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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종교개혁 500주년에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방향(2016/06/21)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

1. 들어가는 글

세속주의의 물결이 사회를 범람하면서 영혼의 존귀함이나 인격의 고결함과 같은 가치 있는 영적 일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는 개인이 아무리 영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 간다고 해도 그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는 문제 상황들에 의해서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최근의 IS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의 평화로운 삶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좀더 넓게 생각해 보면, 최근에 발생되었던 각종 자연 재해들과 두려운 전염병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이 입증되고 있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런 일련의 일들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배타적으로 자아를 위하는 삶을 지향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자연을 보살피라는 인간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인류의 죄의 결과이다.

현 21세기의 시대적인 상황은, 어떤 면에서16세기 종교개혁의 시대와 같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격변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 기독교가 미래의 진로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유사한 역사적 격변기를 헤치고 나갔던 종교개혁의 정신을 통해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16세기 종교개혁이 그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서 ad fonts(근원으로)의 정신으로 교부들(Church Fathers)에게 물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종교개혁(Reformation)의 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는 “인간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 중 하나다.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나가는 급격한 과도기였다. 왜 제한된 시대에, 일정한 지역인 유럽에서 발생했던 교회운동이, 시대를 뛰어 넘는 대 사건이라고 평가될까? 그 이유는 이 운동이 갖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1000년을 지속해 온 중세 유럽은 기독교 세계라고 불러도 될 만했다.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태어나서 교회에서 죽었다. 모든 삶은 교회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염병과 전쟁과 이슬람의 도전 등으로 불안하였던 중세인들에게 미신 숭배가 만연했고 성경과는 다른 신앙이 극에 달했다.

그런 중세에 근원적인 도전이 찾아왔다. 지동설이 주장되었고, 신대륙이 발견되어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고 있었다. 참된 신앙과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제기되었다. 하나님과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개혁의 열망 속에서 고전 언어와 인문학을 공부한 인물들에 의해서 성경이 번역되고 해석되기 시작했다. 성경적인 진리를 다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직 성경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권위를 갖게 되었다. 이것이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성경으로라는 뜻)다. 성경에 근거해서 참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이 Sola Fide(솔라 피데, 즉 오직 믿음으로)다. 사람들은 구원에 대한 두려움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었다. 이제 인간의 구원과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은총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Sola Gratia(솔라 그라찌아, 즉 오직 은총으로)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사상이었는데, 인쇄술과 교역의 발전으로 이런 새로운 신앙 체계가 전 유럽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 종교개혁은 그것을 이끌어 갔던 인물들은 결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교회를 둘로 나누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 등장하고 있었던 도시국가나 민족 국가가 종교개혁 신앙을 받아들이고 보호하기 시작하면서, 미처 종교개혁주의자들도 인식하지 못했지만 유럽 사회에 근본적인 변혁이 촉발되었다. 결국 종교개혁은 신앙의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그것의 수용 여부에 따라 전 유럽의 교회와 국가들을 둘로 나누었고 그 결과 현대 사회의 기초를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시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종교개혁을 제대로 이해하면 우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교회란 무엇이며, 교회는 세상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3. 종교개혁 500주년(2017)의 중요성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해가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 시대는 많이 변했다. IT 산업과 첨단 과학이 발달한 변화의 시대가 왔다. 그러나 급격하게 발전하는 시대 속에서도 현대인들은 여전히 인생의 문제와 세상에서 제기되는 도전 앞에 방황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고민했던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다시 이 시대에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도 변화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아시아가 점차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기대는 대단하다. 한국교회도 어린이에서 청년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전혀 해보지 않았던 근원적이고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의 신앙은 어디에서 왔는가? 참으로 경건한 기독교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한국교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부딪힐 때마다 교회의 역사는 깊은 지혜를 제시해 준다. 다시 종교개혁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Ad Fontes(근원으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종교개혁의 본질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먼저 유럽의 지성사적 흐름을 알아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배경도 통찰해야 한다. 기독교 교리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열어 가면서 치열하게 살아갔던 종교개혁자들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가장 역동적으로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변혁을 겪었던 16세기 유럽, 그리고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갔던 신학자와 목회자와 그리스도인들의 삶, 좌절, 고난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가는 것이다.

