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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양식

신영복 선생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콜럼부스는
아무도 세우지 못했던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려 쉽게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발상의 전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의 전환이라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고 했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어떤 사람은 발상의 전환으로,
또 비정한 폭력성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따라서 선택과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 낮에 물을 떠야할 만큼 천한 여인,
그 여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메시아가 왔다고 온 동네를 떠들고 다녔습니다.

여인은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리고 동네 사람들은 그 여인에게 무었을 들었기에 예수님께로 몰려왔을까요?

여인은 “우리가 모르는 양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 양식,
‘남보다 더’가 아니라,
‘남과 함께’
그리고 '더 가짐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갖는 축복’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이를 두고 '데레사 효과'라고 합니다.
나누고 섬기는 일은 나를 복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를 복되게 하는 역설 혹은 신비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한사람,

나 한사람이라도
이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할 수 있다면
비록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은 그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완성하십니다.

나 한 사람,
탐욕과 이기심을 버리고
기꺼이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아보기를
주님 앞에 다짐해 보는 대림입니다.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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