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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회] 표류하는 한국교회, 그리고 목회자의 멍에(2013/06/17) 한목협 제15회 전국수련회 기조강연

1. 머리말

늙은 호박, 안개 속을 움직이는 연료가 떨어진 자동차, 초점이 맞지 않는 수십 개의 렌즈, 초식공룡, 흐린 가을 하늘,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난치병 환자. 이것들은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심층면접조사 결과 그들이 평가하는 한국교회 연상 이미지들이다. 그들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오히려 세상이 걱정해주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그들만의 생각일까? 한국교회에 대한 위기의식은 대부분의 목회자와 평신도들도 공감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한때 뜨겁고 열정적이고 부흥하고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열정이 식었고 부흥도 안 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공신력을 잃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영욕(榮辱)의 중심에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있다. 모든 조직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의 지도력에 따라 그 조직은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이것은 특히 종교조직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종교조직은 종교지도자가 거의 독점적으로 종교적 가치와 규범을 조직 구성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에 자랑스러운 면이 있다면 그 공은 주로 교회 지도자로서의 목회자에게 돌려질 수 있지만, 반대로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 책임은 누구보다 목회자에게 있다고 하겠다.

교회의 수준, 그리고 교인들의 수준은 목회자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 성직자의 높은 영적, 도덕적 수준은 교회와 교인들의 수준을 높이겠지만, 만일 성직자의 영적, 도덕적 수준이 낮다면 교회와 교인의 수준도 낮아질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한국교회의 공과(功過)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한국교회의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목회자에게만 돌리는 것은 지나친 것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의 여러 상황이 변하면서 불가피하게 교회 혹은 교인들에게 문제적인 결과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있는 교회 내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교회 지도자로서의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

물론 다수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묵묵히 성실하게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다수는 교회의 열악한 물적, 인적, 시설 자원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양적, 영적 위기에 대해서 그들 모두 연대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울러 그들은 미래 한국교회의 변화와 갱신에 대한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멍에인 것이다. 이 강연은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이에 대한 목회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하여 종교사회학적으로 성찰해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교회의 현실을 분석하고 위기의 근원을 밝힐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현실에 대하여 알아볼 것이다. 이어서 이 시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그리고 감당해야 하는 과제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2. 한국교회의 현실

양적인 면에서, 그리고 질적인 면에서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교회는 어떤 위기를 맞고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인지 먼저 탐구해보기로 한다.

1) 한국교회의 양적 위기: 성장에서 쇠퇴로

한국교회는 그동안 눈부시게 성장하고 발전해 왔다. 그래서 선교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성공적인 부흥을 이루어냈다. 이에 대해서는 해외의 학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칭송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종교세속화론의 대가인 사회학자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서구 기독교의 세속화와는 달리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는 종교의 부흥을 ‘탈세속화’(desecularization)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로 한국을 꼽고 있다. 종교세속화론의 다른 대가인 사회학자 데이비드 마틴(David Martin)도 서구 기독교의 쇠퇴에 역행하면서 아시아에서 대표적으로 성장한 교회의 모델로 한국 개신교를 소개하고 있다. 거시적으로 세계 기독교 현상을 분석한 종교학자 필립 젠킨스(Philip Jenkins) 역시 아시아에서 위대한 기독교 성공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의 미래를 연구한 역사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한국이 기독교가 성장한 주목할 만한 사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종교학자 존스톤(Patrick Johnstone)과 맨드릭(Jason Mandryk)은 선교 비전에 있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라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평가에 의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교회성장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교회는 특히 1960년대 이후 급성장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얼마나 급성장했는가? 한국의 개신교회 숫자는 1960년 5천 개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8만 개로 50년 사이 16배로 늘어났고, 교인 수도 같은 기간 동안 60만 명에서 900만 명으로 15배로 늘어났다. 이것은 마틴의 표현대로 ‘기독교 열풍’(Christianity fever)과 같은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 장로교인은 미국 장로교인의 두 배에 달하며, 한국 감리교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교세를 가지고 있다.8) 교회성장 과정에서 메가 처치도 많이 생겨났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가장 큰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한국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메가 처치 10개 가운데 5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해외 선교사 파송국이 되었다. 한 마디로 그동안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급성장의 요인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상황적 요인과 교회적 요인이 있다. 우선 1960년대 이후 몇 십 년간 한국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과 변화가 교회성장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1960, 70년대 군부독재 체제 아래서 정치적인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을 때 마음의 평안을 제공하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절대적 빈곤 혹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축복을 약속함으로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소속감과 공동체성을 마련해 주었다. 이러한 심리적, 사회심리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던 것이다. 물론 다른 종교들 역시 그러한 기능을 감당했기 때문에, 개신교가 성장했던 기간에는 가톨릭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들, 심지어는 사이비 종교들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사회학자들은 어려운 정치, 경제, 사회 현실에서 종교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종교가 ‘부와 건강’(wealth and health)을 약속하기 때문이라고 보면서 이것을 소위 ‘번영의 복음’(Gospel of prosperity)이라고 부른다.

