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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받은 세례명

“내가 어두운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을 때
누가 내게 다가와 나의 이름을 물으면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리.”(김정식의 ‘누가 내 이름을 물으면’)


누가 당신의 이름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한 아기를 놓고 즈가리아로 할 것인지,
아니면 요한이라고 부를 것인지늘 놓고
심각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아무렇게나 부르면 어떻습니까?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벳은 문중들의 주장을 뿌리치고 요한이란 이름을 지켜냈습니다.

왜냐하면 이 이름은
주님의 길을 예비할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요한,
이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혼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례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이광수는 한 때 한 민족의 지성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광수란 이름을 버리고 “가야마 미쯔로”라고
그 이름을 바꾸면서
겨레의 사랑 받았던 젊은 청년은
일본 천황의 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거룩한 삶을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간디였습니다.

인도 민중은 간디를 ‘마하트마’라는 이름을
지어 불렀습니다.
이 이름은 “위대한 혼”이라는 뜻입니다.

간디는 정말 이 이름대로 인도의 위대한 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름에는
혼이 담겨 있고,
정신이 담겨 있고,
삶이 담겨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세례명,
구원의 표징이 될 이름입니다.
그리고 내가 살아내야 할 이름,
내 생명을 바쳐 지켜내야 할 이름입니다.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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