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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인식도 연구

교회의 사명과 영광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해만 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복음’을 갈망하기 때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인생에게 파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 능력의 복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삶의 근거이면서, 교회가 전해 받았고 이제 전하고 있는 복음은 우리가 고백하듯이 세상의 유일하면서도 진정한 진리요, 그러므로 참된 희망이다. 따라서 교회의 현실의 그 어떠함은 곧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교회에 대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느낌 혹은 정서는 사실 우리를 아주 당혹스럽게 한다. 하기야 복음에 대해, 그리고 그 복음의 요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이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인간이 보이는 반항아적 태도는 근본적이었고 집요한 것이었다. 때문에 세상이 교회에 대해 언제나 매사에 호감만을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기대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현금의 한국교회에 대한 이 사회가 보여주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정도로만 치부해놓기에는 뭔가 시원치 않음이 있다.
우리 사회에게 물어볼 수도 있겠고 필요하겠지만, 우리 스스로가 느끼는 정도를 확인해보는 것도 필수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 [목회와신학]은 창간13주년을 기념해 열었던 기념세미나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이번 조사의 측정도구는 설문지이며, 랜덤방식의 무작위추출법과 다단추출법을 병행했다. 조사기간은 지난 7월 1일과 2일이었으며, 약 550매를 뿌려 344매를 회수해 약 63퍼센트의 회수율을 보이며 집중 조사됐다.

먼저 간단하게나마 표집에 대하여 이해하고 넘어가자. 세미나의 성격상 그랬겠지만, 젊은 목회자들의 수가 단연 압도적이었다(30~40대 약 72퍼센트). 이 세대 계층 목회자들이 목회자 진영의 허리이면서도 불과 이삼 십년 내에 차세대 한국교회 리더그룹이 된다는 점에서 이번 설문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펼침

질문1)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을 묻는 것이었다. 다소 막연한 질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금의 한국교회 전반에 대한 응답의 느낌을 가늠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안타깝지만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응답을 포함해 긍정적인 쪽이 65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상당히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고, 특히 표집의 특성상 차세대 한국교회에 대한 긍정적 사인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일 수 있다. 하지만, “소망을 갖기는 하지만 상당히 절망적”이라는 응답이 근 3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성경적으로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은 옳지 않기에 응답문항에 소망을 갖기는 한다는 조건을 달았으며, 어쩌면 이점이 응답자의 마음을 움직였을 수 있으나, 초점은 어쨌든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해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이땅의 목회자들은 매우 절망적인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 “안타깝지만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응답도 생각해보면 한국교회의 현실을 절묘하게 반영하는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수가 우리의 현실에 대해 안타깝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점에 더욱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복음의 근본으로 돌아가기를 늦추어서는 안 될 상황에 놓여 있다 하겠다.

질문2)“한국교회 앞에 놓여 있는 심각한 위기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자연스레 첫번째 질문에 이어지면서도 심층화한 것으로 한국교회에 대한 위기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자는 셈이다. 질문의 성격상 응답자가 제기할 수 있는 경우의 주제가 다양할 수밖에 없기에 표집의 의견이 흩어질 수도 있지만, 응답문항의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이슈라는 점에서 꼼꼼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하겠다. 응답자의 압도적인 관심을 얻는 응답은 “세속화와 물질화 및 영성과 신앙의 약화”(42.2%)였다. 영성 및 신앙의 약화가 반드시 세속화와 물질화와 필연적 관계에 있느냐 하는 문제는 따로 따져볼 필요도 있겠지만, 적어도 한국교회가 살아가는 타락한 형태의 자본주의적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정황 속에서 영성과 신앙의 하락이 세속화와 물질화 문제와 긴밀함을 목회자들은 연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쨌든 우리 시대 교회의 싸움의 과제는 무엇보다 세속화요 물질화의 문제라고 보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역사가 증명하든 매우 어렵고도 집요한 문제다. 더욱이 극단적인 배금주의 정신과 지극히 오염된 돈 제일주의 풍조는 교회에게도,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삶에도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키 어렵다. 이름 있는 제자훈련을 거쳤다 해도 돈과 명예 앞에서는, 세상의 왜곡된 가치관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가는 모습들을 우리들은 수없이 겪어왔다. 의식 있다 하는 사람들은 늘 제2의 종교개혁을 반복해 노래하는 것도 사실은 근거 없는 게 아니다. 이미 우리 스스로가 세속화와 물질화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약화라는 가공할 만한 위기적 국면 앞에 노출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하겠다.