지난 몇 십년간의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영향을 미친 다른 요소는 교회적인 것이다. 1960년대 이래로 한국교회에 나타난 특징의 하나는 신앙적 열정의 표출이었다. 그것은 부흥운동, 성령운동, 신유운동, 카리스마운동 등으로 뜨겁게 분출되었다. 그 운동은 나아가서 활발한 배가운동, 전도운동, 성경공부와 기도회, 셀 조직과 선교회 조직 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운동이 교회성장의 활력이 되었다.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소명감을 가지고 사역에 몸과 마음을 바친 목회자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 성장의 공로는 우선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특히 성령운동은 한국교회 성장의 강한 동력을 제공했다. 이러한 성령운동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교회의 복음이 한국의 무교적인, 기복적인 문화와 혼합되면서 사람들의 “필요를 찾고 필요를 충족시키는”(find needs and meet needs) 작용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어쨌든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상황적, 교회적 요인에 의해 교회가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변하고 있다. 우선 성장이 멈추어버렸다. 오히려 최근에는 교인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인의 수는 1995년 876만 명에서 2005년의 861만 6천 명으로 10년간 14만 4천 명이 감소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개신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7%에서 18.3%로 1.5% 포인트 감소했다. 아울러 교인들의 신앙적 열정도 전보다 약해지고 있다. 대규모 부흥집회는 더 이상 성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 성장의 강한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던 ‘성령운동’도 교회에서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 왜 한국교회는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 것일까?

종교의 성장과 쇠퇴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결정으로 중요하다.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복지제도가 발달하고 개인주의적인 현대적 가치가 지배적인 국가, 사회일수록 종교는 쇠퇴하는 반면에,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빈곤하며 복지제도가 발달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가족가치를 유지하는 국가, 사회일수록 종교가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배고프고 배우지 못하고 병들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종교를 통해 위안과 희망과 용기를 얻기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부유한 유럽 국가들에서는 교회가 현저하게 쇠퇴하는 반면에, 가장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교회가 눈부시게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한국의 경제 수준, 복지 수준, 교육 수준은 크게 향상되었다. 오늘날 한국인은 꽤 잘 산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에는 80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2년에는 2만 4천 달러에 달하게 되었다. 흔히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를 넘게 되면 종교적 관심이 약해지기 시작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989년 1인당 국민소득이 5천 달러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제 배부르고 따뜻하고 편한 삶을 누리면서 한국인은 서서히 종교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번영의 복음’을 찾지 않게 되었고, 아울러 뜨거운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가치관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기게 된다. 물질주의 가치관이 삶에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는 사회적인, 심리적인 여유를 만들어내면서 종교 이외의 것, 예를 들면 “인생을 즐기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생활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종교를 갖는 것”이라는 한국인 비율이 1984년에는 11%였으나 2004년에는 5%로 줄었고, “신념을 갖고 생활하는 것”이라는 응답 비율도 27%에서 10%로 줄었다. 반면에 “돈이 많은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11%에서 31%로 늘었고, “여가/휴식 시간이 많은 것”이라는 응답 비율은 2%에서 9%로 늘어났다. 한국인에게서 영적, 종교적 관심은 줄어드는데 반하여 물질적, 세속적 관심이 증대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종교를 떠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가산업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이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하여 건강과 휴식, 오락과 유흥을 위해 휴양지와 관광지로 떠나며 위락시설과 유흥시설을 찾고 있다. 이러한 여가산업은 이제 하나의 대체종교로서 신도 확보 및 유지에 있어 기성 종교에 대한 하나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종교의 성장과 쇠퇴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또 하나의 변수는 인구학적 변화다. 무엇보다 출산율이 중요하다. 당연히 출산율이 높으면 종교가 성장하고 그것이 낮으면 종교가 쇠퇴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70년의 4.53이었으나 이후 계속 낮아져서 2010년에는 1.21로 크게 떨어졌다. 오늘날 종교성장은 개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로 출산에 따른 자연증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낮은 출산율은 종교쇠퇴의 주요인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한국에서 종교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아울러 빠르게 고령화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종교인구 역시 고령화되면서 젊은 층 종교 인구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의 변화가 전체적으로 한국 종교의 정체, 나아가서 쇠퇴를 조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가톨릭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톨릭 신도의 종교성은 매우 약할 뿐만 아니라 전보다 더 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성장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쇠퇴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 상황적 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다 중요하게는 개신교 자체가 보여주고 있는 문제적인 상황이 그 쇠퇴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하여 살펴본다.

