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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디 있느냐?책임성이 강해야 성숙한 사회…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 반드시 물어야

창세기 3장에 인류 최초의 범죄가 기록돼 있다. 범죄 후에 전개되는 이야기가 하나님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니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큰 소리로 찾아 부르는 것이 아니다. 범죄를 저지른 아담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책망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이 대답한다. “내가 숨었나이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었다. 죄지은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앞이다. 거기서만 죄가 해결된다. 그러나 아담은 그 자리를 피했다.

‘하나님 앞’이란 표현은 기독교 신앙에서 아주 중요하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처절하게 부패했을 때 일어난 1517년의 종교개혁, 그 중심에 섰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시금 깨달은 것이 ‘하나님 앞에서’였다. 당시의 언어인 라틴어로 하면 코람 데오(Coram Deo)다. 그들은 인간 삶의 실존이 근원적으로 하나님 앞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 없고 그 무엇도 그분 눈에서 숨길 수 없다. 진리를 거스르는 거짓과 어둠은 결국 드러나게 되고 응당한 심판을 받는다.

창세기의 아담은 인류의 원형이며 아담의 범죄에는 인류 역사에 이어져온 모든 죄악의 기본 구조가 박혀 있다. 죄지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요청하신 그 자리는 책임성이다. 자신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자각과 실천이다. 그러나 아담은 책임을 회피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이 ‘하나님이 주신 여자’ 하와 때문이라고 둘러댄다. 하나님이 이제 하와에게 묻는데 하와도 마찬가지다. 뱀이 꾀어서 먹었다고 책임을 전가한다.

창세기 3장은 어떤 개별적인 범죄를 다루기보다 죄라는 현상의 근원적인 정체를 파헤친다. 자연인으로서 사람은 한계를 지닌 존재라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범죄보다 그 후의 상황이다. 사람 속에 있는 악마성이 여기에서 발동한다. 저지른 죄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 것 말이다. 창세기가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무책임성!

창세기 4장에는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 기록돼 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인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묻는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이 대답한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가인은 지금 언어유희를 하면서 동생과 하나님을 조롱하고 있다. ‘양 따위나 치는 아벨처럼 제가 그렇게 아벨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이 가인에게 요청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가인의 대답에 들어 있다. ‘그래, 너는 네 아우를 책임져야 한다!’

성경의 첫 책 창세기는 그 초반부에서 인간 존재의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이웃에 대하여 책임을 갖는 존재라는 것 말이다. 이 메시지는 창세기 1-2장에 이미 나온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는데 둘은 서로를 책임져야 한다. 사람은 타인(他人)에게 책임을 가져야 하는 존재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다른 모든 피조물을 돌보아 다스리는 책임을 맡긴다. 사람은 타자(他者)에게 책임을 가져야 하는 존재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성숙할수록 그 사회는 책임성 있는 사회가 된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은 무책임성이다. 기독교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아직도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 아프다. 책임성이 강해야 성숙한 사회다. 책임을 묻는 사회 구조가 잘 작동돼야 선진국이다. 이번 사태의 해결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책임적인 사회, 이 문제와 연관해서 특검은 시작일 뿐이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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