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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의 누룩을 버리고

한 사람의 탄생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탄생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이란 참된 의미도 모르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왕의 출연을 두려워한
헤로데의 무지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과 억울한 죽음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은 우리 가운데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는 몹시 노하였습니다.
그래서 박사들에게 알아 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습니다.
참으로 억울한 죽음입니다.
세월호 죽음처럼...

지금 죽임을 당한 어린이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욕심, 독선, 그리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잘못된 신념 때문에
그렇게 희생당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보면서
나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나 한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희망을 줄 수 있지만,
또한 아픔과 슬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남보다 더” 라고 하는
탐욕과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지 않는 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헤로데가 될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라고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낮은 곳에 머물러 보면 어떨까요?
남이 아니라 내 자신을
먹이로 줄 수 있는 사랑을 품어보면 어떨까요?

이 땅의 또 다른 예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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