2) 한국교회의 위기: 사회적 공신력의 상실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상황 변화로 한국인의 종교성은 대체로 과거에 비해 약해지고 있다.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1984년과 2004년 사이 자신의 믿음이 “깊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41%에서 34%로 감소했고, 개인생활에서 종교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68%에서 56%로 줄었다. “일주일 한 번 이상” 종교의례에 참여하는 비율도 39%에서 36%로 감소했고, 개인적으로 “하루 한 번 이상” 기도한다는 응답자 비율도 41%에서 34%로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인의 종교성은 여전히 강하다. 의례 참여도, 교리에 대한 믿음, 기도와 경전 읽기와 같은 개인적인 신앙생활, 전도와 헌금 등 모든 종교성 지표에서 개신교인은 다른 종교인들보다 월등히 강하다. “주 1회 이상” 의례참여 비율은 개신교 71%, 가톨릭 43%, 불교 4%로 개신교인의 경우 훨씬 높다. “하루 1회 이상” 기도하는 비율도 개신교가 59%로 가톨릭의 28%, 불교의 14%보다 월등히 높다. “매주 한번 이상” 경전을 읽는 비율 역시 개신교가 49%로 가톨릭의 16%, 불교의 8%와 비교가 안 된다. 십일조 헌금을 하는 비율은 개신교인 46%인데 비하여 가톨릭 교인은 15%에 불과하다. 교리에 대한 믿음에 있어서도 개신교인의 종교성은 매우 높다.

개신교인의 이러한 강한 종교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 예를 들어 2010년 11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한국교회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 개신교에 대하여 “신뢰한다”는 응답 비율은 18%에 불과한 반면에,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48%나 되고 있다. 이것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1점에 불과하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말과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데 있어서는 17%(42점), “교회의 활동은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데 대하여는 27%(46점)만이 “그렇다”고 응답하고 있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기관에 대한 물음에 있어서는 응답 비율이 가톨릭(41%), 불교(34%), 개신교(20%) 순으로 나타나고 있어 개신교가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종교임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인구의 47%에 달하는 무종교인의 개신교 평가는 더욱 부정적이다. 그들의 평가를 보면 “가장 신뢰하는 종교기관”은 가톨릭(45%), 불교(35%), 개신교(12%) 순이다. 그리고 무종교인이 개신교 교인을 신뢰하는 비율은 6%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대한 이러한 낮은 신뢰도가 한국교회 정체 혹은 쇠퇴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고 하겠다.

한국인들, 특히 비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보는 것일까? 이 문제는 한국교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의 근원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한미준과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한국 개신교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양적 팽창/외형에 너무 치우친다는 것이다. 물량주의에 너무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세속화되어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교파가 너무 많고 단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전도활동이 지나쳐 혐오감을 준다는 것이다.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에게 너무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너무 시끄럽고 요란하다는 것이다. 헌금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사리사욕/이기심 등 그 자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기교회 중심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한국교회가 영성을 잃어버려 세속화되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개신교인이 믿기는 잘 하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없고 좋은 점도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반 교인과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역시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개신교인들은 한국교회의 팽창주의, 교파분열, 목회자 자질, 개교회주의, 세속화가 문제라고 보고 있으며, 크리스천 여론선도층도 비슷하게 한국교회의 문제는 물질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목회자 윤리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1960, 7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판은 좋았다. 이것은 당시 주요 언론에 실린 종교관련 기사의 내용을 분석한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 시기가 한국교회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복음적인 신앙운동을 전개하여 교회가 부흥했고, 진보 진영에서는 활발한 사회참여로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많지 않아 교회의 부흥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적었고, 교회의 활동은 오히려 사회에 활력소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회도 성장했고, 사회적 공신력도 높았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와서는 본격적인 반기독교(개신교) 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난 2-3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한국교회를 “더 많이 신뢰하게 되었다”는 응답 비율은 5%인데 비하여 “더 적게 신뢰하게 되었다”는 응답 비율은 31%로 훨씬 높았다.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의 경우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를 이탈하고 있다. 그리하여 개신교를 떠나 타종교로 개종한 인구가 200만 명, 개신교를 떠나 무종교인이 된 인구가 560만 명으로 무려 760만 명이 개신교를 떠나갔다. 이 숫자는 불교의 2배, 가톨릭의 4배에 달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존경과 신뢰를 잃게 된 것은 무엇보다 교회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성장의 부작용’일 수 있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분명히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어냈고, 여기서 목회자들의 헌신과 열정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편 한국교회는, 그리고 목회자들은 양적인 성장에 너무 자신했고, 너무 과신했다.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 자화자찬했다. 이에 대하여 외국 학자인 존스톤(Johnstone)과 맨드릭(Mandryk)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영적 자만심에 대하여 비판했다. 한국교회는 성공과 번영이 하나님의 축복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통계적으로 드러난 성장, 인상적인 조직과 건물에 대한 자만심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지도자들이 십자가를 지기보다는 성공, 부, 학위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성공 신화에 빠져서 사회적 지탄을 받고 교세가 기우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하여 자세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3. 한국 목회자의 현실

한국교회의 성격과 교인들의 신앙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교회 지도자로서의 목회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서면 교회와 교인들이 바로 설 수 있는 것이며, 그들이 흔들리면 교회와 교인들도 흔들릴 것이다. 목회자, 그들은 누구인가? 여기서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실태와 의식, 그리고 그들에 대한 교회 안팎의 평가는 어떠한지 살펴보기로 한다.

