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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목회자 윤리(2017/07/20)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발표회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을 회복하고 목회자들의 올바른 목회 윤리를 재정립함으로써 한국교회가 갱신되어야할 절실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그 해법을 찾아야할 중대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윤리가 회복되어야할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것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몇몇 교단들에서 총회나 연회가 끝나고 나면 계속해서 법적 분쟁이 발생하고 있고, 연합기관들의 이합집산, 신학대학교의 운영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들, 대형교회들의 목회자들의 도덕적 실추와 교회 내부적 갈등들, 크고 작은 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목회자 세대교체에 따르는 여러 가지 부작용들, 여러 이단들과 안티 기독교세력의 강화, 이 모든 것들의 영향 하에서 생겨난 한국교회의 사회적인 신뢰도 상실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 때문에 한국교회의 성직자들은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의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다.

이러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고 있을 당시의 목회자 윤리는 어떠했는지를 고찰하면서 오늘의 한국교회의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소중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교개혁에서 궁극적으로 누가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개혁을 이끌어 갈 것인가?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 사회가 황제와 교황 중심의 지배체제 하에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을 때, 루터의 종교개혁은 영주들의 후원을 받는 개혁활동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도시의 지원을 받는 개혁파의 종교개혁이었다. 이러한 개혁활동에서 설득력 있는 목회 윤리의 형성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내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지 세력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종교개혁의 합당한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건전한 윤리를 제시하는 작업이 수반되어야 했다. 종교개혁자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윤리체계를 수립할 수 있어야 했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당시 지배체제였던 로마가톨릭교회의 지배윤리체제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그것을 극복할 자신들의 목회 윤리체계를 제시하여 나갔다.

본고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주제들을 중심으로 종교개혁 당시의 목회자의 윤리 문제를 다루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목회자들의 윤리상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의 이신칭의라는 복음의 진리의 재발견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그러한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은 로마교황청의 타락에서 비롯된 당시 성직자들의 타락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일어날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의 성직자들의 목회 윤리의 실상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둘째로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을 진행하면서 참된 교회의 개혁을 이루기 위해 목회자들의 윤리를 어떻게 개혁해 나갔는지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목회자들의 윤리를 개혁하기 위하여 취했던 대표적인 방안은 목회자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나아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기독교인의 세상에서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립하고, 그에 따른 신학교육의 갱신이었고, 그 신학교육을 통한 종교개혁적인 목회 윤리의 형성, 그리고 목회자들의 윤리를 확립하기 위한 제도적인 개혁이었다. 셋째로 그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목회윤리의 개혁을 통한 종교개혁기의 목회현장의 개혁된 모습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넷째로 그러한 종교개혁자들의 목회 윤리의 실천을 토대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 갱신의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한국사회에서 시대적인 변화에 따라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체계가 무엇인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과거 산업화 사회에서 성장의 근거를 마련했던 목회자들의 지도력이 이제는 민주화 사회에서 새로운 윤리체계를 요구받고 있고, 더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적인 윤리체계가 주류를 이루어가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윤리성을 상실한 목회자의 지위를 회복할 윤리체계를 확립할 것인지가 요청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종교개혁을 논의하면서 종교개혁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닌지 반문해야 한다. 종교개혁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한국교회의 개혁이 필요한 부분에서 진정한 개혁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현상 속에서 우리는 절망을 발견하는지 모르겠다.


II.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 실상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교회 목회자들의 윤리적인 타락에 따른 위기는 교황의 정치권력화에 따른 부패 현상과 그에 수반되는 전반적인 목회자들의 부패상들의 심화 속에서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평신도들의 영적 개혁의 열망은 고조되어 가는 괴리 속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먼저 로마교황의 타락성을 고찰해 보자.


1. 교황수위권을 바탕으로 정치권력 화된 교황권과 타락 현상

종교개혁 당시에 교황을 중심으로 한 로마교회의 교권은 대단히 발달되어 있어서 늘 황제를 비롯한 세속 군주들을 지배하거나 권력 암투를 벌일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강력한 권력을 장악한 교황들은 목회적인 관심보다는 웅장한 교회건물을 세우고 화려한 예배의식을 거행하는데 더 관심이 있었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의 거대한 건물을 세우기 위해 교황 레오 10세는 사면부(indulgentia)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로마가톨릭의 성직자들의 타락은 교황의 수위권 주장에 따른 목회자 직책의 계급화와 성직자 선출제도의 붕괴에 있었다. 초대교회는 감독을 비롯한 성직자들을 선거했으나, 게르만민족 이동의 혼란 속에서 성직자 임명권이 점차 세속 군주들이나 영주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러한 부패상을 극복하기 위해 힐데브란트의 주도 하에 11세기에 접어들어 로마교황을 추기경단의 선거로 선출하게 되었고(1059년), 그 이후에 서임권투쟁을 거쳐 교황이 고위성직자들을 서임하게 되었다(1122년). 이러한 성직서임권과 성직계급제에 따른 권력의 중앙집권화의 결과로 로마교황청이 부패하게 되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일반적인 원리와 같이 교황청의 절대 권력은 점차로 부패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성직자들의 전체적인 부패를 가져왔다.

이러한 교황의 부패상에 대해 루터는 95개 반박문 가운데 82문에서 “왜 교황은 사랑(가장 거룩한 것)과 그 영혼들의 최고의 필요를 위해서 연옥에서 모든 영혼들을 해방하지 않는가? 이것은 도덕적으로 모든 이유들 가운데 최고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교황은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한다는 아주 사소한 목적으로 인하여 가장 썩어지기 쉬운 돈을 받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있다”고 말한다.1) 교황은 사랑과 영혼들의 필요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영혼을 사면해 주기 않으면서도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한다는 사소한 목적을 위해서 썩어지기 쉬운 돈을 받고서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타락상을 연출하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 루터는 81문부터 91문까지 사면과 관련하여 평신도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형식으로 당시 로마교황의 부패상을 나열하며 비판하고 있다. 그는 86문에서 “오늘날 교황의 수입은 세상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의 수입보다도 더 많은데 왜 교황은 가난한 신자들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베드로 성당 같은 성당 하나를 세우지 않는가?”라고도 반문한다. 루터는 당시의 사면부 판매를 가져오는 부패상의 근원에 교황의 돈에 대한 탐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간파하고 비판하고 있다.

루터는 로마교황청이 독일교회를 수탈하기 위해 불법적인 교회법마저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오랜 전에 독일 황제들과 제후들이 교황이 독일의 모든 영지로부터 첫 수입세, 즉 개개의 영지의 첫 해 수입의 절반을 거두도록 허용하였다. 이것은 교황이 회교도와 이교도에 대항하여 기독교를 보호하는데, 귀족들에게 너무 부담을 주지 않고 성직자들도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교황은 이것을 100년 이상 조세와 조공으로 전환하여 왔다.2) 주교들과 영주들은 세속권과 영적 권한을 가지고 국민을 보호하여 첫 수입세의 납부를 중단하거나 폐지해야 한다. 그런데도 교황은 첫 수입세, 성직록에 대한 교황의 6개월간의 수입을 착복하고, 그 외에도 자유 교구령의 소유자가 로마에서 사망하면 그것도 차지하고, 분쟁을 만들어 그것을 차지하는 등의 방식으로 성직록을 착복한다.3)

츠빙글리는 당시 취리히에서 종교개혁의 원인이 되었던 사순절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한 규정과 관련하여 1차 논쟁의 67개 조항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것을 행할 의무가 없다. 그들은 아무 때나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다. 그러므로 치즈와 빵에 대한 로마 교황의 교서는 로마주의자들의 협잡(froud)임을 배운다”고 지적한다. 당시에 교황의 교서들이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수많은 교회법 규정들을 만들어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면서 그러한 규정들을 근거로 사람들을 처벌하고 벌금을 매기고 있었다.

칼빈은 로마교황의 수위권 주장이 어떻게 발전해 와서 당시의 주장에 이르렀는가를 『기독교강요』 4권 7장에서 상세하게 추적하며 분석하였다. 로마교황의 수위권을 주장하기 위해 위조문서를 이용했으며(IV. 7. 9) 카롤링거 왕조가 성립할 때 페핀은 지상의 지배권을 차지하고 자카리아스는 모든 감독들의 머리가 되어 영적 권한을 잡기로 하면서 교황의 수위권이 마침내 확립되었다고 보았다.(IV. 7. 17) 그리고 당시에 이르러 교황들은 “지상에 있는 최고의 수령이며 전 세계의 보편적 감독이라고 한다.” 이렇게 교황들은 권력을 장악하여 교회를 지배하고 있다.


2. 성직자들의 타락 상황 - 성직매매, 복수성직제, 부재성직제

성직매매는 성직자의 자리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행위이다. 이러한 성직매매는 중세 말기가 되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영국의 종교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리는 위클리프와 체코의 요한 후스가 『성직매매』(Simony)라는 책을 저술하여 이러한 행위들을 비판하였다. 보니훼이스 9세(1389-1404)와 존 23세(1410-1417) 하에서는 성직매매가 성행하였고, 그래서 1414년에 소집된 콘스탄츠 종교회의는 성직을 매매한 자들은 성직을 내 놓으라고 결정하였다. 성직매매의 대표적인 경우는 뇌물을 주고 교황 자리에 오르는 경우였다. 교황 알렉산더 6세(1492-1503)는 추기경들에게 뇌물을 주고 교황에 당선되었다. 그는 30살이 되기 전에 삼촌인 교황 캘릭스터스 3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다른 남자 셋과 잇달아 결혼한 부정한 여인을 정부로 두고 아이를 넷이나 두었는데, 또 다른 유부녀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둔 인물이다. 그는 교황이 된 후 자기 자녀들에게 교직과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세속 왕들이나 귀족들의 사생아를 주교에 임명하는 일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알렉산더의 후임이자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시작했던 율리우스 2세(1503-1512)도 뇌물과 이권 제공을 통하여 교황에 선출되었다. 이와 같이 교황들은 교황이 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뿌렸고 그렇게 교황이 된 후에는 많은 성직을 매매하였다.

13세기 이후 교회법에는 성직을 가진 자가 로마에서 사망할 경우 교황이 마음대로 재할당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교황 레오 10세(1513-1521) 하에서는 돈 받고 팔 수 있는 자리를 창안해 냈다. 이에 따라 Radix Omnium Malorum Avaritia(탐욕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라는 말의 첫 글자를 따서 로마(roma)라는 말이 유행하였다.4) 또한 성직을 친척들에게 수여하는 족벌정치의 경향도 점차 짙어가기만 했다. 그러한 가운데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성직을 차지하는 복수 성직제도 다반사였다. 헨리 8세의 고문직에 오른 월시 추기경의 경우, 요크대주교, 덜함 및 맨체스터의 주교, 월체스터, 세일스버리, 랜다프의 부재 주교지정과 성 알반 수도원의 원장직을 한 몸에 겸직하고 있었다. 독일에게 성직 겸직의 가장 악명높은 예는 브란덴부르크의 알버트인데, 그는 23세에 마그데부르그의 대주교직과 할버스타트(Halberstadt) 교구의 행정관직, 그리고 28세에 당시 독일에서 가장 수입이 맡은 마인츠 대주교직을 차지하였다. 그는 이러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들어간 비용을 갚기 위하여 1517년에 교황 레오 10세에게서 모든 벌을 면죄해주는 대사면부(plenary indulgence) 판매권을 얻었다. 그는 이 사면부 판매 수입의 반은 레오 10세 교황에게 지금하고 반은 자신이 차지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러한 복수성직제는 당연히 그가 여러 곳의 성직을 차지했으므로, 부재성직제를 낳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고위성직자들은 자신이 부재한 곳에는 무식한 하급 성직자들을 임명하여 성직을 담당하도록 만들었다.