더불어 주목해야 할 응답은 “빛과 소금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15.7)과 “복음의 왜곡이나 곡해 현상”(15.1%)과 “목회자의 자질이나 능력”(12.8)이다. 교회는 기실 지금의 세상 가운데 복음을 운반하는 최고의 기관이다. 교회는 복음 때문에 태동했고 존재하며, 그러기에 복음을 전승하는 일이 핵심적 임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위기에는 바로 이 근간인 복음의 왜곡 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어쩌면 언제나 있어온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젊은 목회자들은 복음의 왜곡 현상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 소망적이기도 하다. 빛과 소금의 역할에 대한 응답은 교회의 대사회적 역할과 관련이 깊은 듯하며, 목회자의 자질과 능력도 심각한 위기적 현상 가운데서 놓칠 수 없는 대목임을 확인 받는다.

질문3)은 90년대 이후 뚜렷이 나타나고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에 관한 질문이었다. 교회성장이 뭐냐에 대한 정의가 우리 안에 심각한 정도의 혼돈이 상존하지만, 일단은 세속적 물량주의에 퇴색된 타락한 성장주의 시각은 차치하자. 교회의 근간인 복음은 그 본성상 한 사람 한 사람을 목표로 하고 있고,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데서부터 하나님을 아는 데로의 변화를 초래하게 한다. 죄인이 있는 한 복음과 교회성장 사이에는 필연적 관계가 성립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교회성장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숫자가 많아진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교회는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에서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요 만유의 주이신 주님의 대위임령을 받았고, 또 실제로 사도행전과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그 역사적 증인들의 반열에 도열해있다. 이런 점에서 “교회성장의 정체 혹은 침체 현상에 대하여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이미 우리는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고 각종 통계도 이를 확인시키고 있다. 그래서 이미 정체 혹은 침체를 전제한 질문을 했다. 얼마든지 예견할 수 있는 바였지만 막상 통계는 정말 놀랍다. “잘모르겠다”(2.3%)를 “동의하지 않는다”(4.7%)에 포함시킨다 해도 겨우 7퍼센트도 되지 않는 의견만이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혹은 침체 현상을 부인하는 셈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26.2%)와 “동의하는 편이다”(65.7%)를 포함하면 근 92퍼센트 이상이 공감한다는 얘기다. 더욱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의견 비율이 26.2퍼센트로 통계된다는 점이다. 단지 거품이 빠지고 있나는 식의 진단만으로는 도저히 위안을 삼을 수 없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질문3)의 결과는 이어지는 질문4)에 의해서도 확인되며 긴밀한 관련을 갖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을 얼마나 느끼십니까”라는 네 번째 질문은 앞선 질문의 확인이기도 하면서도 목회자들의 보다 개인적인 사역 현장에서의 느낌을 가늠해보고자 한 것이다. 질문3)의 결과를 전제로 한다면 거의 같은 결과는 당연하겠다.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을 못 느낀다는 쪽을 모두 합산해도 겨우 7퍼센트에 불과하다(못 느낀다=4.9%, 전혀 못 느낀다=2.0%). 즉 한국교회의 성장 정체 현상을 느낀다는 쪽이 92퍼센트에 이른다. 통계상 90퍼센트를 넘는다는 것은 사실상 필요 없는 질문인 셈이다. 단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은 다시 한번 확인한다는 데 의의를 둘 뿐인 사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장 목회자들의 느낌은 예상을 훨씬 넘었다. 특히 질문 3과 비교해 질문 4에서 예의주시할 대목은 “절실하게 느낀다”는 응답자가 46.8퍼센트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교회정장의 정체 현상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전반적인 이해와 실제 자신의 교회 목회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보다 주관적이고 구체적인 느낌 사이 적잖은 차이가 있다는 부분이다. 즉 한국교회의 교회성장 이슈에 대해 전반적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사역 현장에서는 더욱 심각하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는 말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복음의 담지자 교회는 그 특성상 구령의 방향을 견지할 수밖에 없으며, 더 근원적으로는 타락한 인류를 향하여 구원의 역사를 움직이셨고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좌초될 수가 도무지 없다. 때문에 교회로 들어오는 회심자의 수가 정체된다는 것은 고려해야 할 사인임에 분명하다.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던 문제이긴 하지만 현장 목회자들의 통계가 복음과 교회 그리고 전도의 문제를 근본적이고도 총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로 작동했으면 하는 마음 절실하다.