1) 목회자의 실태와 의식: 이상과 현실의 괴리

한국의 개신교회 수는 약 8만 개이며, 목회자 수는 14만 명 정도에 이른다. 교인 수와 예산에 근거한 교회의 규모는 천차만별이며, 목회자의 성향과 배경도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한국교회 목회자의 실태와 의식에 대한 일반화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표본조사를 통해 목회자들의 현실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제부터 한목협의「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보고서」가운데 목회자 대상(전국 단위의 500명 표본조사) 조사 결과에 나타난 한국교회 목회자의 실태와 의식에 대하여 알아본다.

성별로 보면 목회자의 절대 다수(94%)가 남성이다. 이것은 대다수의 한국 개신교 교단이 여성 목사 안수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종교가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사실도 여기서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교인의 2/3가 여신도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교회 안에 아직도 만연하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문화는 시정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목회자의 평균 연령은 51세이다. 목회자의 정년이 70세인 점을 감안한다면 다른 직종에 비해 목회자의 평균 연령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목회자의 신앙 시기는 대부분 모태신앙(51%)이거나 초등학교 이전(25%)이었다. 목회 계기는 부모나 본인의 서원기도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39%), 다음은 소명(24%), 자원(21%) 순이었다. 평신도의 경우에도 신앙에 있어 부모의 영향이 크지만, 목회자가 목회의 길로 가게 되는 데 끼치는 부모의 영향은 훨씬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 다수(95%)가 목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시 태어나도 목회자가 되겠다는 응답은 86%로 조금 낮았고, 자녀가 목사 되기를 희망하는 비율은 68%로 더 낮아졌다. 이것은 목회자 본인은 소명에 의해 목사가 되었고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일이 워낙 고되고 힘들어 자녀에게는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가 아닌가 한다.

현재 시무하는 교회가 부임교회인 비율은 48%, 개척교회인 비율은 52%이다. 개척교회 비율이 높은 것은 매 해 수천 명씩 신학대학을 졸업하여 과다한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교회 시무 년 수는 평균 9년이다. 그렇다면 한국 목회자는 평생 3-4회 정도 목회지를 옮기는 셈이 된다. 이것은 아마도 목회 경력이 쌓이면서 다른(때로는 조금 더 큰) 교회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무 교회의 교인 수는 평균 167명이다. 그러나 이것을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중소형 교회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32)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다수가 교인 수 50명 미만의 아주 작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교회 1년 예산은 평균 1억 8천만 원 정도이다. 이 역시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경제적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각주 30번 참조). 왜냐하면 한국교회의 2/3가 미자립교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년 예산이 5천 만 원 미만인 교회가 21%나 되고 있다.

목회자는 하루 평균 2시간 40분 정도 기도하며, 1주 평균 8시간 50분 정도 성경을 읽는다. 한국 목회자의 설교 횟수는 1주일 평균 7.5회이며, 그것이 ‘10회 이상’인 경우도 40%에 이르고 있다. 아무래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부담임자가 없는 교회가 많아 담임 목회자의 설교 부담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한국교회는 주일 낮 예배 이외에도 여러 예배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그 업무가 가장 과도한 것이 한국 목회자가 아닐까 한다. 주일 낮 예배 설교를 위해 평균 4시간 40분 준비를 하며, 참고 자료는 주로 신앙서적, 주석, 기독교신문, 신앙잡지 등 주로 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평균 설교 시간은 46분으로 긴 편이다. 설교 내용은 신앙성숙, 위로와 축복, 결단과 소명 순이었다.

