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목회칼럼
위선을 버리고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신뢰한다는 말이 더 깊이 가슴에 와 닿는다.”
동감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신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산 나물을 토종이라고 팔고 있는 할머니로부터 시작해서
택시를 타도, 병원에 가도, 세금을 내도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들 우리의 희망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는 위선자였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자선, 기도, 단식 모두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귀한 덕행입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행위라 할지라도 위선에 빠지게 되면 허사가 되고 맙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위는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위선자라고 했을까요?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태23:5)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하나는 늘 내 생각, 감정, 경험들이 앞서 있습니다.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생각없이 이루어지는 직관을 씁니다.
이런 직관은 말씀보다는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끌고 갑니다.

또 하나 늘 주변과 사람을 의식합니다.

이런 판단과 행동은
그 좋았던 신심을 한번에
허물어지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늘 하느님을 향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숨은 것까지 다 아시고, 머리카락까지 다 세고 계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온 세상아, 야훼를 두려워하여라.”(사33:8)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