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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목사로 바르게 산 것이 나의 전 재산”… 서울 강서구 강남교회 은퇴하는 전병금 목사교회에 부담 안주려고 퇴직금 외 아무 것도 안받아

▲ 강남교회에서 37년 담임목회를 마치고 물러나는 전병금 목사 부부. 1일 인천 영종도에 지은 집 마당에서 포즈를 취했다. “평생 목회만 할 줄 알았지 놀 줄 모른다”는 이인숙 사모의 얘기에 빙긋이 웃고 있다. 영종도=전호광 인턴기자

누구나 아름다운 은퇴를 꿈꾸지만 아무나 그 꿈을 이루지는 못 한다. 그만큼 쉽지 않기에 은퇴는 목회자들에게 마지막 시험대다. 서울 강서구 까치산로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71)도 오는 4월 24일 은퇴를 앞두고 있다.

1979년 강남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한 그는 영적 목자로서 교회와 지역주민들을 섬기며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서도 올곧은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 강남교회는 소속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뛰어넘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건강한 중형교회로 꼽힌다. 전 목사를 1일 인천 영종도 자택에서 만나 깊은 얘기를 들었다.

그는 3년 전부터 은퇴를 준비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주님 은혜로 살아왔는데 딴 생각하고 욕심 부리다 죄 짓지 않게 해 주세요. 마지막 흠 남기는 일 없이 은퇴하게 해 주십시오.”

그 무렵 서울에 있던 집을 팔아 인천 영종도 신도시에 땅을 사서 작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명의는 평생 목회를 지켜본 아내 이인숙(68) 사모의 이름으로 했다. 집은 대지 248㎡(75평)에 건평 99㎡(30평) 규모로 1층엔 침실과 서재, 2층엔 손님방 2개를 만들었다. 과거에 살던 집에 비하면 작지만 부부가 살기에는 충분하다. 공항철도가 있어 서울로 오가기에도 문제가 없다.

그는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은퇴하면서 법정 퇴직금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않기로 했다. 전 목사는 “예수님 생각하며 지금까지 수십 년 목사로 살면서 바른 길을 걸어온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며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운 것도 욕심나는 것도 없다”고 말했다.

갑작스런 결심은 아니다. 그는 목회를 하는 동안 청빈한 생활을 실천해왔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해 교인들이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며 ‘내 것을 더 내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십일조를 한 번씩 더 내기 시작했다. 일천번제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등으로 낸 것까지 포함하면 교회에서 받은 생활비의 60%를 헌금으로 내온 셈이다.

해외에서 부흥회나 강연회 강사로 초청받아 갈 때도 항공권을 모두 자비로 구입했다. 이렇게 받은 강연료는 모두 교회에 헌금했다. 그나마 사정이 어려운 교회에서는 아예 강연료를 받지 않았다.

그는 “돈에 깨끗한 사람이 되라고 설교하려면 나부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직접 바른 길을 걸어감으로써 교인들을 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삶을 사는 데는 고 박윤선 목사의 삶이 자극이 됐다. 박 목사의 주석집을 연구하며 ‘말하는 대로 실천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그의 개혁주의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교회는 지난달 24일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미국 시카고언약장로교회 백용석 목사를 후임으로 확정했다. 전 목사는 ‘복음주의적 신앙’ ‘에큐메니컬 신학’ ‘펜타코스탈(오순절)적인 체험’ 이 세 가지를 골고루 지닌 후임자를 위해 기도했다고 한다. 이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목회 방침이다.

전 목사는 “어머니로부터 복음주의적 신앙을 물려받았고 한신대에서는 진보적인 에큐메니컬 신학을 배웠다”면서 “군산고 재학 시절에는 우연히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자기체험적 신앙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개인의 신앙 훈련과 영적 체험을 강조한 것은 ‘한국교회의 모델’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온 목회철학과 맥이 닿아있다. 강남교회는 네 가지 비전을 지향해 왔다. 세계선교를 하고, 지역사회를 위하며, 통일시대를 위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더해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다. 그는 “목회자로서 진실하고, 사회에 대한 입장이나 성도들을 대하는 것 등 모든 것에 있어 한국교회의 모델이 돼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총회장으로서 기장 총회를 섬겼으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으로서 한국교회 갱신에도 힘썼다. 담임목회를 하면서 아쉬운 점은 없지만 1999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실행위원으로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의 연합을 위해 노력했지만 무산된 게 지금도 아쉽다.

은퇴 이후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한국교회연구원장으로서 한국교회 개혁을 위한 95개조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후에는 농어촌 작은 교회를 찾아가 목회 컨설팅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목회하느라 못해봐서 아쉬운 일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생각하더니 빙긋 웃으며 “없다”고 했다. “목회 말고 평생 다른 데 눈 돌리는 걸 본 적이 없다”는 이 사모의 말이 빈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김나래 기자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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