목회자는 한 주 평균 6.5명을 상담하고 있다. 그들은 장년 기준으로 평균 88%의 교인 얼굴과 이름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이 가장 비중을 두는 목회는 예배(46%), 전도(17%), 교육(14%), 봉사와 친교(각각 11%) 순이다. 교회의 중요 안건에 대한 결정은 주로 중직자와 담임이 함께 결정하고 있다(49%). 담임 혼자 결정하는 경우도 12%이다. 반면에 전체 교인의 의사가 반영되는 비율은 21%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의 의사결정 과정은 다소 비민주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겠다. 이것은 특히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인사들이 비판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시무교회 만족도(매우+약간)는 72%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매우 만족”이라는 비율은 10%에 머물고 있다. 생각보다 만족도는 높지 않은 편이다. 물론 이것은 목회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시무교회라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불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목회자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무엇보다 열악한 교회 현실이다. 그들이 목회의 어려움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첫째 “성장이 더디다는 것”(28%)이었고, 둘째 “재정 부족”(22%)이었으며, 셋째 “영적 성장이 안 된다는 것”(18%)이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목회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물량적인 것”(교인 수, 교회 재정)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목회자들은 나름대로 고민이 있고, 따라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가장 큰 고민은 무엇보다 “성장의 어려움”(46%)과 “경제적 어려움”(16%)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는 비율이 ‘주일예배 참석자(장년)’의 경우 25%, 대학/청년부가 14%, 교회학교(영유아/중고등부)가 15%에 머물고 있어 이에 대한 목회자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어 보인다. 교회 예산을 떠나 목회자의 열악한 경제적 형편도 그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목회자들의 월 사례비는 평균 213만 원이다. 이것은 일반 국민 평균 소득 337만 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월 사례비가 150만 원 이하인 목회자 비율도 34%나 된다. 목회자 1/3이 극빈자 수준인 것이다. 목회자에게 소명과 청빈만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가 아닐까? 실제로 목회자의 거의 절반(48%)이 사례비 수준이 부족하다고 응답하고 있다(충분 12%). 그래서 목회자의 일상생활 만족도에 있어 “만족한다”는 비율이 가족관계에 있어서는 91%로 높지만, 사역에는 73%가, 친구관계에는 64%로 다소 낮으며, 살림살이(경제적 형편)의 경우에는 49%, 문화/취미생활은 45%에 불과하다. 게다가 목회자의 72%는 “노후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고 했고, 39%는 노후가 불안하다고 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고 재정적으로는 열악하여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회자이기에 그들 가운데 55%가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스트레스는 30, 40대 목회자에게서, 대도시 목회자에게서, 교인 수가 감소하는 교회 목회자일수록 더 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목회자의 다수가 교단 연합사업(89%)과 교파연합(90%)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교회 세습에는 71%가 “반대”하고 있으며(나머지 29%에는 “경우에 따라 할 수 있다”는 조건부 용인과 “문제될 것이 없다”는 무조건 용인이 모두 포함되었음), 목회자 납세에는 49%가 “찬성”하고 있다. 목회자는 이념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다. 예를 들어 이념적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목회자는 56%(교인 47%, 비교인 41%)나 되는 반면에 ‘진보적’이라는 목회자는 13%에 불과하다(‘중도’ 31%). 외도, 동성애, 혼전 성관계, 인공유산, 흡연, 음주, 이혼 등 윤리적 항목들에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응답 비율은 비개신교인보다는 개신교인의 경우 더 높지만, 특히 목회자에게서는 훨씬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안 된다”는 비율이 ‘혼전 성관계’에 있어 목회자는 86%나 되지만 평신도는 49%(비교인 26%)이며, ‘음주’에 있어 목회자는 73%인데 비하여 평신도는 28%(비교인 7%)이며, ‘이혼’에 있어 목회자는 53%이지만 평신도는 39%(비신자 26%)로 나타나고 있다. 목회자의 이러한 보수적 가치관과 평신도(비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의 개방화되는 가치관 사이의 괴리는 교회 안에서 상당한 갈등을 만들어낼 소지가 있다. 이 역시 풀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목회자들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성직자로서의, 교회 지도자로서의 이상, 소명, 보람에도 불구하고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직면하고 있는 많은 어려움들로 인해 고뇌하며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실추된 공신력과 신뢰에 대한 우선적인 책임이 그들에게 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이제 알아본다.

2) 목회자에 대한 평가: 네 탓이오?

한국교회 목회자의 다수는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건강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헌신적으로 목회 사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국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일부의 문제가 확대 재생산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목회자가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세속화되고 부도덕하여 교회 전체의 이미지를 흐려놓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이 문제에 주목하는 것은 그러한 인상이 불식되지 않고는 한국교회에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목회자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목회자 자신,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일반 교인, 그리고 비신자들의 평가를 차례로 살펴본다.