중세의 성직매매는 면죄부판매와 관련되었다. 십자가 전쟁이 시작되면서 교황들은 십자군에 참여하는 자들에게 대사면을 약속하였고,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돈을 내어도 벌을 사면해 주었다. 이러한 사면제도는 고해성사와 연결되어 벌을 면죄받기 위해 사면부를 사도록 하였고, 아비뇽 교황청 시대에 이것은 교황청의 중요한 수입원이 되었다. 이러한 사면부의 권한은 후에는 연옥에 있는 자들의 벌까지 면죄해주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테첼의 이러한 사면부의 판매가 바로 루터의 공격의 원인이 되었다.

위클리프와 후스는 『성직매매』에서 배교는 성부에 대한 떠남이고, 훼방은 성자에 대한 이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비방하는 것이며, 성직매매는 성령의 교회통치를 배반하는 것으로 현세와 내세에 용서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5) 위클리프는 교황, 감독, 수도사들이 자행하고 있는 성직매매 행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고, 후스는 성직을 파는 성직자들, 그것을 사는 평신도들,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신학자들 모두가 성직매매자라고 비판하였다.

루터는 창세기 23장 강의에서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피는 매매될 수가 없다. 매매된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의 뜻과 선택에 따른 속임수 밖에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교황이 “5그로첸을 헌금하면 연옥에 있는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것이 진짜 성직매매이다”라고 하였다.6)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피는 성직과 속죄를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는 수도원에서 죽은 자를 위해 미사를 드려주고 돈을 받는 것도 성직매매라고 하였다. 따라서 교황이 있는 교회는 사단의 교회이며, 도둑, 신성모독, 가증한 것, 훼방으로 가득 차 있다고 지적하였다.7)

이렇게 교황들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추기경과 주교들은 독자적인 재판권과 행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칼빈은 로마의 주교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평신도들의 선출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로 그들은 미사의식을 행할 능력이 있을 뿐 성도들에게 성경말씀을 가르칠 목회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Inst, IV.5.4-5) 성직록은 사제에게 주어지는 수입원을 말한다. 이러한 성직록은 성직매매의 형태로 제공된다. 대부분이 친인척들의 관계를 통해 수여자에게 제공된다. 이것은 군주가 기사에게 주는 봉토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자들을 목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Inst., IV.5.6)

칼빈은 한 사람이 다섯이나 여섯 교회에 동시에 임명된다고 지적한다. 지금 군주의 궁정에서는 각각 수도원장직이 셋, 주교직이 둘, 대주교직이 하나를 가진 소년들을 볼 수 있다. 한 참사회 의원이 성직록을 여섯, 일곱씩을 차지하고서 수입을 받으면서 그곳 교회들은 전혀 돌보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Inst, IV.5.7) 칼빈은 이러한 악폐들을 하나님과 자연과 교회제도에 반대되는 해괴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주교들의 재판권에 대해 4권 11장 6-10에 걸쳐 분석한다. 이와 같이 고위성직자들이 타락하면서 성직매매 현상이 만연되었다.


3. 성직자들의 성적 타락

중세 시대에 가장 심각한 성직제도의 타락 원인은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성직을 물려주는 성직세습이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결혼은 거룩한 것이며, 모든 성직자에게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짐이 될 것이며, 셋째로 성직의 안수를 받을 때 결혼한 자는 아내를 버리지 말 것이요, 독신이었던 자를 결혼하지 말도록 규정하였다. 동방교회는 오늘날도 이 규정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는 5세기부터 독신제를 강조하였다. 레오 1세는 445년에 성직자 독신제도를 선포하였고 펠라기우스 1세(556-561)는 결혼한 성직자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교회 재산을 상속시키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11세기에 접어들어 당시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이 성직자들의 축첩제도였기 때문에, 성직자들의 독신성의 신성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더구나 당시 교회의 고위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성직자의 자리를 세습하였고, 성직을 사고파는 악습이 있었으며, 더 나아가 교회의 재정 관리에 커다란 어려움을 주었다. 교회재산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악습이 생겨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성직세습을 막고자 교황 그레고리 7세를 성직자들의 결혼내지는 축첩제도를 철저하게 금지하는 개혁을 단행하였다. 중세에 2차 라테란 공의회(1139)와 다른 종교회의들에서 성직 독신제를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직자들의 축첩제도와 성직세습은 중세 말로 갈수록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종교개혁 무렵에는 성직자들의 1/3에서 1/4이 축첩을 거느리고 있었고, 많은 수도사들도 부인들을 두고 있었다.8) 대표적인 경우로 에라스무스도 수도사의 자녀였다.


4. 하급성직자들의 무지와 빈곤

고위성직자들의 부유한 처지와는 정반대로 다수의 성직자들의 경제적인 수준이 매우 열악했을 뿐만 아니라, 교육수준 역시 최저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지방 사제직을 차지하기 위해 초급 라틴어와 기초적인 요리문답의 신학, 미사를 올리는데 필요한 제례의식을 배웠을 뿐이다. 특히 시골에 살고 있는 성직자들은 매우 빈곤하였다. 복수성직자들의 교구를 돌보는 사람들을 대목(vicar)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자신들의 수입으로만 살아갈 수 없어 여러 교구를 동시에 맡던지 다른 직업을 가져야만 했다. 1546년 트렌트 종교회의에서 클레르몽의 주교는 보고하기를 자기 주교구의 800교구 가운데 60개만이 정상적인 교구 신부들이 봉직하고 있고, 나머지는 대목들이 돌보고 있었다.9) 한편에서 당시 생겨나고 있던 대학들은 스콜라주의 학문을 가리키고 있어서 현실 목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점도 성직자들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로마가톨릭의 하급성직자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미사 매뉴얼에 따른 의식집례자의 수준에 머물게 되었고 따라서 예배는 점점 더 미신적인 수준으로 타락하여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사를 비롯한 7성례는 교회의 치부수단으로 전락하였고 그에 따른 부패 속에서 고해성사에서 부과된 벌을 사면받기 위한 사면부 판매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수준 낮은 성직자들에 의해 제공되는 사목에 대해 많은 평신도들을 불만을 느끼고 있었고, 따라서 반성직주의 성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5. 반성직주의의 등장과 발전

중세 후기로 가면서 성직자들이 타락하고 로마교회의 부패가 심해지자,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위클리프와 후스의 강력한 반성직주의를 불러 왔다. 이러한 반성직주의는 교황은 적그리스도이고 성도들의 삶에 고통을 가중시키는 사제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는 인문주의자들이 등장하고 반성직주의 문학이 꾸준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그러한 반감들은 바로 종교개혁의 원동력이 되었다. 중세 반성직주의는 교황들과 대주교들을 중심으로 세속권력까지 차지하고 성직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특권을 소유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정치적 반성직주의(종교회의주의자들), 문화적-교육적 반성직주의(인문주의자들), 경제적이고 교리적인 특권에 반대하는 반성직주의 등이 있었다.10) 대표적으로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 1407-1457)는 교황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강화시키고자 만들어냈던 콘스탄틴 황제의 기진장이 위조된 것이라는 것을 비평적, 역사적 방법과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밝혀내서 교황들의 권위에 타격을 가했다. 여러 인문주의자들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연구하여 성서 원어 연구에 영향을 주었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에라스무스이다. 특히 에라스무스는 당시 고위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풍자를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그리스도의 병사의 편람』(Enchiridion militis Christiane, 1501)11)에서 앞으로 종교개혁의 전망은 성경을 읽은 평신도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에라스무스는 중세의 기계론적인 성례관과 타락한 성직자들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성경을 읽고 그것을 실천하는 평신도들에게서 교회 개혁의 가능성을 읽었다. 에라스무스는 교회 개혁은 영적인 방식이라고 보았다. 엔키리디온이 무기라면 이 책의 제목의 의미는 기독교 병사들의 무기(칼)인데, 기독교인들은 전쟁을 하기 위하여 싸울 어떤 유형의 무기들을 소유해야만 한다. 사실상, 전사가 그의 무기를 더욱 더 잘 이해하고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가 전투에서 더 잘 싸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정확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에라스무스는 생사 사이에 차이를 의미할 수 있는 두 가지 유형의 무기들의 개관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첫째로 그는 그들에게 기도의 무기를 사용할 것을 격려한다. 다음으로, 그는 지식의 무기에 대하여 그들을 교육한다. 그는 “하늘을 향하는 순수한 기도는 당신의 열정을 적군이 접근할 수 없는 요새인 하늘로 끌어올린다”라고 말한다.12) 둘째로 에라스무스는 이 기도는 지식과 연결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기도는 그 자체로 충족적인 것이 아니라 지식의 도움을 요구한다. 이 지식은 성경의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는데 이르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며, 이러한 지식을 얻는 데는 이방 철학자들의 지식도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그는 “성경에 대한 열렬한 연구가 쉽게 물리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난폭한 시험도, 적으로부터의 어떤 공격도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13)

에라스무스는 이 책에서 교회 갱신의 방안으로 영적 갱신을 제시함으로써 성직자들의 중재를 통한 기독교가 아니라 성경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평신도들을 통한 교회개혁의 방안을 제시하였다. 에라스무스의 이 책은 교회 개혁과 사태의 전반적인 통제에서 평신도 지성인 혹은 성경 독자의 역할에 대한 준종교적인 이해를 제시한다. 에라스무스의 박식하고 경건한 평신도에 대한 비전이 그 시기 교회와 수도원 개혁에 대한 그의 논의의 배후에 있다면, 교회 갱신에 대한 그의 비전이 신실한 문해력을 가진 평신도들을 구별되는 종교적 소명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14)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Praise of folly)과 대화집(colloquia)에서 당시 로마가톨릭의 타락상 가운데 미신과 탐욕이 만연해 있으며, 성직자들과 관련하여 교황과 고위성직자들과 수도원장들과 수도사들의 부패상, 그리고 스콜라주의 신학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미신에 대하여 하나님보다 성인이나 성물을 숭배하는 것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질문하고 있다. 당시 교회의식의 외형화와 형식화는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미신적인 것이었다. 그는 당시 시대가 율법에서 자유를 가져다 준 신약성경의 시대가 아니라 온갖 율법에 매여있던 구약시대와 유사하다고 지적하였다.15)

