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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2017/06/20) 한목협 제19회 전국수련회 파송예배

누가복음 3:7-14


세례요한의 메시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이 역사에 등장하기 전 미리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세례요한이 6개월 먼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살펴보니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불리던 세례요한은 그야말로 화끈하게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으려 몰려왔습니다. 무슨 권위로 세례요한은 세례를 베풀며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왔는지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설명이 없으니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짐작해 보는 것은 세례요한의 선포가 너무나 강력했고 그 시대에 맞서는 그의 사역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그의 당당한 메시지, 메시아를 맞으려면 세례를 받고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분명한 명령형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먹혀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음이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고 있었으니, 영적으로 간절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았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한 사람 두 사람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서 그에게 세례를 받아야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놀랍게도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이 하는 말을 들어주고 찾아주면 인기가 올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흥분하고, 그래서 더욱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말을 하기가 쉬운 법입니다. 축복을 받을지어다! 성령을 받으라! 신천신지를 얻게 될 것이다! 부자가 될 지어다! 그렇게 말하기 쉬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달랐습니다.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하여 분노를 발하며 큰 소리로 외칩니다. 매우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습니다. 세례 받겠다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사람들을 향하여 너무나 섬찟한 언어를 동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더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고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독사의 새끼들아!! 비겁하게 숨어 피하지 말라! 돌도 아브라함의 자손 될 수 있다! 좋은 열매를 맺어라! 가슴을 할키는 선포를 합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세례를 받으러 온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경건한 모습만 갖춘다고 교회가 되고 신자가 되고,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없으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좋은 열매 없으면 언제라도 찍혀 불에 던져질 수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 원리입니다. 그게 복음의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충격적인 선포, 발가벗긴 느낌을 받게 하는 설교를 듣게 되자 세례 받으려 온 사람들이 요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무리들이 질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보통의 사람들, 일반 대중들이 놀라서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의 대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러나 꿈을 꾸라, 그림을 그려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 믿기만 하라! 나아가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믿으라!가 아닙니다. 천국 소망을 품고 살아라도 아닙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려라도 아닙니다.

회개의 진정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갈아입을 속옷 두벌 갖고 있으면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살아라! 혼자만 생각하고 살지 말고 반드시 이웃과 더불어 나누며 살아라. 두 벌 옷도 많다! 엄청난 심판의 메시지를 던진 후에 주시는 대답치고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있는 것 나누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2. 세리가 질문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당시 가장 사람들에게 미움을 많이 받은 것으로 말해지는 세리가 묻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공정하게 정직하게 정당하게 세금을 거두어라. 사람들을 학대하고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 로마정부 비위맞추고, 네 자리 유지하고, 네 금고 채우기 위하여 남을 억울하게 만들지 말라! 남의 재산 탐내지 말라! 제발 남의 몫을 빼앗으려 하지 말라! 세리의 직분으로 남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라! 알고 보면 너무나 간단한 내용의 대답입니다. 그냥 세상에서 원칙대로 살아라! 그 말입니다.


3. 군인들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번에는 당시 법테두리 안에서 제일 힘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인 군인까지 나서서 세례를 받으러 하였고, 그들도 놀라서 질문을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리이까?” 그 군인이 로마군인이냐 유대군인이냐는 관심이 대상이 아닙니다.

군인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강제로 빼앗는 짓을 하지 말라.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사람을 고발하는 무고행위를 하지 말고, 주어지는 월급, 정한 월급, 받는 월급을 족한 줄로 알라. 공연히 남의 떡을 크게 보고 남의 것 빼앗으려 들지 말라. 힘을 이용하여 남에게 강압적인 행동을 하지 말라.

여러분, 세례를 베풀면서 요한은 세례를 받으려하면 성경을 전부 읽으라, 십계명을 외워라, 교리를 익혀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변화, 영적인 개혁, 영적인 충만함을 경험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문답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냥 단순합니다. 삶으로 자신의 됨됨이를 드러내라고 합니다. 가진 것으로 남을 생각하고 남과 나누라, 정직하고 정당하게 일하라, 직위를 악용하지 말라. 강탈하지 말라, 거짓으로 행동하지 말라, 욕심을 버려라, 자족하라....

