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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한국교회, 대단한 결단이 필요하다(2011/06/13) 한목협 제13회 전국수련회 정책포럼

I. 현재적 상황

1) 자정능력 의심받는 한국교회, 더 이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다

2011년을 다섯 달 보낸 지금 와서 돌아보니, 한국교회는 금년 1월 2일 첫 주일, 이명박 정부 들어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린 소망교회의 하극상,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미 한국교회가 겪을 극단적 상황이 예고되었음을 보게 된다. 급기야 부활절을 앞두고 터진 한기총 금권선거 사태는 한국교회를 치유할 수 없는 집단으로 치부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우리는 이미 지난 4월 1일, “한국교회, 자정능력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세상 앞에 던졌고, 우리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다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장로교와 함께 한국교회의 두 기둥으로 이 땅에서 복음의 역사를 연 감리교회가 수년 째 세속 법정의 관리를 받고 있고, 장로교가 중심이 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역시 법정관리로 들어갔으니, 한국교회는 법적으로는 사실상 세속사회의 관리에 들어가 버렸다. 교회는 이미 교회이기를 포기한 상황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오늘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교회를 포기한 행위를 하고서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세상 법정에 고소를 형사 민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교회의 행정적인 문제를 들고 법정으로 갔으면서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욱 기막히다. 법정 관리인이 사태 파악을 하자며 청문회를 연다는 데도 “집사가...”운운 하면서 참석하지 않았다. 법정으로 갈 때는 무슨 마음이며 거부할 때는 또 무슨 마음인지 알 수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그들이 여전히 대표성을 주장하고, 한기총은 역시 그들로서 조직을 구성할 것이 틀림없다. 세상으로부터, 교회로부터 그렇게 비난을 받은 사람들이 여전히 큰 소리치며 한기총을 맴돌고 있으니, 자정 능력이 없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은가?

요즘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부정한 행위를 한 사람들이 밝혀지고 있다. 지목을 당한 그들은 범죄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하면서도 그들이 가진 직책은 내려놓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기총에 얽힌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 아닌가? 우리가 무슨 배짱으로 한국교회에 자정능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 현재의 한기총이라는 단체는 교회의 모습일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내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임을 믿고 있는 모든 공교회들은 하루 속히 한기총을 버려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무슨 씨앗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교단들은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의 자정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생각 있는 성도들의 눈에 비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국교회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우리 목회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예사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늘 있어온 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한동안 떠들다 금방 잊어버리는 일과성의 일로 넘겨버리지 말아야 한다. 청년층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2) 한국교회 일각에서 보이는 갱신의 몸짓, 소위 교회 지도자들은 비웃고 있다

4월 노회를 거치면서 장로교회의 몇몇 노회들이 한기총 탈퇴를 주장하고 나섰다. 통합, 합신, 고신 등에서 그와 같은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과연 그 교단들의 총회가 탈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매우 회의적이다.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교단의 정치는 항상 자리를 즐기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데 그런 인물들이 별 하는 일 없이 대접받고 회의비 받는 그런 ‘자리’를 기꺼이 버릴 까닭이 전혀 없다. 소위 한기총의 지도자들은 평범한 목사들의 충정어린 권고를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목회자들이 되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무시할 뿐이라는 느낌이다.

최근 들어 한기총의 두 인물인 이광선 목사와 길자연 목사는 양측이 서로 합의했다는 문서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 다른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금권선거를 했다고 고백하면서 금권선거를 한 쪽을 대표회장으로 인준하고, 금권선거에 가담한 다른 한 쪽의 개혁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기상천외의 성명서를 버젓이 발표한 것이다. 아직도 한국교회를 향하여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이 남아있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 금권선거를 했다고 시인하는 것에 대한 후속조치는 전혀 없다. 오히려 양측이 서로를 덮어주기로 하였다고 선언한 셈이다. 한국교회를 향한 갱신의 소리를 비웃고 있다.
지금 그들이 할 일은 그냥 무조건 한국교회에서 자취를 감추는 일이다.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이 얼마든지 알아서 할 것이다. 마치 자신들이 아니면 아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3) 한기총 사태를 비롯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부도덕성은 일부에 국한 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총체적으로 한국교회 문제를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항상 교회 안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일부에 국한 된 문제로 치부한다. 일부 몰지각한 목사, 장로, 교인들이 일으킨 문제라는 인식을 갖는다.