에라스무스는 교회의 황금욕과 관련하여 교회의 대부분의 의식은 돈 때문에 거행된다고 비판하고 있다. 세례, 결혼, 고해성사, 미사, 교회 헌당 등을 명목으로 돈의 요구하고, 선불해 주지 않으면 이러한 의식들을 진행하지 않으며, 심지어 장례식도 돈을 많이 낼수록 죽은 자는 하늘의 더 높은 자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었다.16) 그는 이러한 잘못들의 책임을 탁발수도사들에게 돌릴 뿐만 아니라 고위성직자들에게도 돌리고 있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이들이 마땅히 교회의 부패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우신예찬』에서 이들의 부패상을 고발하고 있다. 교황들은 그들의 돈의 추수를 모으는데서 가장 성실한 인물들인데, 그들의 모든 사도적 임무들은 주교들에게, 주교들은 교구담임자들에게, 교구담임자들은 대리들에게 맡기고 있다.17) 교황은 겸손과 복종이라는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 하지만, 그 대신에 보물과 명예, 지배, 수입 같은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에라스무스는 교황, 추기경, 주교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이젠 그들은 자신들을 살찌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양들에 대한 관심을 제처 두었거나, 그리스도께 떠 맡겨 놓았거나, 소위 말하는 대리자들(Vicar)에게 맡겨 놓았다. 그들은 그들의 이름이나, 주교(bishop)라는 단어가 뜻하는 노동, 보살핌, 고생을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돈이 생기는 일에는 주교의 직책을 열심히 수행하고 올빼미같이 눈을 부릅뜨고 있다.”18)

에라스무스를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자들은 성직자들의 윤리적인 타락을 비판하면서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로마가톨릭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풍자하며 비판하였고 그러한 작품의 영향력을 통하여 종교개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에라스무스는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풍자하여 그 실상을 드러내는 데는 기여하였으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풍자를 통한 교회 비판의 한계였다.


III. 종교개혁자들의 새로운 목사상의 제시

1. 루터의 새로운 목사상의 제시

루터는 95개 반박문을 게재하면서 중세교회의 타락상, 특히 사면권과 관련된 교황의 타락상을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그의 개혁활동은 회개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하여 목회자의 윤리를 갱신한다. 사면부 판매로 촉발되었던 95개 논제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도 회개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루터는 95개 논제들 가운데 1논제에서 “우리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신자의 삶 전체가 참회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고 하였다.19) 회개하라는 말씀을 고해성사로 이해하고 있던 당시에 고해성사가 아니고, 더구나 단순한 마음속에서의 참회로 끝나서는 안 되고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을 포괄하는 전체의 삶이 참회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진정한 변화를 수반해야 하는 회개를 고해성사와 그 성사에 따른 벌을 면제받기 위한 사면부 판매수단으로 변질시켜 돈을 버는 수단으로 만든 교황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있다. 95개조 반박문은 우리의 참다운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회개이고, 우리의 죄의 인식이며, 이러한 죄의 인식에서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의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회개의 삶의 요청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참다운 성화의 열매를 맺어가야 할 것을 요청하였고, 이것은 성직자들의 새로운 윤리의 확립을 요청하고 있었다.

둘째로 루터의 반성직주의는 특권신분인 성직자들의 권세를 깨트리는 것이었다. 루터는 교회와 세속권력과의 결속인 콘스탄틴주의를 깨뜨리고 교회의 교회다움의 회복을 통하여 참된 교회를 세우고자 하였고, 그러한 가운데 새로운 변혁의 역사를 시작하였다. 루터는 자신의 개혁활동을 방해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반대세력을 교황을 정점으로 계급화되어 당시 교회를 지배하고 있던 성직계급주의라고 보았다. 루터의 『기독교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독일 귀족들에게 고함』(An den christlichen Adel deutscher Nation von des christlichen Standes Besserung)은 결국 그 당시 교회의 부패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정하기 위하여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세우고, 그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교회를 개혁해야할 성직자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있는 교황은 세 개의 담을 세워 모든 개혁의 길을 봉쇄하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었다.20) 그리고 그러한 이익 추구를 합법화하기 위하여 신분 차이의 벽을 세워 평신도들의 성직자들에게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올바른 성경해석의 길을 봉쇄하여 교황의 성경 해석권을 주장하며, 그리고 종교회의 소집의 권리를 교황에게만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루터는 여기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타락한 교황들의 윤리를 무너뜨리고 건강한 목회자들의 윤리를 세우기 위하여 그 유명한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하는 것이다.

루터가 주장한 만인제사장직에 나타난 목회자들의 윤리는 무엇인가? 교회 안에서 성직자들의 신분을 절대화시키는 것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성별되고 제사장이 된다. 속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세례를 받았고 또 동일한 믿음과 동일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들이 사제이자 제사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21) 루터의 이 논문은 반성직주의의 입장에서 사회적 신분으로서의 성직자들의 철폐를 목표로 삼아 기독교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독일 귀족들에게 호소하는 글이었다.22) 루터는 교황의 행정관리들인 추기경들의 자리가 로마가 독일 교회의 재산을 강탈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리라고 비판하면서, 그러므로 추기경의 숫자를 줄이든지 교황이 그들을 부양하라고 비판한다.23) 추기경에게 천 굴덴을 바치는데, 프랑스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금지되었는데 독일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반문한다. 둘째로 성경해석의 독점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성경에 어긋나는 해석을 하는 사람의 말보다는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비천한 사람의 말이 더 권위가 있다. 셋째로 종교회의 소집권의 독점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히려 독일 귀족들에게 그들도 신분적으로 로마교황과 동일한 왕 같은 제사장이기 때문에, 교회 개혁의 길로 나서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길은 독일에서 영주들의 지원을 받는 개혁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영주들의 지원을 받는 개혁은 독일의 국민들에게도 새로운 신앙의 길을 열어주었다. 루터는 만인제사장을 실현하기 위하여 평신도들을 위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였고, 올바른 성경해석의 길을 위해 대소요리문답을 제정하였다. 이러한 만인제사장의 교리는 성직자들과 목회자들의 지배의 윤리를 무너뜨렸다. 그들만 부름받은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제사장이라면, 그들의 직분에서 귀천이 있을 수 없다. 목회자들이 부름받은 그 직분에서 동일하게 성실하게 해야 하는 바와 같이, 세상의 직업으로 부름받은 사람들도 그러한 부름을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루터는 만인제사장주의를 통하여 성직자들의 신분적인 서열을 무너뜨렸다. 만인제사장주의는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첫째 단계에서는 모든 믿는 자들의 신분적인 동일성을 주장하여 로마가톨릭 성직자들의 교회행정 권력의 독점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루터는 교회지도자들이 자신의 교회 개혁 활동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심지어 이단으로 몰아가자,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개혁을 수행하기 위하여 1520년대 3대 저술을 통하여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하였다. 『독일귀족에게 고함』, 『교회의 바벨론 포수』, 그리고 『기독교인의 자유』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는 중세에 교황을 중심으로 한 고위성직자들이 종교회의 소집권을 독점하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신분적인 차이로 구별하여 평신도들의 교회 행정에 대한 접근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모든 사람들은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세례를 받은 동일한 제사장 신분이므로, 고위성직자들을 중심으로 한 종교회의만이 교회 개혁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독일의 귀족들 내지는 영주들이 교회를 개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통하여 독일 영주들의 종교개혁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어 독일의 종교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루터는 세속권력이 교회의 영적인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교황이 세속권력까지 장악하여 그 권력으로 교회를 타락시키기 때문에, 영적 권한과 세속적 권한을 구분하여, 말씀선포와 성례집행이란 교회의 고유한 영역에 대한 간섭에는 반대하였다. 둘째로 처음에 회중주의의 근거하여 개혁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나, 농민전쟁 이후에 국가교회 체제로의 이행을 가져왔다.24) 셋째로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였다. 넷째로 직업의 소명개념을 가져왔다.

루터와 멜랑히톤은 사제였던 중세의 성직자상을 비판하고 목회자들이 말씀전파와 성찬집행이라는 목회적인 소명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였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터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제사장으로 성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1519년에 히브리서를 주석하면서 교회는 하나님의 입이라고 하였다. 교회가 하나님의 입이 되기 위해서 목회자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루터는 참다운 교회의 표지를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정당하게 시행되는 곳이라고 보았다.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하는 것이 목회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었다. 교회는 성례가 정당하게 시행되는 곳인데, 성례는 보이는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성례의 시행도 말씀의 선포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기에 있어서 목회자에게 가장 강조된 것은 말씀선포자라는 사명이었다. 그리고 성례를 성례되게 하는 것도 성례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성례를 거행할 때에도 성례에 관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말씀을 올바르게 알아서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기 위해 목회자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학자였다. 그리고 말씀을 연구하여 선포할 뿐만 아니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의 목회자였다.

루터의 실질적인 교회개혁과 목회의 시작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피신했다가 비텐베르크로 귀환하여 사순절에 8편의 설교를 하면서 출발되었다. 그는 여기서 칼 슈타트의 성상파괴의 과격한 종교개혁에 반대하면서 동시에 아직도 성유물과 성상숭배에 매여 있는 성도들의 연약한 믿음을 깨우치기 위하여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교회 개혁은 복음의 선포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진정한 목회의 개혁은 목회자가 올바른 복음을 선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25) 루터의 모든 목회 행위는 오직 성경에만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목회 윤리는 성서에 근거하여 세워졌다.

독일어 Seelsorge라는 말은 목양 혹은 영혼의 돌봄이라고 하는데, 이 영혼의 돌봄은 형제가 다른 형제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데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영혼의 돌봄은 공동체의 길이다. 영혼의 돌봄은 설교를 통해서도 일어나고, 다른 한 편에서 교제와 위로에서 일어난다. 교회의 영적 돌봄은 위로뿐만 아니라, 조언과 권면도 포함한다. 이러한 영적 돌봄의 목적은 그리스도인이 해방된 영혼을 따라 살도록 돕는 일이다.26)

따라서 목회자들의 중요한 사명은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성직자들을 육성하기 위하여 독일 학교 교육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독일 귀족들에게 각 지역에서 학교를 세워 소년 소녀들을 교육하고 동시에 필요한 도서관을 세우라고 하였다.27) 또한 목회자가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른 교리를 잘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루터는 1529년에 작센 지방의 농촌 교회들을 순방한 후에 이러한 교리교육을 위해 대소요리문답을 작성하여 교육하도록 하였다.

