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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차] 울리히 두크로브의 사회와 경제에 대한 칼빈의 이해에 대한 논찬(2009/09/11) 한목협 제15차 열린대화마당 논찬

‘사회와 경제에 대한 칼빈의 이해’를 읽고 드는 생각은 칼빈 덕분에 이렇게 성장한 한국 교회가 원래의 칼빈의 사상을 제대로 알았다면 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칼빈의 이러한 사상을 교회에서 제대로 가르친다면 장로교의 많은 칼빈의 후예들이 교회를 뛰쳐나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생각과 도전을 준 두크로브 교수에게 감사하며 논문에 대한 의미와 한국 교회에 주는 도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논문의 의미

칼빈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가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신학자답지 않은 수준의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두크로브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가 신학을 전공하기 전에 법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그러한 전문성은 결국 그가 치리하였던 제네바 교회와 그 지역에서 성도들에 의해서 현실화되었다. 칼빈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을 성경에서 전달된 이야기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도록 가르쳐 온 것으로 보인다. 본 논문에서는 바로 그러한 현장들이 구체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본 논문을 통해서 또 깨닫는 것은 칼빈은 결국 신학자다운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그의 선하심을 따라 필요한 재화를 충분히 주셨다는 이해는 신학자다운 생각이라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의 활동에 대해서 신학자다운 해석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재화를 충분히 주셨는데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절히 분배가 안되고 불평등을 낳는 것은 인간의 죄에서 비롯된 부패에 의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그가 비즈니스를 경건한 생활에 비유하며 이를 사람들 사이에서의 교제(Fellowship)라고 칭하고 있는데서 빛난다. 그에게 있어서 비즈니스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충분히 주신 재화를 순환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즈니스, 또는 교역(Commerce)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사용되어지는 것이다.

칼빈이 이렇게 교역이라고 하는, 또는 비즈니스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인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발견이었다. 특히 인류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상업을 사회적 결속의 구성요소로 본 것도 칼빈의 놀라운 신학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직업을 소명으로 보고자 했던 종교개혁가들의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이번 논문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막스 베버와의 대화이다. 그간 우리가 접해왔던 베버의 테제에 대해서 두크로브는 그가 이야기하는 개신교는 칼빈의 원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청교도의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경제에 관한 칼빈의 관점을 베버에 의해서 해석되어지고 전달되어진 것만 알았다. 그러나 두크로브는 이러한 관습적 지식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즉 모든 칼빈주의가 다 칼빈의 원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그간 베버 테제가 우리들에게 종교사회학적인 영향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경제학적인 영향력을 끼쳐 온 것을 생각하면 중요한 지적이라고 본다. 더구나 최근에 유교적 전통에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성장으로 인해서 다시 베버 테제의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하겠다.