결국 세례라는 영적인 은혜의 자리에 서려면 고고한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거칠거칠한 삶의 현장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였지만 철저하게 삶과 연결시켰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례였지만 내면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한 삶의 증거를 내 놓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이것은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우리가 안수를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께 물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일하고 싶습니까?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가만히 생각하니 지난 20년간 우리 한목협은, 한목협에 속한 목회자들은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이 질문을 주님께 아뢰며, 나름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려주신 대답을 찾아 그대로 살아보려고 조금이라도 애를 쓰며 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한목협은 목사들의 모임입니다. 한목협이 시작할 때부터 동참한 저는 한목협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평범하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목사들의 모임” 이정도로 말입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옥한흠 목사님이 계셔서 가능했습니다. 물론 그는 평범한 목사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신뢰받는 지도자였으므로, 그가 꿈꾸는 것이 모두에게 통하였으므로 우리는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한목협의 탄생과 존재는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습니다.

역대 총무를 지내신 김원배 박사님이 늘 말씀하시던 대로 한목협은 ‘열린 보수성향의 목회자와 열린 진보 성향의 목회자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입니다. 이 용어는 이만열교수께서 기장의 어느 모임에서 사용하신 용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시작부터 함께 한 15개교단은 진보 중도 보수 모든 교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지난 19년간 너무 잘 지내왔습니다. 1998년 12월 사랑의 교회에서 모인 창립 모임 시에 옥목사님께서 설교를 통하여 제시하셨던 URD - unity renewal diakonia - 연합과 일치, 갱신, 온전한 섬김을 위하여 그동안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함께 경주해 왔습니다. 특히 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2001년도부터 ’교단장 협의회‘ 구성과 활동을 위하여 인력 재정 시간을 엄청나게 투입하며 온 힘을 다 기울였습니다.

제자훈련에 모든 삶을 투자하시던 옥한흠 목사님이 이끄시는 제자 훈련에 저는 직접 동참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만약 참석하였더라면 저의 삶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삶의 방법은 달랐지만 성향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옥목사님이 행한 제자 훈련을 초기에 받았던 분들은 옥목사님이 노회도 참석하지 말라고 했다는 증언을 합니다. 노회라는 것이 무슨 생산성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던 분이 90년 대 말, 한국교회의 교단장 선거가 금권선거로 바뀌고 과열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달라지셨습니다. 내 한 교회 아무리 열심히 섬겨도 그것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교파나 교단과 상관없이 한 교회의 잘못은 곧 내 교회의 잘못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깨달으시자 옥목사님은 교회갱신과 연합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개 교회, 교단들이 새로워지고 연합해야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교갱협과 한목협이 그래서 생겨났습니다. 옥목사님은 은퇴하시면서 두 가지를 후임자에게 부탁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제자훈련이고 하나는 한목협을 계속 잘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마음이 지금까지 한목협을 계속이어 오게 한 것 같습니다. 특히 손인웅 목사님과 전병금 목사님이 한기총과 NCC에 중요한 역할을 맡으셨고 특히 두 분이 각각 두 단체의 교회일치위원장을 맡으신 관계로 교단장 협의회을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일을 우리 한목협이 잘 수종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교회의 흐름을 살펴보면 시작부터 교회가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장로교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 선교사의 파송으로부터 본격화 된 한국교회 선교 현장에서는 장감이 연합하여 일하려던 증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감연합회가 함께 한국교회의 방향을 논의하며 협력하여 일하기를 원했습니다. 심지어 하나의 공의회를 세울 계획도 세웠습니다. 그러나 본국교단의 반대로 무산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21세기를 앞두고 한국교회는 하나됨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습니다. 교회안에 부작용이 많아지면서 더욱 다급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았습니다. 남북의 대화가 일어나면서 조급해지기도 하였습니다. 나라는 통일을 향해 가는데 한국교회는 분열을 계속하는 것은 너무나 한심한 일이었고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실을 모두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동은 너무 느렸습니다. 사실 연합이전에, 교회가 교회답게 새로워지는 것이 더욱 절실했습니다. 선교 100년을 겨우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늙어가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온갖 질병이 찾아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로교 통합교단은 다른 교단보다 일찍 새로운 목회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한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른목회를 지향하는 목회자들이 ‘바목협’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갖고 있을 때 다른 교단의 의식 있는 목회자들은 교단 내에 어려움이 있을 때 간헐적으로 이의를 제기해 보거나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일시적인 항의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997년 2월 고신교단은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일이 발생하는 것을 더 이상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40-50대 초반의 젊은 목회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변화하는 세계와 교회 속에서 고신의 정신을 이어가기 원하는 목회자들의 협의회’라는 긴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고목협’. 그런데 합동측에서 비슷한 모임이 그 해 3월에 결성되었습니다. ‘교회갱신협의회’ - 교갱협. 그러니까 이미 존재하던 바목협, 비슷한 시기에 결성된 기장의 ‘21세기 목회협의회’, 고목협, 그리고 교갱협이 만들어짐으로 장로교 4개 교단 전체에서 교회의 개혁과 갱신에 대한 열망이 표출된 것입니다. 결국 4개 단체가 1997년 10월 장목협이란 이름으로 모였다가 한 해를 지나면서 11개의 교단이 차례로 함께 하게 되어 한목협이 창설되었습니다.

