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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요한이라고 해야 합니다

김춘수의 ‘꽃’이란 시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
이름 석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임을 느낍니다.

이 땅의 선구자로서, 찬사와 비난을 함께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을 꼽으라면 당연히 춘원 이광수를 꼽을 것입니다.

그는 민족을 사랑했고,
또 이 민족을 개화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의 꿈,
그를 향한 민족의 꿈도
‘카야마 미츠로’란 이름로 개명하면서 산산조각 나버리고
매국이란 이름으로 그의 일생을 마쳐야만 했습니다.

이름이란 세 글자,
이름 안에는 모든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이 있고,
또 내가 살아내야 할 삶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이름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모두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요,
또한 내 삶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요한”이란 이름을 지켜내려 했던 엘리사벳의 삶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름값을 하고 있나 생각해봅니다.

“기독교”란 이름으로
“그는 아비와 자식을 화해시키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생각을 하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 되도록 준비할 것이다.”
(루가1:16-17)

그리고 “사랑과 진실이 눈을 맞추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추리라.
땅에서 진실이 돋아 나오고 하늘에선 정의가 굽어보리다.”(시편85:10-11)

바로 이것이 교회를 통해 꾸는 꿈이요,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리스도인”
이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최은식 신부  강동교회

<저작권자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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