말씀전파라는 설교의 사명을 위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인문주의의 커리큘럼을 통해 수사학과 변증학을 종합하는 교육을 시행하였고,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철저하게 교육하였다. 기존의 스콜라주의를 통한 교육으로는 새로운 윤리를 개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려되어야 할 것은 하급 성직자들의 무지에서 생겨난 신자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한 스콜라주의 중심의 교육과정의 개혁이 요청되었다는 점이다.28) 중세 대학들은 스콜라주의 중심의 논리적이고 사변적인 신학을 교육하여 목회에 도움을 주는 신학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문주의를 가미한 성서중심의 교육이 요청되고 있었다. 여기서 루터는 중세 성직자들의 교리적인 오류에 반대하는 강력한 반성직주의를 주장하였다. 루터가 가장 문제를 삼았던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성직자들이 중재자의 입장을 하면서 지배하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이 이러한 중재자의 역할을 하면서 여러 가지 부패가 발생하였고, 그에 따른 성도들의 반감이 강하게 발생하였다. 여기에서 루터는 성직자들의 부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신칭의와 오직 성경과 만인제사장의 원리를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에 의해 행위에 의한 구원의 근거를 무너뜨렸고, 오직 성경이란 원리에 의해 교회 종교회의와 교황들의 성경적 근거 없는 것을 결정을 부정했으며, 평신도와 성직자 사이의 신분적인 차이를 구별하는 만인제사장의 원리에 의해 성직자들의 중보자직의 독점을 무너뜨렸다. 루터는 이러한 원리들을 사용하면서 반성직주의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을 추진하였다.

루터의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육과정의 개편은 근본적으로 성경을 근본교제로 삼으면서 올바른 목회사역을 위한 잘 준비시킴으로써 그의 종교개혁의 원리가 목회현장에서 실현되는 토대를 놓았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목회 윤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육이 건강한 목회를 할 수 있는 신학적인 토대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건전한 신앙인격을 육성하는데 노력해야할 것이다. 루터는 농민전쟁의 위기 속에서도 대학교육의 질을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목회 현장에 있는 목회자들에게 평생교육의 차원에서 그들의 목회활동에 도움이 되는 주석, 설교집, 그리고 경건 자료들을 제공하였다.29)

그리고 목회자 윤리의 가장 핵심은 목회자가 성도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목회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사실 성직 임명은 처음에는 성서의 권위를 근거로 하여 사도들의 예와 규정을 따라서 사람들에게 말씀의 사역자들을 제공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고 하였다.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신비들이 알려지게 되는 말씀에 대한 공적 사역은 교회의 전체 권력이 의존하는 바, 최고의 최대의 교회의 기능들로써의 거룩한 임명에 의해서 수립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말씀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요 그 안에 있는 것은 오로지 말씀의 힘에 의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30) 그는 보헤미아의 성직자들을 향해 로마교황청은 제사인 미사를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듣는 권한을 주는 성직임명을 하기 때문에 거부하라고 권면한다.31) 신약에서 사제는 임명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출산을 통하여 중생의 씻김 가운데 물과 성령에 의하여 출생된다.(요3:6) 진실로 모든 기독교인들은 사제들이요 모든 사제들은 기독교인들이다. 교황 주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하고 교회를 멸하려는 자들 이외에는 말씀의 사역을 부여하기를 기꺼워하지 않는다면, 말씀 없이 교회가 멸절되거나 사람들이 투표를 하여 필요한 대로 능력 있는 사람을 하나나 다수를 선출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기도와 안수를 베풀어 이러한 자들을 전체 집회에 천거하고 또한 그 정당성을 부여하게 하라. 그리고 그들을 합법적인 주교들과 말씀의 사역자들로 인정하고 영예를 부여하도록 하라. 그리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것이 하나님에 의해 행해지고 성취되었음을 믿도록 하라.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하여 신자들 즉 복음을 믿고 고백하는 자들의 고통된 합의가 실현되고 표현되기 때문이다.32) 루터는 선거를 통해서 목회자들에 세워져야 하고, 로마의 임명을 거부하라고 주장한다.


2. 츠빙글리의 “목자”에 나타난 목회자 윤리

루터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주장했으나, 농민전쟁 이후에 영주국가 체제의 교회제도를 수립하였고, 츠빙글리는 교회와 국가의 통합을 통한 예언자적 신정정치를 통한 취리히 칸톤의 자유를 주장하였다. 츠빙글리는 목회자이면서 시의회와 직접적인 협력을 통해 교회와 시를 함께 개혁하려고 하였고, 여기서 치리의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하였다.


1) 67개 조항과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에서 제시된 목사 상

츠빙글리는 취리히의 종교개혁자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성경말씀의 연속적인 강해(lectio continua)에서 찾았다. 그는 마태복음, 사도행전, 갈라디아서와 베드로전후서 등의 순서로 1525년까지 신약전체를 강해하면서 교육목회를 통한 성도들의 삶의 개혁을 추구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츠빙글리는 1523년 1월에 이루어진 제1차 취리히 토론을 위해 작성한 67개 가운데 62항에서 성경에 근거한 목회자의 성격과 역할을 다시 정의하였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들 외에 어떠한 사제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성경은 최근에 고안된 성직 임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하지 않으며(61항), 주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영예가 주어져야 할 뿐만 아니라 저들에게 육체적인 생계가 제공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63항)

그는 또한 1523년에 저술한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섬겨야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권세를 가지고 지배하는 로마가톨릭의 성직자들, 수도사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고위성직자들이 세속 권력자들로서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파수꾼을 뜻하는 예언자, 또는 주교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으며, 만약 그들이 복음의 선포자, 그리스도의 전달자 또는 파수꾼이기를 자처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33)


2) “목자”에 나타난 목사 상

츠빙글리는 “목자”를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회자상을 제시했는데, 62항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자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논증하였다. 이 글은 츠빙글리가 취리히에서 진행된 2차 논쟁 과정이었던 1523년 10월 28일에 했던 설교를 확장하여 1524년에 출판한 글이다. 그는 이 글에서 로마가톨릭과 구별되는 개신교 직제의 새로운 목회자상으로 ‘목자’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이 글에서 개신교 직분론과 설교론, 그리고 목회론의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기에 점차로 복음적인 설교 금지, 설교에서 사회적이고 경제적이며 종교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비판 금지 등의 반종교개혁적인 조치들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글을 출판하게 되었다. 츠빙글리가 말하는 목자의 가장 핵심적인 직무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글의 1부인 헌정사에서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의 왜곡된 신앙은 오히려 성서에 근거한 그리스도교의 직분과 도덕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요청하는데, 2부에서 목자에 대한 이상적인 모범은 그리스도라고 제시한다. 그리스도는 가르침과 삶, 그리고 예언과 목회가 일치된 분이며, 그를 따른다는 것은 1. 가톨릭교회에 기원을 둔, 가장 끈끈한 굴레인 가족과의 연대와 결별하는 것이며 2. 자기 부정과 십자가 지기이며 3. 복음적인 선포인데, 이 복음적인 선포는 인간의 비극, 은혜와 화해, 그리스도의 삶이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불신앙과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서 절대적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따른 용기, 5. 항상 정의가 동반된 사랑, 6. 노예근성의 보상심리인 신앙과 반대되는 성령의 선물로서의 자벌적인 절대 순종이다. 다음으로 3부에서 거짓 목자에 대해서 논한다.34)

(1) 우리들의 목자직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

성서에서 목자와 목자가 인도하는 양들이란 하나님과 우리 사람들을 빗대어 말하는 비유이다. 우리들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목자라고 말했다.(요10:11)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진정한 하나님의 목장이고 초원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무지와 유혹이라는 인간적인 가르침의 어두운 창고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지혜와 빛으로 이끌어 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주는 자유”(롬8:21)로 이끄는 인도자이며 목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님의 양떼를 돌보라고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목자의 직분과 과제를 수행할 때, 그 어떤 다른 것을 따라 행동해서는 안 되며, 오직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모형을 배워야 한다. 목자의 직분과 과제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속에 나타나 있으며, 비록 이미 많은 선배들이나 예언자들에게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35)

주님의 말씀을 통해 목자는 어떤 자세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목자의 길을 가려면, 목자의 길을 반대하거나 방해하는 모든 세력들과 결별해야 한다. 그것이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심지어 목자의 부모라도 잘못된 길로 인도하려고 하면, 자신의 부모들과 싸워야 하고, 원수가 될 수 있고, 갈라설 수도 있어야 한다.(마10:34-37, 눅14:26)36) 그리고 주님을 따라가려고 하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야 한다.(마16:24-26; 눅9:23-24)37) 목자는 자기 자신을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이며(사57:15), 하나님이 그를 통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하였고,(308) 그런 일이 일어나자마자 설교를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으로 양떼를 인도해야 한다.

(2) 설교론

그리고 목자는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설교한 것같이 설교해야 한다.(마4:17) 우리는 죽을 병을 얻었다가 건강하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해야 하며, 구원만을, 복음만을 선포해야 한다.(마10:7; 막16:15) 복음은 확실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복된 소식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목자는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죄에 대한 인식은 자기부정으로 인도하며 하나님의 은총만을 믿게 만든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다.(롬8:32) 복음의 선포는 죄에 대한 회개를 가져온다.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고 난 사람들은 이제 바른 삶을 살아야 하고, 옛 사람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과 같은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엡4:24). 그들은 주님이신 예수님을 입어야 하는데, 이 말은 주님이 사신 것같이 산다는 의미이다.

(3) 목회론

목자에게 가장 훌륭한 것은 그가 말로 가르친 것을 행동으로 사는 것이다.(마5:19) 따라서 목자는 절대로 진실된 옷을 입지 않고 작은 겉옷을 걸쳐서는 안 된다. 그는 수사의 뾰족한 모자로 그리고 모자가 달린 옷으로 자신을 숨겨서는 안 된다. 오늘 날 대부분의 수사들과 신학자들에게서 보는 것처럼 그들 속에는 엄청난 욕심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수많은 시편을 웅얼거리며 외우고 다니지만 분명한 하나님 말씀을 내던져 버린다. 단순한 사람들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위선적인 행동만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적으로 그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가지로 살고 있으며, 따라서 목자는 사람들이 만든 이론에 따라서 살아가면 안 되고, 그가 설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완전한 모범이신 예수님은 어떠한 위선적인 행동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들도 그 어떤 위선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단어는 목자가 거듭나는데 매우 중요하다. 목자는 성도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가르쳐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자가 스스로도 반드시 그러한 덕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38)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데, 그들의 죄악된 상황과 구원받은 것과 다시 병들지 않도록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쳐야 한다.(딤후 3:16-17) 이것을 행할 때 첫째로 목자는 반드시 모든 사악한 행위에 대해서 냉정하게 공격해야 한다. 그리고 목자는 매우 교활한 이 세상 권력의 위협과 그 어떤 위협에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렘1:9). 목자는 비록 매우 높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에 대항하여 높이 쌓은 모든 것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후10:4-5) 주님은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사제들을 가장 강력하게 공격하였고 비난하였다.(마23:16-36; 눅11:37-12:5) 츠빙글리는 로마가톨릭의 성직자들의 부패상을 열거한 후에 우리는 이러한 자들로부터 그리스도를 본받아 괴로움을 당하는 양떼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나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러 왔다고 말씀하시고(요10:11) 실제로 그렇게 하셨다.39)