목회자들은 목회자의 역할 수행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한목협의「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보고서」가운데 목회자 대상 조사 결과를 먼저 본다. 목회자들의 목회자 평가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즉 자신에 대해서는 약간 후하게 평가하는 반면에 목회자 전체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 전반의 역할 평가에 있어 “잘 한다”는 응답 비율이 자기 자신의 경우는 76%이지만(이것은 보기에 따라 높다고도 할 수 있고, 반대로 낮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 전체에 대해서는 63%로 낮았다. 목회자로서의 자신의 경우 “잘 한다”는 비율(괄호 안은 목회자 전체)이 “신앙생활에 있어 솔선수범한다” 77%(65%), “설교와 행동에 믿음이 간다” 78%(60%), “정직하다” 71%(59%),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적이다” 74%(54%), “개인적인 물질에 욕심이 없다” 64%(42%), “지도력(리더십)이 있다” 64%(65%), “권위주의적이다” 44%(49%)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목회자들이 한국 목회자 전체(괄호 안 비율)에 대하여 내리는 평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즉 신앙의 솔선수범, 설교와 행동, 정직성, 윤리적 모범성, 물욕, 권위주의 등에 있어 한국의 목회자들은 성직자로서의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목회자들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목회자들이 물욕을 버리고 윤리적으로 모범을 보이며 권위주의를 버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물욕은 세속화의 전형으로 영성을 잃어버린 것을 의미하며,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도덕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바로 그러한 것들이 한국교회, 그리고 목회자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유혹이며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목회자들은 한국 목회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대한 목회자의 평가를 회귀분석한 결과 한국교회의 신뢰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목회자 자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크리스천 여론선도층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가? 한목협의「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보고서」의 심층면접조사 결과에 따르면 목회자에 대한 그들의 평가도 매우 비판적이다. 그들이 한국교회의 내부 문제점으로 가장 중요하게 지적한 것은 ‘목회자 자질과 리더십’이었고(33%), 다음은 ‘세속화’(물질주의, 성장주의)(26%), ‘개교회주의’(22%) 순이었다. 따라서 문제해결 방안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목회자의 영적 각성이 필요하며, 이어서 세속 가치를 극복하여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고 공교회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목회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은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목회자는 권위주의와 교권주의를 버리고 물질주의와 기복신앙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고 지도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말씀과 삶의 일치에 모범이 되고 인격적 성품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복음의 목적을 교회성장이 아니라 신앙성숙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존경 받는 목회자상을 정립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소개하지는 않고 있지만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인사들은 한국교회와 교인들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교인들은 목회자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그들에게서도 약간의 이중적 태도가 나타나고 있다. 한목협의「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보고서」가운데 교인들 대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속교회 목회자에 대한 평가는 다소 후한 편이지만, 목회자 일반에 대한 평가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왜냐하면 소속교회 목회자에 대하여 불만이 많으면 그 교회를 떠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 교인들이 소속 교회의 담임 목회자에 대하여 “만족한다”(매우+약간)는 평가 비율은 “설교를 잘 한다” 88%, “리더십이 있다” 78%, “신앙생활에 솔선수범 한다” 78%, “권위주의적이지 않다” 77%, “교인/행정 관리를 잘 한다” 75%, “물질적 욕심이 없다” 70%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는 않지만, 한국 교인들은 소속교회 담임 목회자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여기서 ‘물욕 없음’의 비율이 가장 낮은 것이 눈에 띤다.

그러나 문제는 1998년, 2004년과 비교해 볼 때 담임 목회자에 대한 만족도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5점 만점으로 환산한 점수를 1998년과 2012년을 비교했을 때 ‘설교’는 4.38에서 4.11로, ‘지도력’은 4.30에서 4.00으로, ‘솔선수범’은 4.36에서 4.00으로, ‘물욕 없음’은 4.16에서 3.88로 크게 낮아졌다. 담임 목회자에 대한 만족도는 목회자의 위상과 관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 대한 교인의 충성심, 그리고 교인의 신앙 성숙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이 결과는 매우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인들은 현 교회의 담임 목회자에 대하여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을까? 교인들의 소속교회 담임 목회자에 대한 만족도를 보면 ‘만족’이라는 응답이 82%로 높다. 그러나 이 가운데 ‘매우 만족’이라는 응답은 11%에 머물고 있다(‘약간 만족’ 71%). 더욱이 그 비율은 1998년의 40%, 2004년의 33%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지고 있다. 목회자들이 더 이상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목회자 일반에 대한 교인들의 평가 역시 긍정률이 높은 편이기는 하지만 담임 목회자에 대한 평가보다는 낮다. 한국교회 목회자에 대하여 “만족한다”(매우+약간)는 긍정적 응답 비율은 “신앙생활에 있어 솔선수범 한다” 77%(5점 만점에 3.90), “개인적인 물질에 욕심이 없다” 57%(3.65), “지도력(리더십)이 있다” 72%(3.84), “도덕적, 윤리적으로 모범적이다” 69%(3.78), “정직하다” 70%(3.80), “권위주의적이지 않다” 52%(3.48)로 나타나고 있다.34) 단 하나의 항목에 있어서도 5점 만점에 4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72%(3.77)에 머물고 있다. 교인들에게는 목회자의 위상과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위에 나타난 목회자 신뢰도 수준은 결코 높은 것이 아니라고 하겠다. 교인들로부터 목회자가 절대적인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한국교회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 목회자에 대한 한국인 일반, 비신자들, 특히 무종교인의 평가는 충격적일 정도로 매우 부정적이다. 예를 들어 2010년 기윤실의 조사 결과 한국인 가운데 “목사님의 설교와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응답자는 22%로 100점 만점에 45점에 불과했다. 더욱이 무종교인의 목사에 대한 신뢰도는 11%에 머물고 있다. 2012년 한목협 조사에서도 “개신교 목회자의 설교와 행동에 믿음이 간다”는 응답 비율은 비개신교인 가운데 24%로 낮게 나타나고 있다. 그들 가운데 “목회자의 자질이 낮다”고 평가한 비율은 75%에 이르고 있다. 비록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인들의 목회자 평가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해도 교회 밖에서 보는 목회자상이 매우 부정적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목회자는 교회를 대표하는 얼굴이기 때문에 목회자에 대한 사회적 인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앞으로 더욱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4. 표류하는 한국교회와 목회자의 멍에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이 위기의 중심에 목회자들이 있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목회자들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지만, 또한 그 역할 때문에 실추된 교회의 위상에 대한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가 표류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문제 해결을 위한 목회자의 과제에 대하여 생각해보기로 한다.