4. 종교개혁 신학의 구조

종교개혁자 가운데 제2세대로서 앞 선 1세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착실하게 수용하여 체계화한 것이 제네바의 칼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칼빈의 신학적 구조를 중심으로 종교개혁 신학의 틀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① 창조주요 구속주인 하나님과 그의 형상인 인간

종교개혁 신학의 중심은 하나님은 창조주요 구속주가 되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피조물 된 인간이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coram Deo) 가능하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직접적인 교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준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본래적 정체성을 아는 지식이 종교개혁의 기본적인 토대가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경건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로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바른 태도는 진정한 지식과 진정한 예배를 포괄하는 개념이다.1) L.J. Richard, 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Atlanta: John Knox Press, 1974), pp. 100-102.
그러나 피조물인 인간은 범죄함으로 그 본래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유일한 중보자인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은,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데, 이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다.

② 성경과 성령의 관계

하나님 즉 창조주요 구속주인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지식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다.2) Calvin, Institutes, 1,6,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창조주이자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과의 교제를 지탱해주는 틀이 된다. 성경은 신앙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치는 교과서다.3) Calvin, Institutes, 3,2,6.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도움을 사용하시든지 또는 자신의 힘만으로 하시든지 간에 자신에게로 끌고자 하시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성령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4) L.J. Richard, The Spirituality of John Calvin (Atlanta: John Knox Press, 1974), pp. 154-166. 성령은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경건으로 인도하는 것이다.5) Calvin, Institutes, 1,7,6; 1,9,6.
그러므로 현대의 무분별하고 도를 지나친 성령운동은 종교개혁 정신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성경과 함께 가는 성령의 사역이 종교개혁 정신에 부합한다.

③ 신학과 삶의 통전성

종교개혁 신학은 우리의 삶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6) 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어거스틴과 포스트모던 사이에서』, 대한기독교서회, 2003, pp. 155-157. 칼빈이 이해하는 복음은 지적으로 아는 것이나 정적으로 느끼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경건의 개념도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이해를 요구한다.7) Calvin, CO, 2, 503. (Institutes, 3,6,4). 이에 근거한다면 한국교회는 신학적인 진리성과 함께 그에서 파생되는 윤리적인 삶의 성숙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2) 사회적 삶: 청지기 정신

종교개혁, 특히 칼빈의 신학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기초하여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상호 관계에까지 관련을 맺는다.8) 이수영, “깔뱅에 있어서의 경건의 개념,” 『교회와 신학』 27집, 1995, pp. 346-348. 종교개혁 신학에 의하면 이웃을 위한 사랑은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하는 사랑은 “중생의 확실한 상징”이자 “성령의 특별한 열매”가 된다.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은 이웃 사랑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칼빈도 “자신의 이기심을 포기하고 타자를 유익하게 할 때” 비로소 자아의 중생이 “증명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9) Calvin, Comm. 1 John, 3: 16. 칼빈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삶은 타인을 사랑하는 삶으로 표현되며 이것은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강령이 된다.10) 그리스도인의 삶과 경건을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풀어나가는 것은, 칼빈의 기독교 강요 2판(1539년)부터 비로소 등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공동생활 형제단의 사상에서 훈련을 받았던 Johann Sturm의 영향과, 스트라스부르그에서 행했던 난민 목회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칼빈의 스트라스부르그 시절 이후의 기독교 강요 개정판들에서부터 이 개념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칼빈의 신학과 경건이 얼마나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출생 근원을 같게 창조하심으로, 인간이 서로 협력하도록 돌보도록 하셨다.11) Calvin, Comm. Gen. 1: 28. “… 단순히 아담이 그의 아내와 함께 자녀 생산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그렇게 하여 땅을 다시 채우게 하려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직접 많은 인간들로 이 땅을 채우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근원에서 나와서 상호 협조하려는 소원이 더욱 간절해 지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또한 그분의 뜻은 각자가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보다 더 포용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은사를 타자의 이익을 위해서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이 위탁하셨다고 보는 것이다.12) Calvin, Institutes, 3,7,5.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웃을 도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며, 우리의 청지기 직책에 관해 보고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13) Calvin, Institutes, 3,7,5.
그런데 타자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 바로 그것이 우리가 “전심을 다해서” 타자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할 이유이다.14) Calvin, Institutes, 3,7,5. 그런데 인간의 하나님의 형상은 공동체 속에서 회복될 수 있다.15) W. Balke, Calvin and the Anabaptist Radicals (tr.) W. Heynen (Grand Rapids: Eerdmans, 1981), p. 223. W. Bouwsma, John Calvin: A Sixteenth Century Portrai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9), p. 219. 칼빈의 경우 교회론과 관련된 권징에 대한 개념은 “거룩한 공동체”를 세우고자 했던 칼빈의 열망의 한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신학에 근거한다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사회 안에서 이웃을 섬기고 돌보기 위한 청지기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3) 창조 세계를 돌봄