권력자들은 정의롭고 공정하기보다는 그들 밑에 있는 정직한 백성들을 괴롭힌다. 그러므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러 보냄 받은 모세와 사울 왕의 악한 행위를 책망한 사무엘과 같이, 목자는 왕이나 군주나 정치 권력자들의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면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된다. 목자는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보다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행5:29)고 정당하게 왕이나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40)

그런데 목자가 이 세상의 높고 위대한 권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할 때, 목자에게는 훌륭한 장비가 필요하다. 목자들의 방어무기는 영혼을 죽일 수 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마10:26, 28)(331)과 세상을 이기었다는 승리자 예수의 모습이다. 목자에게는 다른 신적인 덕목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사랑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목자는 하나님의 양을 번식시키고 돌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사랑으로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있으므로(요일4:16) 하나님이 목자를 사랑의 불 속에서 태우도록 하기 위해 목자는 항상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41)

(4) 목자가 받을 상

목자가 받을 상에 대해, 주님은 박해와 함께 백배의 보상을 얻는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바로 교회의 성장을 통해 얻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이 보상은 육체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목자가 해야 할 의무 때문에 목자에게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더 만들어 주는 보상이다. 박해의 약속은 순교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42) 따라서 고난과 박해를 피하는 사람은 목자가 아니라 탈영병이다.43)

(5) 거짓 목자들에 대해서

거짓 목자들이란 다른 아닌 거짓 예언자들이인데, 열매로 알려진다.(마7:15-6) 거짓 예언자들은 위장된 모습으로 다가오는데, 교황추종자들이 바로 이러한 거짓 목자들이다. 이들의 말은 늑대가 이빨을 드러내듯이 논쟁적이며 오직 교황에 대한 충성심만을 드러낸다. 그들의 말은 성직록을 수여하는 권리, 연금을 받을 권리, 또는 새로운 성직을 가진 사람에게 분담금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일 년 헌금을 인상할 권리, 성례전에 다시 참가할 수 있는 벌금을 인상하는 권리, 그리고 파문에 대한 벌금을 매길 수 있는 권리, 곧 온갖 쓰레기 같은 그들의 권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진정한 회개는 묻지 않고 회개의 성례를 통해 돈을 요구한다.44) 거짓 예언자들이 말하는 교회는 교황의 교회이거나 동호회에 불과하다. 현재 교황추종자들은 교부들을 따라 복음을 전하라고 하나,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고, 교부들의 글들이 그것에 일치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45)

거짓 목자를 통해 참 목자를 알게 된다.(디도서 1장 5-9절, 딤전 3:1-7) 바울의 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성적으로 방탕하고, 결혼하지 않는 모든 사제는 거짓 목자라는 사실이다. 술독에 빠져 있거나 방탕한 사람들은 또한 거짓 목자들이며, 거짓말하는 허풍장이와 광신자는 거짓 목자이고, 가난한 사람을 보호해 주지 않는 사람들은 거짓 사제들이다. 거짓 목자는 자신의 사목직을 이용해서 자신의 형제들을 부자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행동들을 고위 주교들에게서 매일같이 보고 있다. 그들은 조작된 면죄부와 특혜, 그리고 법률문서들을 통해, 또한 그 밖의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자신의 친척들이 커다란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46)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설교하러 떠날 때, 지팡이를 가지고 가지 말라고 했는데(마10:9), 목회직 이외에 지팡이, 다시 말해 정치적 권력을 가진 사람은 목자가 아니라 늑대이다. 그들은 가장 크고 좋은 부분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모든 세상의 섬김을 받으면서도 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처하고 있다. 어느 곳이든 어느 한 민족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면, 그 거짓 목자들은 그 자신들의 먹잇감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안다.47) 거짓 목자의 9가지 표지는 1)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는 자 2)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자기 생각을 가르치는 자 3) 자신과 교황권의 영광을 위해 하는 자 4) 폭정을 방조하는 사제들 5) 말씀의 내용이 행동으로 나타나도록 인도하지 못하는 자 6) 가난한 자가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도록 버려두는 자 7) 세상같이 지배하고 통치하는 목자 8) 돈을 탐내는 목자 9) 창조자에게서 피조물에게로 인도하는 자들이다.48)

그러나 교황의 추종자들은 그들의 우상, 곧 교황을 이 땅에 있는 하나의 신으로 부르고 있으며, 교황이 본질적으로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고 그에게 하나님보다 더 많은 존경과 영광을 바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교황은 오직 자신의 이성과 꿈을 의지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다.49)

츠빙글리는 1525년 6월 19일부터 예언회(prophezei)를 통해 신학생들을 교육하여 교회개혁의 인재들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중세 성당의 제단이 있던 곳에서 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50) 여기서 신구약 성경의 주석과 강해가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성경연구는 칼빈을 비롯한 개혁교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츠빙글리는 목자론을 통해 참된 목사직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목회자의 윤리는 목사는 거짓 목자가 되어서는 안 되고 참된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참된 목자는 그리스도의 목자직을 모범으로 삼아 따라가는 사람이며, 그리스도가 설교한 것같이 설교하고, 성도들에게 설교한 것같이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거짓 목자같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열매 맺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목자의 직분과 과제는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 있으니, 우리는 그 모형을 따라 배우며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츠빙글리는 취리히 교회와 도시를 동시에 개혁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사명을 달성하고자 1524년에 결혼법정을 설립하고 여기서 시의회 의원들과 목사들이 도시위원회를 구성하여 함께 치리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여기서 주도권을 시의회 의원들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츠빙글리는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역할과 함께 시의회 의원들과 협력하여 시민들의 도덕적인 삶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그의 직제의 복수성에 대한 암시성이 드러나고 있다.


3. 마틴 부처의 『참된 목회학』에 나타난 목사 상

마틴 부처는 루터의 영향을 받아 1518년에 종교개혁에 가담하였고, 1523년 스트라스부르에 정착하면서 이 지역의 교회 개혁에 가담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1529년에 미사를 폐지하고 개혁된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마틴 부처는 츠빙글리와 달리 목회자들의 영적 감화를 통한 치리의 시행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목회자들에게 올바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참된 목회학』(Von der waren Seelsorge und dem rechten Hirtendienst)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부처는 상담을 통하여 영혼의 안내자로서의 목회자 상을 잘 보여 주었다. 부처는 당시 상황에서 ‘성도의 교제’가 소멸되고, 목회자들조차 ‘영혼의 돌봄’에 대하여 성찰하는 일이 드물어 ‘재난의 상황’이라고 말하면서 참된 목회관을 정립하고자 『참된 목회학』을 저술하였다.51)

이 책은 1538년 4월경에 독일어로 출판되었는데, 목회의 돌봄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었다. 이 책이 출판될 무렵에 스트라스부르에 스트라스부르 대학교가 세워졌으므로, 이 책은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주된 내용은 주로 직제와 목양에 집중되어 있으며, 책의 저술 대상자들은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직분자들, 일반 그리스도인들과 정부의 행정관료들이다. 이 책은 논쟁 대상자들은 당연히 로마가톨릭교회, 재세례파, 방종파(리베르틴파)들이었다.52) 주요 내용은 교회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 직분의 본질과 기능을 비롯하여 목양의 다섯 가지 주된 사역이 잘 정리되어 있다. 영혼의 돌봄의 주된 다섯 가지 사역은 에스겔 34장에 나타난 다섯 가지 양의 종류에 근거하여 제시되는데, 첫째 육신적인 부절제나 거짓 예배를 통해 주로부터 여전히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우리의 주에게로 인도하고, 그의 교제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 둘째 한 때 그리스도에게로 왔고, 그의 교회 안으로 들어왔던 자이지만, 육신적인 활동이나 잘못된 교리의 문제들을 통해 다시 길을 잃었던 자들을 회복시키는 것, 셋째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도 심각하여 타락하여, 죄를 지었던 자들을 참되게 개혁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 넷째 그리스도 안에 남아 있으면서 특별히 심하게 잘못된 일을 행하진 않지만, 기독교적 삶에서 어느 정도 약하고 병든 자들을 참 기독교적 강함과 건강 안에서 다시 세워 주는 것, 다섯째, 그들의 기독교적 삶 속에서 심각하게 죄를 짓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고, 병들지도 않은 자들을 모든 불법과 실패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이 계속적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1) 교회와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

부처는 이 책의 서문에서 교회의 일치는 동일한 의식들을 가지고 있는데 있지 않고, 동일한 교리와 신앙 그리고 성례전의 올바른 집행에 있다고 하여 종교개혁자들이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로마가톨릭의 비판을 반격하면서 교회의 교제는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특히 회개와 기독교적 권징(치리)과 영적 실천들이 교황주의자들에 의해 사라졌고 폐기되어 회복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교회와 그 직제에 함께 목회적 돌봄을 설명하여 나간다.

부처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는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정의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한 몸과 각각 서로의 지체들이 되기 위해 그의 성령과 말씀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모여, 그리스도이신 주 안에서 연합된 사람들의 모임과 공동체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한 몸과 서로 다른 지체들이 되기 위해 각 지체는 몸 전체와 몸의 모든 지체들의 공동적 개선을 위한 각자의 직무와 사역을 가진다”고 하여 교회의 각 지체가 직무를 가진다고 이해한다.53)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점에서 첫째 그리스도인들이 상호 간에 그렇게도 전체적이고 완전한 일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주목하고, 둘째로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또한 가장 진실하고도 열렬한 교제인지 셋째로 이 교제는 영적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적인 문제들 속에서도 가장 신실하게 서로서로를 돌보는 교제인지 살펴보아야 한다.54)

이러한 참된 교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 안에서 양육과 권징이 이루어기 위해 가르침과 권징과 통치(교회정치)가 필요한데,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과 성령을 통해 인도하시며 직접 통치하신다.55) 부처는 성도들이 죄에서 항구적으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항구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목회자를 두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실현하는 도구이다.56) 그리스도는 또한 목회자들을 통해 그의 목회 직무와 구원사역을 교회 안에서 이루어 가고, 사람들에게 천국 문들을 닫고 열기를 원하신다.(마16:19) 그런데 목회자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구원사역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시다.(마10:20)

이와 같이 교회 사역에서 능력과 활동은 목회자들에게 속하지 않고 그리스도인 주님께 속한다. 그렇지만 교회의 사역을 무시하는 것은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 사역을 자신이 직접 수행하시지만, 자신이 정하신 교회의 질서와 수단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이다.57) 부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직접 통치하시지만, 그가 세우신 사역자들의 질서와 은혜의 수단을 통해 수행하신다고 지적한다.


2) 목회직의 목적과 직분자들의 자질과 선출

목회사역은 선택된 아직 믿지 않는 자들을 주의 양무리 앞으로 인도하는 사역인 전도와 양무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죄로부터 용서받고, 선한 모든 것으로 인도되고, 격려받음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양육하는 것을 목적과 목표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전도와 양육이 목회직의 목적과 목표이다. 이러한 전도와 양육은 하나님의 전체 말씀을 선포함으로 이루어진다.58) 목회직에는 가르침, 권고(권면), 경고와 치리, 위로와 용서 같은 많은 것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고상한 평판, 경외감과 삶의 모범이 요구되고, 다양한 직분이 필요하다.