1) 표류하는 한국교회: 세속화의 덫

한국 개신교인은 종교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고 종교성도 매우 강하다. 그러나 이것이 교회 안에서는 자랑일 수 있어도 교회 밖에서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사회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는 한 교회는 성장할 수 없다. 불행하게도 현실을 보면 교회가 세상에 감동을 주기보다는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37) 왜 한국교회는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가? 한 마디로 너무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교회가 세상과 다르기를, 사람들은 교인이 그들과 다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교회가, 교인이, 그리고 성직자도 다르지 않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고 있다. 많을수록, 클수록 좋다는, 그리고 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천민적 자본주의,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다. 종교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세상이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은 늘지만,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은 줄고 있다.38) 결국 영적인 쇠퇴가 양적인 쇠퇴를 초래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변해야 한다.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는 세속화(secularization)를 극복하는 일이다. 원래 ‘세속화’란 사회학적으로는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전문화, 합리화, 사회분화, 다원화, 세계화와 같은, 후기산업사회의 변화된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을 의미하는 다소 중립적인 개념이다.39) 그러나 여기서는 ‘성스러움’란(the sacred)과 반대되는 ‘세속주의’란(secularism)라는 의미로 사용될 것이다. 세속주의 혹은 세속화는 신적인, 거룩한, 영적인, 저세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인간적인, 속된, 물질적인, 이세상적 가치가 사회, 그리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한국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 역시 세속주의에 물들어 세속화되었다는 점이다. 세속화는 ‘영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은 영성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세속화의 전형적인 양상은 맘모니즘이다. 맘모니즘(mammonism)이란 부, 돈, 재산, 소유, 재물, 물질을 절대시하거나 그것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나 행위를 의미한다. 맘모니즘은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물량주의, 물신숭배 풍조를 나타내는 용어이기도 하다. 2천 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는 가난할 때 영적으로 충만했지만, 부유해지면서 영성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하여 신앙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초대교회는 4세기에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 공인되자 몰수당했던 재산을 돌려받고 경제적 특혜도 누리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박해가 교회에게 바치는 헌금이었고, 순교가 교회의 자산이었으며, 가난이 교회의 영적인 부였다.40) 그러나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정치적으로 힘이 커지면서 더욱 돈과 권력과 명예를 탐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다. 한마디로 교회가 세속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돈으로 성직을 매매할 뿐만 아니라 중세기에는 면죄부를 판매하기까지 했다. 면죄부 판매는 돈으로 성령의 은사를 살 수 있으며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즉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맘모니즘의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러나 개신교도 맘모니즘과 같은 세속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개신교가 점점 커지면서 그 교회도 제도화되기 시작했고, 이렇게 제도화된 교회는 점차 부유해졌다. 이러한 부는 교회로 하여금 물질 가치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돈에 의지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교회가 영적, 도덕적 능력을 상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감리교 역사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18세기 말 미국의 처음 감리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했지만 신앙적 열정이 대단했다. 초기 감리교 목회자들과 평신도 설교자들은 산간벽지, 오지에도 찾아갔고 순회하며 전도했다. 그들은 다른 교파 목회자 보수의 삼분지 일, 오분지 일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느 곳에도 찾아 나섰다. 이러한 열정은 미국 감리교회를 선교 100년 만에 미국 최대의 교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점차 미국 감리교회는 부유해졌고, 물질에 의존하게 되면서 신앙적 열정이 식어갔다. 예를 들어 1790년 감리교 총회는 켄터키 주의 한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열렸으나 1883년 총회는 당시로는 엄청난 거금인 5,500 달러를 들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를 빌려서 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참석자에게는 좌석의 위치에 따라 50-90 달러씩 받았고, 특석은 100 달러를 받고 좌석을 팔았다. 미국 감리교회는 부유해지면서 존경, 화려함, 풍요로움, 편안함, 즐김, 공명심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세속화되어 영성을 잃어버리고 교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되어 결국 미국 감리교의 교인 수는 1970-2010년의 40년간 1,400만 명에서 800만 명으로 6백 만 명이 줄었다(-46%). 이것은 유럽과 미국의 대부분 주류 개신교 교파들이 겪고 있는 현상이다.44) 부와 명성에 대한 의존은 종교의 영성과 도덕성을 약화시키고, 이에 따라 점차 신앙의 힘은 물질의 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대의 정교회는 호화, 사치, 부의 상징이었다. 민중의 고통을 외면한 채 러시아 정교회는 십자가 없는 부활, 고난 없는 영광만을 추구했다. 금, 은, 보화로 장식된 교회에서 성직자들은 부와 권력을 탐하며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러시아 혁명(1917년) 당시 모스크바 재산의 삼분지 일이 교회 재산이었다고 한다.