질문5)한국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세속화 현상에 대한 견해를 묻는 것으로서 질문2)와 연결지어지면서 동시에 질문 3과 질문 4에의 현실적인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는 가정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이미 질문 2에서 한국교회가 직면하는 가장 심각한 위기적 현상을 세속화와 물질화 및 영성과 신앙의 약화(42.2%)고 답한 바 있지만, 이 세속화 현상에 대해 염려하는 목소리는 압도적이다.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42.2%)와 “주목해야 할 정도다”(49.1%)를 합하면 91.3퍼센트다. 세속화 현상을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9퍼센트 대다. 게다가 심각하다고 보는 사람이 42퍼센트라는 것은 한국교계와 신학계가 세속화의 싸움을 피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적 과제로 받아들이게 한다. 만일 마이클 호튼(M. S. Horton)의 “우리 모두는 우리가 쉽게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하루가 다르게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29쪽)는 평가를 고려한다면, 이번 표집의 42퍼센트 이상이 세속화 현상에 최고점의 감도로 반응한다는 게 매우 심상찮다 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하비 콕스(H. Cox)가 말을 상기하고 싶다. “세속주의는 종교적 세계관들을 상대화시켰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무력화시켰다. 종교는 사적인 것이 되었으며 세속화는 불과 쇠사슬로 할 수 없는 것을 성취했다. 세속화는 신자로 하여금 그가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며, 헌신자들을 설득하여 신앙을 위해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는 사실을 설득시켰다.” 세속화가 이 정도의 근본적인 파워를 갖는다면 한국교회의 세속화 현상에 대한 이번 설문의 결과는 자못 심각하다.