부처는 주님이 그의 교회 안에서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다양한 목회자들에 대해서 말하는데, 교회의 통상적인 목회자들은 목사들, 교사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목회자(집사)들이다. 그는 2중직을 말할 때도 있고, 3중직을 말할 때도 있고, 목사, 장로, 집사, 교사의 4중직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로들은 목회직의 전체를 수행한다. 장로들인 감독들은 흠이 없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장로들은 감독들, 즉 일반적인 감독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의 목자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질서에 따라 일반적 영혼 돌봄과 목회직은 모든 교회의 장로들에게 위임되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발견한다.59) 이것이 바로 제롬이 장로들과 감독들의 직분이 하나의 직분이고, 하나의 질서라고 올바르게 결정했던 이유이다.

부처는 5장에서 목회서신의 장로의 자격과 관련된 성경 구절들을 주석하면서 장로들의 자격에 필요한 자질들을 논의한다. 여기서 드러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좋은 평판을 받고, 거룩한 삶을 살면서 덕을 추구하는 자질, 하나님을 말씀을 잘 분별하여 가르치며 거짓을 반박할 능력과 고난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자질이 필요하다.

교회의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모든 거룩성과 치리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이 같은 능력들이나 덕들을 가장 먼저 소유하는 것이 성령의 뜻이다. 목회자들은 거룩성의 능력과 치리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둘째로 성령은 교회의 목회자들이 그들의 이웃들에게 선행의 모범이 될 수 있게 하는 능력과 덕들을 요구하신다. 셋째로 목회자들은 이 세상의 삶과 친근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그 선을 교훈하는 의지와 경향성과 일관성을 잃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령의 뜻은 그러한 실패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이 교회의 사역을 위해 선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60)

또한 이웃의 영적이고 육체적인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사람이 즐겁고 행복하도록 하기 위해 성령께서 요구하시는 능력들은 사람이 공정하고, 정의롭고, 거룩하고, 친절하고, 인내하고, 그리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치리 사역과 효과적이고 유익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양떼들을 목양하는 것과 관계된 모든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교회 목회자들에게 특별히 도움이 되는 능력들은 사악한 사람들에 대해 인내하고 친절하며, 신실하며, 가르침에 부지런하며, 그의 가정을 잘 돌보며, 매우 존경받으며, 초신자가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목회를 위한 영성과 신적 은사들의 능력에 큰 강조점을 두었다.61)

목회자의 자질은 주님과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러한 마음으로 양떼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양떼를 섬겨야 한다.(벧전5:1-2) 둘째는 물질문제에서 깨끗하여 청렴한 생활을 해야 하고 셋째로 고난을 각오해야 한다. 목회자는 사단의 시험과 박해를 각오해야 하고, 자신의 기르는 양들에 의한 배반과 배은망덕을 당할 수 있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62)

교회 목회자들의 올바른 선택과 임직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사항들은 1) 합당한 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2) 성령의 인도하심에 주의를 기울이며 관련자들을 잘 검증하고 3) 전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교회 규모가 클 경우에 선출 지도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고, 교회지도자들의 지도 감독이 있어야 하며, 회중 전체의 선거를 해야 한다. 4) 선택된 사람에 대한 임직식이 거행되는데, 그의 설교가 있고 안수 기도를 한 후 임직식을 한다.63)

부처는 교회의 성직자를 사역자(minister), 혹은 목회자(hirten)라고 불러서 로마가톨릭의 계급제를 부인하고 섬기는 사역자, 양떼를 돌보는 목회자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종교개혁의 직분 이해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그는 이와 함께 주님께서 교회를 통치하시는데 사역자들을 통해 하신다는 점에서 교회의 사역자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사역자들의 정체성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과 함께 장로들의 사역에서 치리라는 측면을 제시한 점이 주목되어야 하겠다. 그는 장로를 통해 치리를 하면서 교회의 성도들을 양육하며 올바른 성숙을 도모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츠빙글리와 구별되는 측면이 있다. 츠빙글리는 다스리는 주체들을 시의회에 두면서 목회자들이 협력하는 것으로 제도화하여, 치리에서 목회자들보다 시의회에 권한을 중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처는 치리에서 목회자들의 영적인 권면과 상담의 기능을 중시하여 목회자들과 장로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이해하였다. 그는 이러한 치리에서의 영적인 감화의 기능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영적인 감화를 통해 사람들의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는 교회의 직분으로 물질적으로 섬기는 집사의 직분을 수립하였다. 그는 교회가 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측면에서 교제하고 섬기는 곳이라고 이해하였는데, 바로 이러한 물질적인 섬김과 교제를 실현하기 위한 직분으로 집사직분을 세웠다. 이와 같이 부처에 이르러 교회의 직제의 다양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기서 말씀을 선포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함께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목회자의 중요성을 이해하였다. 그와 함께 부처에게서 중요한 점은 직분을 주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고, 성령이시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들에게 직분을 주셔서, 우리가 받은 직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며, 우리들에게는 그 직분을 감당하는데 필요한 은사를 제공하신다. 그러므로 부처의 직분론에는 그리스도가 그들을 통해 통치하신다는 기독론적인 측면과 함께, 성령께서 필요한 은사를 공급하시고 그들의 직분을 수행하게 하신다는 측면에서 성령론적인 측면도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직분에서 목사와 장로의 치리를 통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칭의 교리 안에서 통합하여 실천하고자 한 점도 주목되어야 한다.64)

그러므로 부처에서 목회자의 윤리는 자신의 직책을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그를 통하여 교회를 통치하신다는 것과 함께 그에 필요한 은사를 성령을 통해 공급받아 역사하므로 우리들은 늘 그리스도와 성령의 통치와 인도하심에 깨어 있어야 하겠고, 이러한 직분을 받아 성도들의 영혼의 돌봄을 실천해야 하는데, 그러한 영혼의 돌봄은 영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집사들을 통항 물질적인 돌봄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것이다.


4. 칼빈의 목회자윤리

칼빈은 인문주의자로서 종교개혁에 동조하여 『기독교강요』 초판을 저술했을 때부터 목사직에 대한 이해를 표명하였고, 그 이후에 스트라스부르에서 3년을 보내면서 마틴 부처의 영향을 받고 나서 1541년 교회법을 제정하여 장로교의 목회직에 대한 가장 원숙한 이해를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제네바에서 구체적으로 시행하였다.


1) 칼빈의 목사직에 대한 이해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판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서품성사와 재세례파의 직제에 대한 이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목사직에 대한 이해를 제시한다. 칼빈은 자신들만이 하나님께서 제비뽑아 선택한 성직자(클레로스)라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비판하고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로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벧전 5:3절을 근거로 신자들 모두가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클레로스)라고 주장하고 벧전 2:9절을 근거로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한다.65)

그리하여 그는 성직자들의 계급제도를 부정하고 사제, 장로, 그리고 감독을 모두 “교회의 사역자”라고 하여 동일하게 취급한다.66) 그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보내셨는데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역자들은 사도들과 동일한데, 차이점은 사도들은 어느 지역이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반면에 목사들은 개 교회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다는 것이다.67) 동시에 사도들과 동일하게 성례를 집행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성례를 집행하여 교회의 참다운 표지를 세워 참된 교회를 구현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목사들은 사도들의 계승자들이다.

칼빈은 프랑스에서 새롭게 주교직을 맡았던 친구에게 보낸 편지68)에서 주교가 바로 목사라고 말한다. 주께서 주교에게 가장 중요하게 목자의 역할을 맡기셨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자기의 양을 먹이라고 맡기실 때 “치다”라는 말로 표현한(요21:15) 바와 같이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양떼를 보호하며 돌아보아야 한다.

칼빈은 파수꾼이자 목자로 세워진 주교의 임무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오직 양떼를 충분한 목초로서 주의 깊게 돌보며, 양떼를 위해 제거해야할 모든 불의와 함정에 대해 염려하며 부름과 인도함으로써 항상 양떼가 따를 길을 보여주는 목자만이 칭찬받는 것이다.”69) 그러므로 주교의 세 가지 임무는 말씀 선포, 이단으로부터 신도들의 보호, 그리고 삶의 모범을 통한 지도이다.

칼빈을 비롯한 제네바 목사들은 1537년 1월에 제네바 의회에 제출한 「제네바 교회 예배와 조직법」에서 성직자와 관련하여 성례를 자주 시행하자는 것이고, 교회를 온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치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70) 그러므로 이러한 두 가지 문서를 중심으로 목사의 목회활동의 핵심을 세 가지로 추출해 볼 수 있겠다. 첫째는 목사의 말씀 사역이다. 칼빈은 제네바 2차 사역 때부터는 츠빙글리와 같이 연속적인 성경읽기(lectio continua)를 실시하여 성경말씀을 지속적으로 전파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사역자들의 음성을 통해 말씀이 전파되기를 원하신다.”71)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설교를 해야 한다.72) 둘째로 칼빈은 교회의 이단들을 비판하여 몰아내는 것을 목자의 중요한 사명으로 보고 있다.73) 셋째로 목자와 성도들의 경건한 삶의 추구이다. 목자들은 경건한 삶의 모범을 통해 성도들의 생활을 인도해야 하고, 교회는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위한 권징 문제를 올바르게 수행해야 한다. 칼빈은 1537년에 삶의 권징 문제에서 장로의 직분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을 감독하기 위해 선출된 사람이 목사에게 보고하여 목사가 그를 훈계하도록 하였다.


2) 목회자들의 모범적인 삶 - 목사회의 조직과 활동

칼빈의 제안으로 제정된 1541년의 교회법(Ecclesiastical Ordinance)은 목사를 비롯한 4중직과 함께 목사회 조직과 목사들이 범해서는 안 되는 죄의 목록들이 제정되어 있다.

(1) 제일 먼저 목자의 직무가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성경에서 선견자, 장로, 말씀의 종(ministres)으로 불리는 목사의 직무는 공적 장소에서 그리고 개인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교훈하며 책망하는 것이다. 목사는 또한 성례를 집례하며, 장로들과 더불어 사랑으로 경고하는 치리의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74) 여기서 칼빈은 목회자의 직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권면하고, 교훈하며 책망하는 것이다. 둘째로 목사는 성례를 집례한다.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은 목회자 혼자서 수행하는 기능이다. 셋째로 목사는 장로와 함께 권징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목사 시험(고시)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로 목사후보생이 성경에 대한 훌륭하고 건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둘째로 교화를 위하여 회중에게 이것을 설명하는 적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목사시험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그가 목사가 되는데 필요한 성경에 대한 훌륭하고 건전한 지식과 함께 그것을 강해할 능력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가 훌륭하고 건전한 지식을 가지는 것과 관련하여 두 가지 절차를 더 거쳤다. 하나는 교회에 의해 승인된 가르침(신조나 신앙고백)을 수용하여 지지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고, 그가 훌륭한 교사인지 여부를 개별적인 질문을 통하여 확인할 뿐만 아니라 그는 사적으로 우리 주님의 교훈을 제시해야만 한다. 목사후보생이 자신이 믿고 있는 교리 내용을 제시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행동에서 결격사유가 없는지 까지를 확인하였다.75)

목사 고시 후에 청빙절차는 목사회가 먼저 후보생을 선택하여, 시의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은 후에 회중들에게 설교를 하여 받아들여지면, 청빙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청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중들의 투표를 통한 수용이었다. 목사 임직과 관련해서 중세의 모든 미신적인 의식을 제거하고, 두 가지 절차만을 진행하였다. 하나는 먼저 한 목사가 그가 지명된 직위에 대하여 설명을 한 후에, 성령께서 그에게 필요한 은사와 은혜들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으로 마쳤다.