종교개혁 신학의 기초는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과 그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의 부성애적 사랑으로 돌보라는 것이었다.16) Calvin, Comm. Gen., 1:28. “…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사용하는 면에서도 그분의 선하심과 “부성애적”인 돌보심을 언제나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을 단련시켜야 된다 ….”; Comm. Gen., 1:28. “… 그리고 그것을 향유하는 데서 그는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사랑을 깨닫게 하셨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또한 그 후에 인간은 땅을 개발하도록 명령을 받았으며 과일들을 먹으라고 허락을 받았다고 추가하고 있다 ….” 한편, 창조의 영으로서의 칼빈의 성령에 대한 관점은 첫째 우주적인 차원과, 둘째 인간의 생명의 차원, 그리고 셋째 성령에 의해서 거듭난 삶의 차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성령의 우주적 사역에서 칼빈의 정치윤리와 생태 윤리가 도출될 수 있다. 다음을 보라. 정승훈, 『종교개혁과 칼빈의 영성』, 대한기독교서회, 2000, pp. 235-66.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의 일원으로 선택된 것이었다.17) Calvin, Comm. 1 Cor., 15: 27.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규모 있게 관리하면서 후손에게 넘겨줄 하나님의 청지기다.18) Calvin, Comm. Gen., 2: 15. 그런데 인간에게 맡기신 창조 세계를 남용하는 것은 인간 자신을 부패시키는 것이며, 그것은 매우 통탄스러운 일이다.19) Calvin, Comm. Gen., 3: 18. 이와 같이 창조주 하나님과 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의 본래적인 정체성을 발견하는 종교개혁 신학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그 시야를 창조 세계로 까지 확대해 주는 신학적 포괄성을 보여준다.

▲ 2016년 6월 21일(화) 나사렛대학교에서 열린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에서 안인섭 교수(국총신대신대원)가 세번째 주제발제를 전하고 있다.

5. 한국의 종교개혁 신앙 수용20) 이 내용은 한국 개신교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필자의 일련의 신학적 연구에 기초하고 있다. 다음을 보라. In-Sub Ahn, “Calvijn in Azië,” in: Calvijns Handboek (ed.) H. Selderhuis (Kok: Kampen, 2008), pp.563-570. This handbook was also published in German. See Calvin Handbuch (Tübingen: Mohr Siebeck, 2008), pp.505-511. For English version, see The Calvin Handbook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9). ; In-Sub Ahn, “Calvijn in (Zuid-) Korea,” in: Het Calvinistisch Ongemak (Kampen: Kok, 2009), pp.237-248. ; In-Sub Ahn, “The Presbyterian Churches of (South) Korea and the reunification issue – a matter of reconciliation,” in: Reshaping Protestantism in a Global Context, Contact Zone. Explorations in Intercultural Theology (Berlin: Lit Verlag, 2009) vol. 1. pp. 85-95. 다음을 보라. 안인섭,『칼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의 사람』 (서울: 익투스, 2015), 309-321.

한국이 종교개혁 신학을 수용한 것은 독일,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랜드 등 유럽과 비교할 때 매우 다른 특징들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로마 가톨릭 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종교개혁을 맞게 되었다. 또한 유럽인들이 미국에 정착해서 시작된 북미의 개신교도 결국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나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종교개혁 수용은 이와 다르다.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배경들 속에서 서구 선교사들의 선교 사역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고 개신교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의 정체성은 서구 개신교회를 통해서 소개된 성경과 그 위에 서 있는 종교개혁 정신, 그리고 한국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컨텍스트의 만남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을 수용한 것의 특징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의 개신교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독교의 진리 그 자체로서 받아들였다. 이것은 또한 한국에서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개신교는 한국의 가톨릭과 독립적 관계 속에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두 번째로 한국의 개신교는 19세기의 서양의 선교사의 선교 사역을 통해서 활성화 되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탁월한 자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생적인 개신교의 탄생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의 개신교는 한국의 20세기 역사적 발전에 따라서 다양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네 번째로, 한국은 개신교 각 교단의 신학이 종교개혁 정신 이해에 영향을 주었다. 즉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개혁 저작을 읽고 영향을 받아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각 교단별로 교회가 세워진 이후에, 이 교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세워 나가는 과정에서 종교개혁 신학을 다시 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6. 한국교회의 종교개혁 신앙 수용의 방향