이것은 자연 세속화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질문6)“교회 세속화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였다. 응답문항별 표집의 점유율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신학의 왜곡 혹은 바른 신학의 부재”가 32.6퍼센트, “복음에 대한 무지”가 30퍼센트, “영성 약화와 신앙적 열정 약화”가 23.8퍼센트를 점했다. 영성이나 신앙적 열정의 약화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제개발과 함께 물질적 풍요와 기계문명 등과 함께 급변한 일상적 환경 변화라는 요인과 맞물려가기에 얼핏 설득될 만한 이유 있는 반응이라 볼 수 있겠다. 하지만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신학의 왜곡 혹은 부재와 복음에 대한 무지에 관한 문항이 차지했다는 것은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적어도 양적으로 볼 때 국내 신학교들의 연한이나 신학적 발전은 그 어느 때보다 낫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응답문항이 복음에 대한 무지와 신학의 왜곡과 부재를 직접적으로 거론한 것인 한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분명 복음을 앎과 신학함에 있어 보다 급진적인 도전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더욱이 이 문제는 현시점에서의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미래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선순위 최상위에 랭크돼야만 하는 손쓸 과제라 하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복음을 알고 이느냐 하는 것이다.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질문이기도 수치스런 물음이기도 하지만 이번 설문은 우리로 하여금 그 질문을 피할 수 없게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복음을 보다 예각화해야 하고 다시 선명하게 가르쳐야 하는 위대한 소명을 참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어지는 질문7)은 세속화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보다 근본적으로 짚어보는 물음으로서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타락하게 하는 가장 심각한 이념은 무엇인가”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이념이라 표현한 것에 묘미가 있는데, 그것은 다분히 전제적이며 철학적이고 세계관적인 요인을 응답자에게 얻어내려 한 점이다. 물론 그런 만큼 응답에 난해성은 더하고 정확도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응답자는 “세속적 교회성장주의”(33.4%)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교회가 성장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충분히 동의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복음과 교회의 본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서의 성장일 뿐이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속적 교회성장주의다. 우리 목회자들은 누구나 사역하는 교회 현장에서의 이른바 성장의 이슈는 일면 생존의 문제와도 같다. 가족이 있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하고, 임대료는 속절없이 오르는, 그러면서도 어느 것 하나 도무지 답이 없어 보이는 목회적 현실과제는 그나마 믿음의 방패로 부딪혀 볼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이런 믿음으로 도전하는 전도의 대상, 불신자들과 세상은 교회에 대해 심지어 신물 난다는 식이니 그저 생각 없이 교회성장주의가 이러니저러니 할 수 없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기에 유진 피터슨은 목회자들이 빠지기 쉬운 우상을 ‘소명이라는 영역에 속하는 목회자로서의 성공’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구약 요나서를 중심으로 타락한 성공주의를 목회의 소명과 선명하게 대결시키면서 목회에서의 성공주의를 절절하게 비판한 [성공주의 목회 신화를 포기하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그런 능력을 발휘해 마치 목회 소명이 에덴동산을 돌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설명한다. 그리하여 소명의 거룩함은 성공이라는 우상숭배의 차원으로 추락한다”(21쪽). 교회 성장이 아무리 생존의 문제로 닥쳐있다 해도 분명 ‘세속적 성장주의’는 옳지 않다. 거기에는 이미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절대주권자 하나님을 무시하기 때문이며, 성경의 가르침을 적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홍수에 떠내려갈 수는 있어도 하늘을 막아낼 능력은 애초부터 없는 존재다. 하나님은 원초적으로 제외되지 않는 분이며 그러기에 하나님을 떠난 성공은 기껏해야 악일 뿐이다.

더욱이 “돈과 물질주의”(30.2%)나 “명예와 성공주의”(15.1%)라는 응답 역시 이른바 세속화 개념과 같이 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돈과 명예 등을 통한 성공지상주의 풍조가 이 시대를 얼마나 유린하고 있는지를 깨어 직시해야 하며 동시에 이를 극복해내야 한다는 사명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리처드 포스터가 일찍이 제기한 “돈, 섹스, 권력”의 도전에 맞서 깡통과도 같은 껍데기 성장주의에 휘둘리지 않을 교회로 성숙해나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넘실대는 세속적 통념의 홍수 속에 인류에게 희망이 되는 하늘의 복음을 정확하고 확신 있게 외쳐낼 수 있을까? 또다시 우리는 이런 질문들을 뿌리칠 수 없는 자리에 이른다.