이 교회법에는 목사들에게 용납되지 않는 죄들이 명시되어 있다. 목사에게 용납되지 않는 범죄는 이단, (특히 종파의) 분립, 기독교 질서에의 반항, 공개적이고 처벌받을 만한 신성모독, 성직매매와 뇌물로 인한 타락, 다른 사람의 직위를 뺏으려는 모의, 적법한 허락과 진실한 소명이 없이 자신의 교회를 떠나는 것, 배반, 간음, 위증, 절도, 술취함, 법에 의한 처벌받을 만한 폭행, 고리대금업, 법으로 금지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임, 춤추는 것과 그와 비슷한 무절제함, 시민들 사이에서 악명을 낳는 위법행위, 교회로부터 분리되게 만드는 위법 행위, 힐책받는다면 용인되는 행위, 논란을 낳는 말씀을 대하는 이상한 방법, 헛된 질문을 찾아내는 호기심, 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행동방식이나 교리를 제기하는 것, 특별히 성경을 읽는 것처럼 공부하는 것에 태만한 것, 아첨에 관련된 행동을 꾸짖는 것에 태만한 것,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태만한 것, (저속한) 익살, 사기, 명예훼손, 경솔함, 흉계 꾸미기, 탐욕과 인색함, 무절제한 분노, (공공장소에서의) 싸움과 말다툼, 의복이나 행동 그 외에서 목회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방종이다.76) 칼빈은 이러한 범죄들이 제네바 목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여 교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삶의 실천에서도 모범이 되도록 하고자 하여 구체적인 범죄 목록들을 열거한 것으로 보인다.

(2) 목사회의 조직과 운영

칼빈은 성도들의 삶을 개혁하여 경건한 삶을 살게 하고자 노력하였는데, 그러한 목적을 성취하는데 목회자들의 모범적인 생활이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541년 귀환한 후에 제네바와 주변 시골지역 목사들의 모임인 목사회를 조직하여 목사들이 교리적인 측면과 함께 경건한 생활의 본을 보이도록 유도하고자 하였다.77) 제네바의 모든 목사들로 구성된 목사회는 위에서 설명한 바의 절차를 따라 새로운 목사를 선출하였다.

제네바 목사회는 목사들이 선출된 이후에도 그들의 의무를 잘 이행하는지를 감독하기 위하여 두 가지 제도를 마련하였다. 첫째는 목사들은 계속해서 교리의 순결과 일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주 지정된 날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도록 하였다. 이 모임에는 합당한 이유가 없이 참석하지 않으면 경고를 받았다.78) 이러한 성경 공부 모임은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었는데, 한 목사가 성경을 한 단락 주해하면 참석한 목사들이 듣고 토의를 벌였다. 이 성경공부 모임을 집회(congregation)라고 불렀다.79)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목사들 사이에 교리의 일치를 유지하여 이단 시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교회법에 목사들 사이의 교리에서의 오류문제를 처리하는 자세한 규정을 제정하였다. 둘째로 목사들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스캔들을 제거하고자, 목사들의 교정의 형식을 제정하였다. “이것은 목사들이 존경을 받고 목사들의 불명예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모욕당하고 비난받지 않는 수단이 될 것이다.”80) 칼빈은 목사들 사이에 상호간의 비판과 견제를 통해 경건한 생활을 하도록 3개월마다 목사들의 모임(the venerable company)을 가져 그들의 삶을 교정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오늘날의 시찰회의 기원이다. 칼빈은 이와 같이 목사들의 선출과정뿐만 아니라 목회 생활에서 교리와 삶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는 보장할 제도들을 만들어 목사들이 성도들의 모범이 되도록 이끌어 나갔다.

목사회는 목사후보생을 심사하고,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목사들의 생활을 감독하는 것이었다. 제네바 목사회의록은 권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데, 권징은 윤리와 연관되어 있다. 권징은 목사회 내부에서는 목사의 선발과 면직, 추천서 발행과 추천 거부 등으로 나타나고, 외부적으로는 출교와 수찬정지로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타락한 목회자들의 윤리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단계를 거쳤다. 첫째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관을 바로 잡고자 하였다. 성직자들의 계서제와 성례를 바탕으로 하나의 제도화된 로마가톨릭교회관을 비판하면서 성도들의 교제로서의 교회관과 성도들의 영적인 연합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관을 정립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에서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의 신분적인 차별을 무너뜨리고 모든 신자들이 동일한 제사장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이해의 토대 위에 교회직제를 마련하였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지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의 직분이었다.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는 근본적으로 양들을 그의 꼴로 먹이는 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목자 직분에 대한 이해에서 생겨났다. 참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 자신의 양떼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목자직분으로서의 목사직이 가장 중요한 직분으로 이해되었다. 그 이후에 츠빙글리에서부터 부처, 칼빈에 이르는 동안에 성도들의 삶을 거룩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목사와 함께 장로의 직분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고, 부처에 이르러 물질로 섬기는 집사직분을 주장하였으며, 칼빈에 이르러 장로교회의 4중직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를 성경에 기초하여 정립하고자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윤리적인 문제들을 성경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성경적인 직분들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들을 통하여 교회의 구조를 민주화시켰다. 교회 구조의 민주화는 중세의 계급적인 구조를 무너뜨리고 신분적인 동등성을 확보하면서 평신도들의 교회 행정에의 참여를 말한다. 이러한 평신도들의 교회 행정에의 참여는 부처에게서부터 시도되어 칼빈에게서 결실을 맺었다.

목회자들의 목회자 사명을 철저하게 교육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 루터의 비텐베르크 대학교육과정의 개혁, 츠빙글리의 예언회, 부처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설립, 칼빈의 목사회의 성경연구와 제네바 아카데미 설립으로 이어진다. 목사들은 개교회를 돌보면서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의 사명,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학자적인 사명,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치는 교육자의 사명, 성도들의 영혼을 잘 돌보는 상담자로서의 역할,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는 심방자로서의 역할, 성도들의 삶을 바로잡는 치리자의 역할 등을 수행하도록 하였다. 부처와 칼빈은 이러한 것들을 목회적 돌봄이라고 하였다.81)

종교개혁자들의 이러한 목회적인 돌봄은 치리(Discipline)의 시행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 Discipline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츠빙글리의 경우에 이것은 시의회가 목회자들과 함께 시행하는 치리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젤(Basel)의 종교개혁자인 외콜람파디우스에서부터 국가가 중심이 된 치리에서 벗어나 영적인 훈련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Discipline은 국가관리의 행정적인 처벌보다는 성도들의 올바른 영적 성숙을 돕는 훈련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영적인 성숙을 위한 discipline은 다양한 과정을 통하여 실천되었다. 특히 칼빈의 경우에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장로회(consistoire)에서 discipline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훈련 과정에는 교회에서 성도들이 올바르게 교육받는 것을 감독하는 기능과 함께, 성도들의 거룩한 삶을 살도록 상담하고 교육하고 권징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것이 스코틀랜드에 가서 제일치리서(First Book of Discipline)가 되었는데, 이것은 기독교신앙을 바탕으로 스코틀랜드를 총체적으로 개혁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회와 학교를 마을마다 세워 올바른 신앙을 가진 건전한 국민들을 양육하려는 것이었다.


IV.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윤리 갱신을 위한 제언

위의 논의들을 바탕으로 오늘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윤리 갱신을 위한 몇 가지 시론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종교개혁 신학의 구현을 위한 신학교육의 갱신

종교개혁 시기에 신학교육의 갱신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하고 나아가 도시의 사회를 개혁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종교개혁 신학을 구현하는 신학교육의 갱신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종교개혁기의 신학교육의 갱신은 중세에서 근세로의 이행기에서 일어난 사회적인 변화를 반영하려는 패러다임의 변화였다.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목회 윤리는 기존의 교회의 권위를 옹호하는 변증논리가 아니라 기존 교회의 부정과 부패를 드러내는 비판논리였다. 봉건제도의 붕괴, 근대 도시의 출현, 교황의 권위 타락, 교회의 도덕적 타락 등 중세교회의 대내외적 상황에서 면죄부 판매를 통한 중세교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종교개혁의 저항의 시작이었다. 이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은 사회비판에 앞서 교회비판을 주도하였고, 이러한 교회비판이 당시 사회에서 커다란 공감대를 얻으면서 개혁활동은 점차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러한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주장들이 당시 사회의 공론장에서 공감을 얻으며 확산되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인쇄술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쳐나간 것도 중요한 한 가지 이유이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그들의 신학적 주장의 공적 설득력 때문이었다.82) 그보다 더욱 중요했던 것은 로마교황청이 성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한 재정확보를 목적으로 “공익의 탈을 쓰고 사익을 챙기던” 로마가톨릭교회를 목숨을 걸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공공의 입장을 대변했기 때문이었다. 루터의 신학의 입장은 성서의 권위에 의거해 교회를 위해 공공의 입장에서 교회를 비판했으며, 그 결과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신학 패러다임을 낳음으로써 그 공적 정당성과 신뢰를 회복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신학교육도 한국교회의 갱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함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신학 교육개혁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2. 목회자 윤리 확립을 위한 신학교육의 갱신

종교개혁자들은 당시에 타락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한 교회상과 지배하는 목회자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종교개혁을 진행하였다. 그러한 종교개혁의 진행은 새로운 목회자상을 구축하여 올바른 목회윤리를 형성하려는 작업이었다. 그러한 목회윤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로마가톨릭교회 목회자들의 부패한 윤리상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성경적인 대안을 찾아서 교육기관의 설립을 통하여 구현하는 것과 함께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개혁자들은 지배하는 목회자상을 비판하고 만인제사장직을 주장하였으며, 목회자들은 행정관리나 미사집전자나 고해성사 담당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라고 보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목회자교육에 집중하였다. 이들은 목회자들의 모범적인 삶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칼빈은 이 문제를 제도화하고자 시찰회를 조직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성도들의 삶의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여 치리제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목회자들의 윤리를 개혁하는 데는 그 윤리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확실한 신학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그것을 교육해 나가야 하겠다. 지금까지 군림하던 사제들이 지위에서 만인제사직의 확립을 통해 말씀 선포를 통해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서의 성직자의 개념을 정립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권위화를 극복하고 평신도들의 만인사제직을 구현하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3. 교권화된 교회정치 구조의 개혁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부패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은 근본적으로 부패와 타락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저항정신의 표출이었다. 그러한 저항정신은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표어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구르는 돌은 이끼가 끼지 않지만, 멈춰 서 있는 돌은 이끼가 낀다.

