라며 화를 내며 찢어버렸다는 말을 들었다. 사무장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필자의 교회가 당시 교단 내에서는 큰 교회에 속한 편인데, 담임목사의 사례비는 다른 교회보다 작다는 통계 보고를 보고 그 장로가 신뢰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 장로는 담임목사의 사례비를 좀 줄이고자 했기에 기대하지 않았던 자료를 받고 찢어버렸던 것 같다. 필자는 그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교회에서 목사 사례를 작게 주어도 전혀 불만이 없었으나 그렇게까지 해서 깎으려고 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 후, 그 장로가 새해 예산안을 보고하러 와서는 나의 사례비를 그대로 하기고 했다고 보고했다. 필자는 사무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꺼내며 어떻게 그런 마음으로 교회 일을 하겠느냐고 상당히 꾸짖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실수였다. 비록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억울하고 속상하더라도 사례비에 관련된 말은 일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입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후회스럽기만 하다. 나는 가끔 내가 겪은 두 번의 실수 경험을 후배들에게 말해주면서 목회자는 자신의 사례 문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해 주곤 한다. 덧붙여 물질과 재정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야 목회를 온전히 할 수 있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3) 목회자의 퇴직 문제

근자에 한국교회를 부흥 성장시킨 목회자들이 은퇴하고 새로운 리더십으로 교체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은퇴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평생동안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존경을 받았던 분들이 퇴직을 할 때, 예우 문제 때문에 퇴직하는 분이나 교회가 함께 상처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로 인해 평생의 목회사역까지 송두리째 물거품이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에 뭔가 새로운 은퇴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비교적 젊었을 때부터 퇴직 문제에 대해 고민했는데, 교회가 퇴직하는 목회자에게 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교회의 형편이 어려우면 그것도 시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미리 내 힘으로 주택을 준비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작은 집 한 채를 일찍이 마련해서 거기에서 살아왔다.

필자도 내년 2016년 봄에 은퇴를 하게 되는데, 은퇴를 거론하는 자리에서 당회원들에게 “제가 우리 교회에서 37년 동안 목회하고 내년 2016년에 퇴직하지만, 제가 살 주택은 이미 준비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또한 “다른 은퇴하는 목사들처럼 예우 문제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합리적인 절차를 마련하여 미리 준비한다면 이와 관련된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재정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듯 하지만, 그 해결의 실마리는 목회자의 윤리의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목회자는 물질에 대해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머리 누울 곳도 없이 사시고, 모든 것을 내어주시고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 그의 제자인 우리들이 무슨 물질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겠는가? 목회자는 교회를 먼저 생각하고,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회마다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하여 교회를 바로 세울 때, 우리 후손들에게도 깨끗한 교회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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