당시 시대적 과제는 개혁이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금권선거로 타락한 모습을 보이면서 개혁이 절실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그와 함께 늘 숙제처럼 이야기되는 교회연합과 일치, 그리고 한국교회가 부자가 되어 자기만 즐긴다는 비난을 받는 터라 디아코니아 섬김 등 세 가지 주제를 옥한흠 목사님은 창립대회에서 한목협의 과제, 한국교회의 과제로 제시하였고 우리는 그 이후 이 주제를 끈질기게 다루어 왔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자주 이 문제를 들추었습니다.

일치와 갱신과 섬김... 이 세 주제, 이 세 가지 한국교회의 숙제는 지난 19년간 우리를 결속시키고 흥분시켜왔습니다. 저는 고신목사입니다. 저는 신학교 시절 ecumenics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신학공부를 마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대로 사는 것을 배운 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교회가 하나여야 한다는 성경적 원리를 실천하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그 주제는 제게 한없는 마음의 자유를 주었습니다.

고려파 학생운동인 ‘학생신앙운동 SFC’ 대표간사를 하던 80년대 초반, 대학생들이 전국 대회로 모인 자리에서 ‘신학과 신앙을 같이 하는 교회들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후에 소환을 받았습니다. 33살 젊은 목사에게 총회 지도위원들은 ’SFC를 끌고 다른 교단으로 가려하는 것 아니냐?”는 너무나 엉뚱한 소리로 나를 겁박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랫동안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는 늘 위험한 인물로 소문이 났습니다. 신학대학원 교수시절에도 교회연합운동을 말한다고 동료교수로부터 총회에 고발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뉴스엔조이 기자가 어느 날 제게 물었습니다. “교회연합의 조건이 무엇입니까?” 그와 같은 조건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저는 갑작스런 질문에 그냥 별 주저함 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면 연합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 기자는 그 말을 뉴스앤조이에 올렸고 그 후로 저는 사도신경을 사용하는 로마천주교회와도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으로 매도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그런 종류의 자유주의자인 줄로 알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1977년 9월에 열린 고신교단 27회 총회에서 이미 오래전에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단과 연합집회를 가지도록 결정해 놓았더랬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논란을 심하게 벌였습니다. 지난 번 WCC 총회가 부산에 열렸을 때는 ‘이단 신천지가 집회한다고 그 앞에서 반대하는 것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왜 그 집회를 반대하고 방해하려 하는가? 찬성않으면 가만히 있으면 될 것 아닌가?“고 말했다가 노회로부터 처음에는 5년간 노회원 정직을 당했다가 항소하여 1년으로 낮춰졌습니다. 그것도 알고 보니 본래 1년밖에 정직을 못시키는 데 법대로 고치는 데 소송비용 백만원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들으면 놀랄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런 경험이 평생 나를 교회연합운동으로 끌고 갔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월 지나면서 느끼게 된다는 것은 “에큐메니칼”을 입에 달고 산 분들이 오히려 진정한 연합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19차 수련회를 갖는 중에 총회를 열었고 부산에 사는 나를 대표회장으로 섬기라고 모든 사람들이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부족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여 이 자리를 맡았습니다. 제가 회장을 하는 동안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고 교회가 획기적으로 새로워지고 예수님을 따라 온전한 섬김의 길로 들어설 수 있어서 한목협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기를 기도합니다.