그러한 면에서 한국교회 내부에서의 자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한국교회 밖에서의 공격을 통해 한국교회의 자정을 촉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한국내부 안에서 일상화된 교권다툼과 법적 분쟁, 신학교들마다의 내부적인 싸움, 이러한 교권화된 한국교회의 문제 속에서 한국교회 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한 면에서 하나님의 교회나 신천지같은 여러 이단들이 발흥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의 부패를 고발하는 여러 반기독교적인 성격을 가진 언론들이 등장하고 있다. 기독교 이단들의 기독교에 대한 공격들이 빈번하고 일어나고 있다. 진보세력이란 무신론 단체들은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를 공격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공격들은 한국교회의 자정능력 상실에 대한 외부의 공격일 수도 있고, 교회의 세력화로 인한 사회의 경계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총회나 노회가 교권에 의해 장악되어 관련당사자들의 이해관계의 다툼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그 기구가 생겨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방안이 마련되어 제 기능을 발휘할 때, 목회자들의 윤리가 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부패상에서 일어나던 것들이 한국개신교 안에서 더 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자조석인 이야기들은 그러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목회자들이 윤리적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교회의 공조직이 건전한 모습으로 정화되고 갱신될 때 한국교회의 건강한 회복의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4. 교회의 목사직 세습의 근절과 목회자들의 은퇴제도 마련

중세 말에 이르러 교회부패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성직자들의 성직의 세습이었다.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성직 독신제가 시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직세습이 교회타락의 주범이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도 목사직의 세습이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 안에서 목사직의 세습을 근절하는 법안들이 여러 교단들에서 제정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그렇지만 특히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온갖 탈법과 편법을 통한 계승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속에서 한국교회는 신뢰를 상실하고 목회자 윤리는 타락되어 가고 있다. 교회에서도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실이다.

이와 함께 안타까운 것은 많은 교회들에서 목회자들의 은퇴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과거보다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은퇴이후의 생활문제와 관련하여 교회들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공적 연금인 국민연금을 통한 해결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5. 교회의 공적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이해

오늘날 신학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논의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다. 신학의 공공성은 기독교신앙이 개인의 구원과 심령의 평안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회의 공적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가 세상권력을 장악하여 타락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교회와 국가의 영역을 구분하면서 동시에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사회의 건전한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였다. 그렇지만 신학적인 공공성이 목회자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로 이해되는 것은 깊이 경계해야 할 것이고, 오히려 성경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평신도들의 건전한 교육과 함께 NGO단체를 비롯한 건전한 시민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가치관의 공공성의 실현해 나가야 할 것이다.


6. 치리제도를 교회 양육을 통한 성도의 성숙과 목회상담의 활성화 방안 마련

종교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이 성도들의 생활과 관련된 치리의 문제였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치리가 실종되었다는 언급이 자주 거론된다. 그렇지만 그것을 해결할 방안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의 Discipline은 단순하게 잘못된 행위에 대한 권징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건전한 영적 성숙을 도모하는 양육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츠빙글리, 부처, 칼빈으로 이어지는 치리에 대한 강조는 그들의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의 건전한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려는 설교와 교리교육 등을 통한 교육목회, 제자훈련 등을 필요한 인격적인 성숙, 그리고 성도들의 삶의 문제를 상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목회상담제도의 심화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늘날같이 다원화되고, 여러 교회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와 국가가 협력하여 권징을 시행하던 시대의 방법의 단순한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인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성도들의 적극적인 성숙을 도모하기 위한 목회자들의 건전한 윤리의식의 형성이 필요하다.


[주]
1) 존 딜렌버거 편집, 『루터 자작선』, 이형기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581.
2) 딜렌버거 편집, 『루터 자작선』, 501.
3) 딜렌버거 편집, 『루터 자작선』, 503.
4) 루이스 W. 스피츠, 『종교개혁사』, 서영일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3), 30.
5) 선한용, “성직매매에 대하여,” 「신학과 세계」32 (1996), 71.
6) Martin Luther, Luther Works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Company, 2006), V. 4, 199-200.
7) 선한용, “성직매매에 대하여,” 74.
8) 스피츠, 『종교개혁사』, 33.
9) 스피츠, 『종교개혁사』, 31.
10) 박준철, “중세 말 독일의 반성직주의와 대학교육,” 「역사학보」 149 (1996), 139-167.
11) 에스텝은 enchiridion이란 말이 편람이라는 말보다는 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윌리엄 R. 에스텝,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라은성역 (서울: 그리심, 2002), 182.
12) Erasmus, Enchiridion militis Christianae (London: Mettuen & Co, 1905), 56.
13) Erasmus, Enchiridion militis Christianae, 59.
14) Alister E. McGrath, Intellectual Origins of European Reformation (Oxford: Blackwell Publishing, 1998, second edition), 40-41.
15) 김평중, “교회개혁자로서 에라스무스,” 「역사학연구」20 (2002), 110.
16) 김평중, “교회개혁자로서 에라스무스,” 112.
17) Erasmus, Praise of Folly (Grand Rapids: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1958), 42.
18) Erasmus, Praise of Folly, 41.
19) 딜렌버거 편집, 『루터저작선』, 580.
20) 딜렌버거 편집, 『루터저작선』, 484.
21) 딜렌버거 편집, 『루터저작선』, 486.
22) 이승갑, “Anticlericalism as a Context for Renewal of Worship in the Early 16th Century German Reformation,” 「한국기독교신학논총」84/1 (2012), 108.
23) 딜렌버거 편집, 『루터저작선』, 499.
24) 우병훈, “루터의 만인 제사장직 교리의 의미와 현대적 의의,” 「신학논단」87 (2017), 227.
25) 홍지훈, “목회적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신학사상」 (2017), 158.
26) 홍지훈, “목회적 관점에서 본 마틴 루터의 신학,” 170.
27) 이양호, “종교개혁과 목회자상,” 『연세대학교 연신원 목회자 하기 신학세미나 강의집』16 (1996), 91.
28) 박준철, “중세 말 독일의 반성직주의와 대학교육,” 166.
29) 김선영, “루터의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육개혁과 16세기 독일 프로테스탄트 개혁,”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02 (2016), 68.
30) 루터, “목회에 관하여,” 『루터선집 8』, 지원용 감수·편집 (서울: 컨콜디아사, 1985), 116.
31) 루터, “목회에 관하여,” 118.
32) 루터, “목회에 관하여,” 143.
33) 훌트라이트 츠빙글리, “하나님의 정의와 사람의 정의,” 『츠빙글리 저작 전집 I』(서울: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4), 234.
34)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295.
35)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03.
36)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05.
37)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07.
38)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10, 311, 312.
39)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17.
40)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20.
41)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35.
42)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37.
43)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50.
44)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40.
45)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44.
46)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48.
47)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52.
48)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53-54.
49) 쯔빙글리, 『츠빙글리 저작선집 I』, 356, 358.
50) 임희국, “츠빙글리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평양) ‘장로회 신학교’의 신학교육,” 『장신논단』 45/1 2013), 99.
51) 최준혁, “마르틴 부쳐의 목회관과 목회사역에 대한 연구,” (석사학위논문, 안양대학교, 2015), 30.
52) 마틴 부처, 『참된 목회학』, 최윤배역 (서울: 킹덤북스, 2014), 18.
53) 부처, 『참된 목회학』, 36.
54) 부처, 『참된 목회학』, 41-42.
55) 부처, 『참된 목회학』, 46.
56) 최준혁, “마르틴 부쳐의 목회관과 목회사역에 대한 연구,” 38.
57) 부처, 『참된 목회학』, 66.
58) 부처, 『참된 목회학』, 80.
59) 부처, 『참된 목회학』, 83.
60) 부처, 『참된 목회학』, 96.
61) 부처, 『참된 목회학』, 104.
62) 최준혁, “마르틴 부쳐의 목회관과 목회사역에 대한 연구,” 39.
63) 부처, 『참된 목회학』, 112-113.
64) Brian Lugioyo, Martin Bucer’s Justific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77. 부처가 구원의 서정에서 선택-부르심-칭의-영화의 순서를 말하는데, 칭의 속에는 칭의와 성화의 개념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65) John Calvin, 『기독교강요: 1536년 초판』, 양낙흥역(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2), 303-4.
66) Calvin, 『기독교강요: 1536년 초판』, 311.
67) Calvin, 『기독교강요: 1536년 초판』, 310.
68) 황정욱 교수는 이 편지의 저술시기와 장소에 대하여 칼빈과 동시대 목사인 갈라르가 훼라라에서 칼빈이 1536년 봄에 저술했다는 기존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에 1536년 봄이 아니라 여름 이후에 제네바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 서신은 1537년에 출판되었다. 황정욱, 『칼빈의 초기 사상 이해』(서울: 선학사, 1998), 135.
69) 황정욱, 『칼빈의 초기 사상 이해』, 335.
70) John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ed and trans J. K. S. Reid (London: SCM Press, 1954), 48.
71) Comm on Isa 50:10.
72) 안은찬, 『칼뱅의 목회신학』(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178.
73) 안은찬, 『칼뱅의 목회신학』, 175.
74) Philip E. Hughes, The Register of the Company of Pastors of Geneva in The Time of Calvin (Eugene: Wipf & Stock Pub, 2004), 36.
75)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59.
76) Hughes, The Register of the Company of Pastors of Geneva in The Time of Calvin, 38-39.
77) 이정숙, “목사는 누구인가? - 칼빈의 목사직 이해와 실천,” 『한국교회사학회지』23집(2008), 223. 목사회는 1541년에 조직되어 활동을 했으나, 그 활동 기록인 The Register of the Company of Pastors를 1546년부터 불완전하게 남아 있다. 그 기록 내용이 영어로 번역된 것이 The Register of the Company of Pastors of Geneva in The Time of Calvin이다.
78)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60.
79) T. H. L. Parker, 『존 칼빈의 생애와 업적』(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6), 183.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은 츠빙글리가 취리히에서 1525년 7월에 시작하였던 예언 모임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성경공부 모임은 청교도들에게도 예언이란 이름으로 지속되었다. (Timothy George, 『개혁자들의 신학』, 이은선 역 (서울: 요단출판사, 1994), 153.)
80)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60.
81) 권명수, “칼빈의 목회훈련 연구 : 칼빈의 제네바 초기 교회법에 나타난 목회적 돌봄을 중심으로,” 「신학과 실천」 22 (2010), 47.
82) 문영빈, “비판적 공공관계신학-기독교의 공적 신뢰도 제고를 통한 공공신학의 새지평,” 「신학과 선교」 46 (2015), 147.

이은선 교수  안양대학교 기독교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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