과연 그러할까? 결코 아니다. 오늘의 총체적인 난국은, 이처럼 명백한 금권선거를 보고서도 어느 공교단도 임원회나 운영위원회와 같은 공식적인 기구를 통하여 긴급성을 가지고 논의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확실이다. 노회들이 건의안을 올렸다고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흔히 대형교회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 성추문, 금권선거, 폭력, 재정유용, 심지어 도박 등의 각종 사건들과 교회 안의 자리, 권력다툼으로 다투고 분열하는 일들이 시시때때로 크고 작고 교회를 가리지 않고 터져 나오고 있다. 어느 지역, 어느 교단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알려진 사건보다 알려지지 부패한 행위와 사건들이 훨씬 많다. 교회에서 정상적으로 목회하다 은퇴하면 겨우 기천만 원의 퇴직금을 받지만,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분열시키고 교회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나면 빚을 내어서라도 수 억, 수십 억의 전별금을 챙겨갈 수 있다는 것이 이제는 기정사실화되었다.

발제자가 속한 고신교단은 바리새파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적어도 외형적, 제도적으로는 모든 일에 매우 엄격했다. 정죄하는 설교를 잘하는 교단으로 소문났었다. 목사에게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사임을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래서 목사는 세 가지 준비, 즉 설교할 준비, 이사할 준비, 죽을 준비는 항상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교인들이 다 떠나도 목사는 남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한때 기업은 망해도 기업가는 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식으로 살기 어렵다. 기업이 망하면 기업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놓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는 무너져도 목사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이 성립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교회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목사들은 자기 실속을 모두 챙기는 볼썽사나운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태의 진단을 바르게 해야 한다. 교회의 영성과 도덕성이 전반적으로 심각하게 하향 평준화하고 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목회자 윤리장정을 제정하고 초교파적인 목회자 윤리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의 탄원을 받아 선언적으로라도 정확하고 정직하게 다루어주는 곳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목회자의 잘못은 사법기관에 고소하거나 물리적 충돌을 감행하는 식의 파국을 부르는 방법이 아니고서는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노회나 총회가 애써 거룩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동료목사를 징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 모든 교회의 법절차는 항상 힘없는 사람에게만 강요될 뿐이다.

4) 현재의 NCCK는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없다

한기총 사태가 벌어지자 NCC가 교단장 회의를 소집하는 등 한국교회의 대표기관으로서 사태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한기총의 상황과 상관없이 지금까지 NCC는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NCC가 주최하는 회의에는 가맹 7개 교단 외에는 참여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지난 5월 30일 NCC 김영주 총무의 제안으로 18개 교단장을 초청했지만 7개 회원교단 외에는 기독교성결교회에서만 참석했다. 한기총의 태생적 한계를 말하지만, 어쨌거나 한기총은 한국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는 자리를 잡고 있었으므로 한기총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체를 주장한다고 하여 NCC를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NCC는 이미 한국사회의 좌파 기울어진 성격을 가진 것으로 규정되어,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안고 갈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대표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포용력 있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NCC는 아직도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 돕는 일을 하지 말자는 교회는 우리나라에 없다. 그렇다고 매우 민감한 정치적인 사안이 함께 걸려있는 문제를 두고 ‘국법을 어겨서라도 돕겠다’는 식으로 큰소리치며 접근하는 것은 곤란하다. 목적이 좋으면 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것인가? 정부를 향하여서는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일방적이어도 좋다는 것인가? 이런 작은 일들에서도 아직 함께 가는 일에 서툰 모습을 보면 NCC의 정치적 한계는 쉽게 벗어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II. 대안찾기

1) 교회는 정치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을 찾기 전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목사들이 엄청난 돈을 쓰면서 한기총 대표가 되려 하는가? 한기총 대표회장을 단순한 명예욕인가, 아니면 그 직을 통하여 할 수 있는 어떤 사역이 있는가?