종교개혁 정신은 끊임없이 한국교회를 독려했다. 예를 들어 칼빈의 신학의 경우가 그러하다.21) 예를 들어 한국 장로교회가 칼빈의 신학을 수용한 것에 대한 분석은 다음의 연구를 참고하라. K.H. Yon, A Study on the Calvin theology in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For the Unit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es (Diss.) Hanshin University (1995). 앞으로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정신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수용해 가야 하는가? 몇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 보려고 한다.

(1) 성경에 근거한 신학적 진리성에 기초함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종교개혁 정신 위에 다시 세워져야 한다. 종교개혁의 Sola Scriptura 정신을 이어 받아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와 진리성을 가장 핵심적인 가치로 놓아야 한다. 그리고 Sola Fide의 정신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의 대상으로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Sola Gratia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 위에 우리의 구원과 신앙의 체계를 세워져야 한다. 이 정신에서 이탈하게 되면 한국교회는 세속주의와 이단의 도전, 그리고 기복신앙과 공로주의적인 신앙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성경적 토대 위에 한국교회를 다시 정초해야만 한국교회의 사회적 지도력과 성도들의 성숙한 삶이 유도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매우 긴급하고 절박한 사안이라고 사료된다.

(2) 사회 변혁을 위한 교회의 능동적 참여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는 시대 변화에 따라 그 의미가 발전해 왔다. 문민정부 이전에는 주로 진보적인 진영의 특징이었다. 1990년대 이전 이 주제는 주로 정부에 대한 저항이나 지지라는 비교적 단순한 논리로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위 민주적인 정부가 출범한 1990년대 이후에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는 반정부, 친정부의 이분법을 넘어서서 보다 다각적인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히 현대의 민주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었고, 이러한 이해 관계의 충돌을 조율할 수 있는 실제적이며 최종적인 권위를 국가가 부여 받게 된 상황 속에서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는 문제는 보다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에는 신학적인 보수와 진보의 구별 없이 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그 범주도 사회정의와 생태학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회 복지 활동과 평화 통일 등을 위한 교회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신학적 고려에 근거하여 그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표명하는 방향으로 교회의 사회 참여가 진행되기도 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의 정치 참여 문제는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더욱 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국제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각 국가들이 철저하게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움직이고 있고, 또 그 결과가 국민들의 실 생활에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교회가 기독교의 고유한 가치와 덕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숙한 사고와 행동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3)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호 활동22) R.M. Kingdon, “Social Welfare in Calvin’s Geneva,” in: Articles on Calvin and Calvinism vol. 4. Calvin’s Work in Geneva (New York and London: Garland Publishing Inc., 1992), pp. 22-41.

16세기 유럽에서 복지 개혁을 위한 움직임의 확산은 거의 정확하게 종교개혁의 확산과 함께 전 유럽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종교개혁자들은 많은 정통 가톨릭에게 도전을 주었다. 특히 칼빈의 리더십 아래에서 제네바가 이룩한 사역은 초기 개신교의 사회복지 개혁에 대한 중요한 모델이 된다.

제네바의 복지 개혁은 당시의 다른 도시의 일반적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제네바 시에 의해서 빈민과 병자를 치료할 목적으로 운영하는 종합 구빈원(Hôpital Général)이 그것이었다. 이 제네바 종합 구빈원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필요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게 환대를 제공하는 다목적 기관이었다. 대부분 전쟁으로 인한 고아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너무 늙고, 아프거나, 심한 장애를 가진 소수의 노인들에게 집을 제공하였다. 그곳에서는 가난한 가정에게 빵을 매주 나눠주었고, 자신들의 숙박료를 지불할 수 없거나 막 제네바에 도착한 유럽의 방문객에게 매일 저녁 쉼터와 음식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이 구빈원의 실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집사”였는데 이들이 교회의 직분으로서 그 사명을 감당했다.