2. 논문과의 대화

한국 교회에서는 그간 특별한 연합이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칼빈주의와 성령운동에 터한 번영신학의 결합이다. 한국 교회에는 장로교의 전통이 강하게 뿌리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약 70%가 장로교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칼빈주의에 대한 순종은 다른 어느 나라에 비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 경향은 교조주의에 비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 한국인들의 종교성과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 유교나 불교도 그 원형의 모습을 그 종교가 태동한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은 이러한 한국인의 종교성이나 품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한국 교회에서 원전인 칼빈의 사상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것이다. 두크로브는 베버 테제와 연관하여서 개신교 정신으로 일컬어지는 베버의 칼빈주의는 칼빈의 사상이 아니라 그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청교도들에 의해서 해석되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칼빈에게는 부의 목적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인데 반해서 청교도들에게는 그 목적이 개인의 구원의 표시이자 목표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칼빈에게 부는 공동체의 이해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교제에 그 의미가 있다면 청교도들에게는 그 부가 개인의 구원을 확인할 수 있는 예정의 증표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사라지고 개인에게 유용한 부의 목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고 두크로브는 바로 이러한 면을 부정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러한 개인적 유용이라는 측면이 강조되어진 예정론에 근거한 번영에 대한 이해마저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예정론이 아니라 그냥 복 주시는 자로서의 하나님을 믿어오고, 번영에 필요한 긍정적 사고, 그리고 확신에 의한 능력(Energia), 또 그 복을 얻기 위해 믿어온 신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즉 신학의 근거와 신앙의 근거를 얻기 위한 예정론의 기준마저 내어버리고 그냥 나에게 복을 주실 수 있는 신으로서의 하나님을 신앙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와 신앙이 과거 산업화 시기에 우리에게 삶에 대한 신학적 준거와 해석을 제공해 주었던 것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 민도가 높아지고 종교에 대한 기대가 변한 이 시기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낮은 수준의 신학적 사고와 신앙의 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지금도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이나 ‘잘되는 나’ 등의 서적이 한국 교회나 사회에서 베스트셀러에 속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믿음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질문해 보아야 하고, 참된 제자도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돌이켜 모든 것을 버리고 그의 뒤를 따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세대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한국 교회의 딜레마를 보게 된다. 이미 성장의 단맛을 보고, 이러한 긍정적 사고의 복됨을 경험한 한국 교회가 과연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그 성도들에게 이러한 내려놓음의 영성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예수께 나아 왔으나 그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서 쓸쓸히 돌아서는 부자 청년의 딜레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 포기하고 돌아서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고, 내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진심어린 회심을 경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체의 관점에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지적한 칼빈의 대목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크다. “여러분은 빈번하게 교회 총회들의 결정에서든지, 고대 저자들의 글 가운데서든지, 땅으로든 금전으로든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은 가난한 자들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그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필요를 위해 지정되어 있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이 노래가 자주 불려진다. 그래서 만일 좋지 못한 믿음으로 그들이 재산들을 쌓아두거나 낭비한다면, 그들에게는 살인죄를 짓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과 재물에 대한 청지기 의식이 오늘날 한국 교회에 요구되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의식들이 세계로 그 범위를 넓혀야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주목하는 성장국가이다. 월드비전이나 컴패션과 같은 국제구호단체에서도 대한민국은 수혜국에서 벗어나서 원조국가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제적 성장에 비해서 대한민국은 아직 세계에 대한 연대 의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편협한 민족주의와 섬과 같은 반도국가의 영향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세계 사회 속에서 그 위치와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칼빈이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재물관과 연대 의식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가 이 사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행동으로 선도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하여서 세계에 대한 눈을 떠야 하고, 세계의 부의 불균형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행동의 방법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세계의 관점에서 이 세계의 빈곤을 이야기하고 그 구조적 악함에 대한 저항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선교이고,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현재 세계에 나아가 있는 1만 6천여의 한인 선교사와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한국 교회를 통하여서 보여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한다.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칼빈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개인윤리가 너무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책임을 촉구하는 부분은, 물론 세금을 통해서 국민의 복지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 기대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두크로브도 첫 부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칼빈은 제네바라는 도시-국가라는 정황 가운데 그의 윤리적 가르침을 발전시켰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상당히 직접적인 방법으로 제네바 시에서 현실적 치리를 감당해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좀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것은 그의 가르침의 대상이 군주가 아니라 일반적인 평민이나 시민 계층에 닿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것은 루터가 군주들과의 연대 가운데 종교개혁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더구나 칼빈의 유산을 물려 받은 청교도로 넘어가면서 점점 더 그 경향에 경도된 것으로 보인다. 즉 정부와 협조보다는 갈등을 겪었고, 끝내는 영국을 떠나 미국이라는 신천지로 떠나갔던 칼빈의 자녀들은 국가에 대한 책임 의식을 촉구하기 보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에서 개인윤리로, 그리고 정치보다는 경제에 대한 윤리로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관점은 결국 구조에 대한 문제 의식과 도전 보다는 개인의 의식과 구호(Caritas)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결과는 루터교가 자리한 국가들, 예를 들어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서는 복지와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사회 시장경제(Soziale Marktwirtschaft)가 발전을 이룬 반면,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그 나머지의 영향력을 받아들인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의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주의가 발전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부분에서 독일에서 개혁주의를 이야기하는 두크로브 교수의 의견을 듣고 싶다.

3. 나아가는 글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칼빈의 가르침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해 준 두크로브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현 시대와 같이 경제위기, 특히 자본에 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때에 고전의 힘으로 경제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경제 자체도 믿음의 표현으로 보고, 교역을 교제로 볼 수 있는 칼빈의 신학적 해석은 놀라운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의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화를 잘 사용하여 순환시켜야 함을 강조한 그의 통찰력은 현 시대에서 제기할 수 있는 몇 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펴보아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이 논문이 도입되어지는 부분에서 두크로브 교수는 칼빈의 방법론에서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신학을 성경에 근거하여서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특히 칼빈주의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칼빈주의의 정통을 고수하려는 한국 교회에서는 더욱 강조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성경에 근거한 칼빈의 가르침을 받아 성경이 거짓이나 허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의 삶과, 우리 공동체의 구조로서 고백하고 증명해내야 하는 소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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