길자연 목사를 옹호하는 분들이 법원이 한기총 회장 직무대행으로 김용호 변호사를 선임하자 항변하며 발표한 성명서에서 “한기총 대표 자리는 가톨릭 추기경과 불교 총무원장 자리와 다를 바 없는데, 평신도가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수장 자리에 앉아 1,200만 성도를 다스릴 수 있겠느냐?”고 비난했다. 역대의 회장들과 관련자들은 한기총의 대표와 자리들이 엄청난 명예가 달린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천 이백만 성도를 다스리는 한기총 회장’이라는 표현은 난생처음이요 우리 모두를 몹시 당혹스럽게 한다. 한기총 역대 회장을 지냈다는 분들이 어떻게 목사의 신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태도를 취할 수 있는지 의아하지만 그것이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개신교회를 통째로 다스리는 자를 한국교회가 뽑거나 허용한 적이 없다. 교회는 명실 공히 하나님의 교회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신다. 그 어디에도 사람이 교회를 다스리는 자리에 끼여들 틈이 없다. 성도들 위에서 주장하는 자세를 버려야 하고, 오직 섬김으로 모범이 되어야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근본적인 태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제부터 목사를 섬김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모든 자리를 내려놓거나 그 성격을 바꾸도록 최선을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가 정치현장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보수 진보 어느 쪽으로 기울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볼 때 지독하게 진보적이었다. 그들의 전통에 담긴 잘못을 거침없이 비판했다. 장로의 유전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공격했다. 대중들이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조건적으로 비판적이지 않으셨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셨다. 철저하게 보수적이었다. 양극단을 공유한 예수님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지금 너무 정치에 취해 있다. 그러니까 고소영이라는 말로 소망교회가 싸잡아 비난을 받는다.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교회가 정치에 빠져들어서는 안 된다. 개개인의 그리스도인들이 각기 성향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지만 교회는 완전하지 못한 세상 정치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기준으로 잘잘못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정치가 없으므로 교회는 어느 편도 들 수가 없다.

따라서 앞으로 교회의 모임에는 절대로 정치인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조계종은 템플 스테이 예산 주지 않아 기분 나쁘다고 몽니를 부리면서 초파일에 정치인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는데, 이제부터 한국교회는 어떤 자리에도 정치인의 꼬리를 단 사람은 교회의 집회에서 그 이름으로 말할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된다. 각 지방에서는 무슨 모임이 있을 때마다 시장인사가 항상 제일 앞자리를 차지한다. 신앙도 없는 정치인이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는다. 교회가 주고받을 일이 결코 아니다. 기독교회를 대표하여 청와대를 방문한다는 소리도 나지 않아야 한다. 자연인의 신분으로 가야 한다. 교회가 정치와 거리를 두기만 해도 명예욕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2) 교회의 연합은 공교회 중심으로 가야 한다

한목협이 제시한 적이 있는 건강한 교단(대학에 준하는 신학교육 기관이 있는 교단, 총회 노회 등의 조직을 갖춘 교단, 이단의 시비가 없는 교단 등)들이 연합하는 형태를 취하여야 한다. 개인들이 조직을 만들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듯 행동하는 것을 자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3) 목회자의 윤리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

감추거나 무시하거나 모른 채 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려는 현재의 노회나 총회의 행태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완전한 제도란 불가능하지만 인간의 연약성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갈수록 노회와 총회의 교회와 목사에 대한 통제력이 없어지고 있다. 물론 교권을 이용하는 자들 때문에 교회들이 소위 상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에서 빚어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최소한의 양식을 지키도록 할 수 있는 장치도 없는 상황이다.

III. 결론

목사를 비롯하여 모든 한국교회 성도들이 교회를 바로 아는 일이 시급하다.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으므로 명예욕, 물욕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터에서 넘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따라 바른 터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이다.

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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