종합 구빈원(Hôpital Général)이 해결해 줄 수 없었던 제네바의 사회적 문제는 다른 나라로부터 이주해 온 많은 종교적 난민들을 돕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구빈원은 제네바 시민과 제네바에서 단기 체재할 계획을 가진 사람들의 문제만 대처하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네바에 장기간 거주하기 원하는 난민들의 경우에 문제가 발생 하였다. 국제무대를 배경으로 한 종교 위기를 대비하려는 특별 헌금은 1545년 칼빈의 촉구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다. 그 해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대대적인 개신교 박해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칼빈은 시민들의 각성을 촉구했고 원조를 구했으며, 탄원을 위해 여러 다른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제네바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외부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런 문제 의식 속에서 현금 기금이었던 프랑스 구호 기금(Bourse française)이 칼빈에 의해서 세워졌다. 이 기금은 프랑스에서 제네바로 피난 온 난민들, 즉 질병이나 가족의 문제나 프랑스에서 자산을 모두 상실하는 등 더 이상 자신을 부양할 수 없는 가난한 프랑스 피난민에게 나누어 주기 위한 사적인 기관이었다.

(4) 국제적 네트워크의 형성

16세기 지도를 보면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루터주의, 영국의 성공회 그리고 급진 종교개혁운동이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칼빈주의는 16세기 전 유럽에 확산되어 있었다. 종교개혁의 특징 중의 하나가 “국제화”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종교개혁은 민족적인 개념이나 국가적인 경계선을 초월하여 성경과 신학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국가나 민족을 넘어 신학적인 연대감 속에서 전 유럽으로 확산된 것이 칼빈주의다.

특히 16세기 종교개혁자 칼빈을 21세기에도 여전히 배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칼빈은 그 시대 유럽 전체에서 제기되는 교회와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성경의 정신에 근거한 개혁신학으로 해결책을 제시했으며, 또한 목회 현장과 국제적 무대에서 실제로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던 제네바의 빈민을 위한 구제 사역도 스위스뿐 아니라 국제적인 네크워크를 통해서 더욱 심화될 수 있었다.

한국교회도 종교개혁 정신을 이어 가기 원한다면 성경에 근거한 신학을 토대로 한국 사회뿐 아니라 국제적인 교회의 사역을 위해서 더욱 밀접하고 강력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야 할 것이다.

(5) 종교개혁과 남북 평화 통일

종교개혁 정신이 그러하듯이 통일을 위한 교회의 사역도 성경에 근거해야 하며 사회적 이데올로기 위에 세워져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이란 타자를 위한 사랑으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칼빈은 “자신의 이기심을 포기하고 타자를 유익하게 할 때” 비로소 자아의 거듭남이 “증명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3) 칼빈, 요한일서 주석, 3:16.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구원을 위한 전제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더 깊이 숙고해 보면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면서 자기의 이기심을 버리고, 북한의 동포들을 사랑하며 그들의 유익을 구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거듭남을 증명해 주는 한 요소가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근거하여 볼 때 칼빈의 청지기 사상은 통일을 향한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다. 남한의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 은사 들은 우리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이웃을 돕고 북한의 형제, 자매들을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놓으셨다는 것이다. 북한의 형제 자매 안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에게 정치적 관계나 경제적 손실 이론을 초월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독생자를 보내 주셨듯이 우리는 “전심”으로 북한의 동족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베풂을 보내야 할 것이다.

(6) 생태계 보전을 위한 구체적인 사역

종교개혁 신학의 토대가 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인간에 대한 지식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돌보라는 사명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함으로 그 본래적 위치를 상실하게 되었을 때, 인간뿐 아니라 전 창조 세계에 그 비참한 결과가 도입되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전 우주적 구속 사역으로, 모든 피조물은 다시 회복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24) Calvin, Comm. Col., 1: 16.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가장 높은 영광의 자리에 올려 그는 사람뿐 아니라 천사들도 주관하시는 분이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명령하시는 분이라고 한다.”

이에 근거하여 한국교회는 현재 생태계의 파괴와 그로 인해서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이 인간의 범죄에 근거함을 고백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위임해 주신 인간의 본래적인 삶을 이탈하여 발생한 창조 세계의 훼손에 대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제는 창조 세계를 보존하도록 보다 전향적이고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 2016년 6월 21일(화) 나사렛대학교에서 열린 한목협 제18회 전국수련회에서 안인섭 교수(국총신대신대원)가 세번째 주제발제를 전하고 있다.

안인섭 교수  총신대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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