그런 시간이 올 때까지 당분간 우리는 앞장서서 한국교회가 통일을 맞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교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들의 모임입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세 가지 목표는 전적으로 우리 목회자들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우리 목회자들이 이루어 내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목회자들이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목회자인 우리가 연합하고 일치하여야 하고, 목회자인 우리가 갱신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인 우리가 먼저 섬김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 통일도 앞당겨질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이런 모습을 아직 우리가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섬김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예수님은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이 바로 그것을 말해 줍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교회는 섬기려 오신 예수님을 에베소서 2장 21절 이하의 말씀과 같이 모퉁이 돌로 삼고 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섬김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목사들은 과연 제대로 섬김의 자리에 있습니까? 저는 자신을 보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수행을 주로 하는 승려들과 로마교회의 신부들은 결혼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믿음 안에서 잘 자란 아가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자녀도 셋이나 낳았습니다. 제대로 된 신부와 승려들은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생활비도 매우 적게 받습니다. 아예 절에서는 살림을 아예 단체로 삽니다. 우리는 일반인들에 비해 집단적으로 공부도 많이 합니다. 반드시 대학원을 졸업해야 합니다. 대학교수나 의사 집단을 제외하고서는 박사학위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이 목사일 것입니다. 무엇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남보다 하지 않는 것, 못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교인들로부터 존경도 많이 받고 대접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회자가 마치 많이 헌신하고 섬기는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교회나 목사가 사법권이 없으니 쉽게 이탈하고 분열하고 마음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고 해서 머리가 아플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다른 기관에서도 부지기수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목회자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무슨 헌신을 얼마나 합니까? 교인들이 훨씬 많이 일합니다. 우리는 월요일에 쉬지만 열심인 성도들은 주일을 목사보다 열심히 보내고 그리고 월요일부터 출근합니다. 새벽기도 하루에 빠지지 않는 92세 된 원로장로님도 계십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헌신하는가요?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요?

주님의 교회 목사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자리에 서서, 머리이신 주님이 그렇게 기뻐하시고 명령하시는 ‘하나되라’는 말씀 하나 지키지 못하면서 우리가 과연 주님의 종이 맞는가요? 십자가를 지고 섬기러 오신 주님이라고 그렇게 자주 말하면서 총회장이 못되어 안달을 하고, 돈을 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일입니까? 주님의 교회를 섬긴다고 하면서 무슨 수를 쓰든지 자기 교회만 키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말이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한목협에 속한 목회자들이라도, 지금이라도, 조금 늦었더라도 주님께 물어물어 가며 살면 좋겠습니다. 간단명료하게 대답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기울이고 그냥 뚜벅뚜벅 그 말씀 따라 살면 좋겠습니다. 나누라, 정직하라, 지나치지 말라....탐욕을 버리고 세상을 책임지라!! 세상을 책임지는 교회를 이끄는 목사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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