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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수를 배반할까?

단원 김홍도의 ‘씨름도’를 보면 엿장수 소년이 보입니다.

어느 시골장터에서 씨름판이 벌어졌습니다.
두 명의 장사가 한창 씨름 중입니다.

그 주위로 구경꾼들이 빙 둘러앉아 있습니다.

마침 왼쪽의 선수가
오른쪽의 선수를 들배지기로 치켜드는 순간입니다.
곧 승부가 날 것 같습니다.
구경꾼들도 손에 땀을 쥡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소년의 시선만이 밖을 향해 있습니다.

이렇게 엿장수 소년은
우리의 시선을 밖으로 이끌고 갑니다.

단원은 엿장수 소년을 통해 누가 이기고 지는 것 말고,
우리가 보아야 할 또 다른 곳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끕니다.
그래서 걸작입니다.

최후의 만찬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의 눈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밖이 아니라 안에서 일어나는 배반입니다.

이렇게 성경은 참된 부활의 길을 가기 위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유다의 배반을 보게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 (요한13:2)을 찾아야 합니다.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은 여인에게
"그것을 팔았다면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비판한 그 마음입니다.

여인의 신심은 고려하지 않고
내 믿음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려는 교만이 아닐까요?

그리고 다른 동료들에게는 인정받으면서도
감추어진 것도 보시는 주님께는 인정받지 못하는 위선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감추어진 자신의 죄는 애써 감추면서
남의 죄는 매몰차게 단죄합니다.
마치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자들처럼 말입니다.

이런 마음은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해서,
성체를 영한다고 해도
사탄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보기에 앞서
내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하고,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지 않을 것입니다.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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