질문8)은 목회자들이 “한국사회가 기독교와 교회에 대하여 갖는 이미지”가 어떻다고 느끼는지를 물었다. 심각할 정도로 부정적(5.8%)이라고 답한 응답자를 포함해 61.6퍼센트가 부정적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교회의 복음전도 활동에 보이지 않는 저항세력일 수밖에 없으며, 또 교회로 하여금 스스로 자괴감이나 자신감 상실에로 이끌기 십상이다. 앞서 살폈던 한국교회 성장정체 현상과도 사실은 직결된다 하겠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안티기독교(anti-christianity) 정서는 가히 위험 수위에 이르러 있다고 보고 싶다. 특히 인터넷을 통한 안티 정서의 확신은 폭발적이다. 안 그래도 기독교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빌미가 된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죄인인 이상 하나님을 향하여 적대적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전적부패” 교리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현금의 안티 정서는 지나친 면이 분명 있다. 여기에는 복음에 대한 무지나 오해로 인해 교회의 본래적 혹은 성경적 자세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으로부터 야기된 불필요했던 감정 자극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이런 점에선 자업자득인 측면이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기실 우리 사회에서 어느 기관보다 물량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엄청난 희생과 봉사로 사회를 섬기고 있는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회가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불과 19퍼센트에도 달하지 못한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보여 지는 메시지인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다른’ 삶이 힘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 각종 율법적이고 인간적인 허울들을 벗고 나와 예수님처럼 살아낼 수 있는 교회, 이것은 복음과 성령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교회는 희망이다.

질문9)는 지금까지의 물음들을 전제로 대안을 향해 방향을 선회하는 질문이었다. “현시점에서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응답자들은 근본을 붙들었다고 볼 수 있다. 차례로 “인격과 영성 함양과 목회 소명에 충실하는 것”(36.9%),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설교하는 일”(30.2%), “세속적 성공주의를 극복하고 목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27.6%)로 답했다. 반면, “전문가 수준의 상담적 자질을 갖추도록 하는 일”(0.9%)과 “사회 전반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두루 갖추는 일”(2.3%)에는 현저하게 낮은 비율을 보였다. 이런 응답은 '전문가의 시대'라 칭한들 전혀 손색없을 그야말로 전문가 시대를 살기에 다소 의외다. 하지만 목회자라면 목회에 전문가이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게 해결의 물꼬라고 본다는 점에서 이 결과는 심히 소망적이다. 특히 이것은 응답자들인 목회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에게 투영하는 임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이들이 30~40대의 젊은 층(72.1%)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목회자의 인격과 영성 및 목회 소명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이슈들이다. 인격은 기본이고 영성은 필수다. 그리고 소명의 문제는 오늘날 목회자에게 핵심 이슈다. 그래서 도널드 메서(D. E. Messer)는 현대의 목회상에 대한 연구한 [새시대 새목회]에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한다: “목회를 일차적으로 소명(calling)이라기보다는 직업(career)이라고 여기는 것은 하나의 현대적 이단이다”(97쪽). “근본적으로 바울의 진정한 권위는 복음 선포자로서의 자기 이해에서 나오는 것”(김세윤, [데살로니가전서 강해], 68쪽)이었다면, 그 적용적 첫 걸음은 목회 소명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분명 여기서 우리는 목회 소명을 확인하는 일의 중요성과 함께 동시에 목회자의 근본 임무인 성경연구와 그로부터 나오는 올바른 말씀 선포 등 목회의 본질 회복의 긴급성을 재차 확인한다.

질문10)은 한국교회가 할 일에 대한 질문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에 대한 물음에 대해 59.9퍼센트가 “성경이 제대로 가르쳐지고 선포되도록 하는 일”을, 24.4퍼센트가 “무엇보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는 일”에 답했다. 한마디로 “성경으로 돌아가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살 때나 죽을 때나 우리는 떠받치는 근거’라고 생각했던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은 옳았다. 물론 사회 정의와 정치 문제에 대한 관심(4.1%)이나 사회 복지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일(4.1%) 역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교회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선명하게 하는 일이야 말로 한국교회의 승부수이다. 복음을 잃어버린 교회는 더 이상 성경이 말하는 대로의 교회일 수는 도무지 없으며,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면 인류는 자신들에게 유일한 소망인 복음의 음성을 어디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마이클 그리피스(M. Griffiths)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를 통해 교회의 본질을 잊고 살아가는 현대 교회를 잿더미 속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 꼴불견의 신데렐라에 비유하면서 교회의 영광과 교회의 교회다워짐을 애절하게 부르짖었던 것 아닌가!

