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목회칼럼
나를 쓰소서

고양이 때문에 늘 불안했던
쥐들이 회의를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고양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한 쥐가 좋은 의견을 내 놓았습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좋은 생각이라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를 논의하자
다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하자고,
이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국 자기를 버려야 하는 곳에서 깨집니다.

비록 그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많은 고통과 손해를 보게 한다 할지라도
그 일이 주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면 성모처럼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이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순종할 수 있을까요?

임마누엘의 역사,
바로 이 때 시작이 됩니다.

소금이 자기를 줌으로 맛을 내듯이,
초가 자기를 줌으로 빛을 내듯이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 많은 열매를 맺듯이
그렇게 자기를 주어보면 어떨까요?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