질문11)에서는 전도에 대한 목회자들의 소감을 물었다. “요즘 전도가 너무 어렵다”는 말에 대해 “어렵긴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니다”(51.5%)라는 응답을 부정적인 뉘앙스가 포함되는 것으로 본다면 90퍼센트 이상이 공감하는 현상이라 할 수 이다. 전도는 교회가 펼치는 전선 가운데서 최전방에 속한다 할 것이기에 이에 대한 반응은 교회의 현주소에 대한 여러 국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세상이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라든지, 이 시대가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지극히 세속화된 세상이라든지, 교회의 전도에 대한 뚜렷한 전략 부재 등을 말이다. 그러나 극히 낮은 비율이긴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4.7%)는 응답자도 분명 있다는 점과 더욱이 “어렵기 하지만 별 문제는 아니다”라고 하는 응답자가 51.5퍼센트라는 사실은 매우 전도에 대해 목회자들이 용기를 잃어버렸거나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반영한다 하겠다.

마지막 질문12)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대한 단답형 물음이었다. 설문 결과가 보여주듯이 교회 내적으로는 목회자의 자질(27.3%), 설교(19.7%),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회복(18.7%) 등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이 가운데 목회자의 자질이나 설교의 문제는 직접적으로 목회자가 해결해야 하는 몫이라는 점에서 이번 설문의 요구를 가늠할 수 있겠다. 교회 외적으로는 이혼과 가정문제(21.7%)를 교회가 감당해야 할 우선 과제로 느끼고 있어, 가정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했다. 하지만 가정지상주의적 경향으로 치닫는 대가정사역 프로그램들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교회는 이 분야에 뚜렷한 대비책을 강구하되 세속적이고 피상적인 차원을 넘어서도록 목회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천착이 병행돼야만 할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19.7%)에 대한 이슈도 크게 부각되고 있어 이에 대한 교회적인 대응이 필요함을 확인하게 된다. 부정부패(18.2%)와 사회참여(12.4%) 등에 대한 관심도 목회자들이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것이다. 이들 이슈들은 분명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하고도 중요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응답자들의 관심이 현실과 크게 유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확인 받을 수 있으며, 늘 우리의 정황적 과제들을 끌어안고 고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민족적 숙원이요 특히 현 정권 들어 크게 이슈화되고 있는 통일(2.4) 문제나,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낸 지놈프로젝트의 발표와 함께 인간복제를 비롯해 인간의 생명에 관한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엄청난 도전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윤리문제(1.0%)에 대한 관심도가 지극히 낮다는 점에서 좀더 우리 시대의 삶에 대한 보다 넓은 전망이 부족함을 지적할 수 있겠다.

맺는 말

필립 얀시의 고백처럼 교회는 정말 ‘나의 사랑 나의 고민’인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나라 신학에서 보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교회의 현실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목회자들의 인식 역시 크게는 그 범위 안에 포함됨을 확인할 수 있겠다. 한국교회가 여전히 소망이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지만, 우리 목회자들이 목회의 본질과 교회의 교회됨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핵심 이슈임을 견지하고 있다는 이유도 든든한 근거다. 무엇보다 복음에 대한 무지의 문제나 바른 신학의 부재 문제(질문5 참조) 역시 바로 교회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이며, 더욱이 목회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성경을 바르게 연구하고 설교하는 일과 영성을 비롯한 목회 소명에 충실한 것(질문9 참조)인 한 이런 것은 우리의 전공과목들이 아닌가?

하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한국교회가 살아가고 있는 정황은 이미 거대한 세속화의 도가니에 들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 엄청난 세태가 몰아오고 있는 풍조를 교회도 그대로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세속적 가치들 앞에 무너져가는 현실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절규하는 심정으로 하늘로부터 임하는 우리 주님의 은총을 구하게 되면 오늘도 순교적 자세로 힘을 다하는 것 아니겠는가? 유진 피터슨의 관찰처럼 목회는 상당히 복잡한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헌신과 집중과 영성이 필연적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상은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선물을 맛본다.

박삼열 목사  churchr@church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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