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교회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우선적인 공격 대상이 되었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처형되었고, 교회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으며, 종교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45) 맘모니즘에 젖어 세속화된 러시아 정교회는 이러한 뼈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란이 최고의 지상과제가 되면서 우리나라에는 국가 차원이나 개인 차원에서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절대적 가치가 되었고, 이에 따라 점차 “돈이 최고”이며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천민적 자본주의와 결합된 물질만능주의 풍조가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일확천금이나 벼락출세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바르게 살기보다는 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루저(loser)로 낙인찍히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돈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간절한 바람과 함께 ‘황금우상’란 혹은 ‘돈 신’란을 섬기는 맘모니즘이 하나의 강력한 대체종교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한국교회마저도 그동안 크게 성장하면서 서서히 맘모니즘에 물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비록 아직 영세한 교회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교회의 급성장은 경제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성장과 성공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물질주의, 경제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보고 이것을 절대시하는 맘모니즘의 세속화 덫에 빠지게 만들었다. 세속화의 흔적은 무엇보다 한국교회에 만연하고 있는 물량주의 가치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회에 대한,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같이 물량적인 척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회는 그 조직의 운영 면에서 신도의 숫자, 건물의 크기, 예산의 규모 등을 비롯하여, 성직자의 사례비에 이르기까지 물량적 지표들이 목회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크고 많아야만 성공적이라고 보는 천민적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교회는 성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고, 교회는 커야만 목회자가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교인에 대한 평가도 헌금 액수나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이러한 물량주의는 교회 세속화의 다른 양상인 성장제일주의 혹은 팽창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교회의 성장은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교회의 존재이유나 최종적인 목표가 성장 자체에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목적전치(目的轉置)라고 한다.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성장을 지상적인 목표로 삼아 질주해 왔다. 결과적으로 양적인 성장이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이 교인들의 신앙 성숙이나 영성 훈련이 아니라 오로지 교회의 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왔던 것도 사실이다.46)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세를 늘리는 일에 몰두하여 내실 없이 외형만 비대해지는 교회, 그리고 모양만 갖춘 교인들을 양산해내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개체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만 교회의 모든 물적, 인적, 시설 자원을 투입하는 개교회주의가 이렇게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나아가 교회의 양극화를 초래한다. 사회보다 심한 빈부격차가 교회들 가운데 생겨난 것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무서운 자본주의 원리가 교회에서도 적용되면서 수많은 작은 교회들은 인적, 물적, 시설 자원에 있어 매우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교회의 경제적 양극화에 대해서는 목회자의 94%, 교인의 81%가 “심각하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47)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 끝없이 성장만 하려는 지나친 욕심이 교회 간에 심각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헌금은 복을 받는 수단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헌금을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의 척도’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헌금의 액수가 많고 적음을 통해 신앙의 크게 작음을 판단하고 있다.48) 헌금은 이미 주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더 많이 바치면 더 많이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이 세상의 것과 거래하는 상거래 같은 행위로 만드는 것이다.49) 헌금으로 복을 사고파는 것과 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복채를 내듯이 금품을 제공하는 대가로 구원을 위한 기도를 대신해주는 형태는 “구원과 화폐의 교환”이라고 할 수 있다.50) 교인들의 신앙을 성숙하게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영적 부흥회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부흥회(富興會)로 둔갑하는 일도 허다하다. 기도원 가운데는 그것이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경우도 있으며, 기도원이라는 이름의 상당수 수용소 형태의 요양기관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사례도 많다.

세속화는 교회를 상업주의에 물들게 한다. 대형교회가 많은 개척교회를 같은 이름으로 세우고 중앙 통제를 하며 체인화 하는 것도 상업주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부흥회 때 부흥사가 헌금액수를 불러가면서 ‘외상헌금’을 작정하라고 강요하며 손을 들게 하는 것은 경매장의 풍경과 비슷하다. 상회(上會)에 대한 부담금을 적게 내기 위해 혹은 다른 목적으로 교회 수입에 대한 이중장부를 만드는 일도 대형교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 기업체의 편법적인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교회의 평신도들은 기업체의 주주가 된 것처럼 기업 경영자를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예를 들면 기업 실적이 부실할 때 그 책임을 물어 기업 대표를 주주총회에서 갈아치우는 것) 교회의 목회자를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에 부응하여 목회자는 교회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킬” 목적으로 목회지침을 세우고 전략을 꾸미는데, 이것은 흡사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비슷한 것이다.51)

미국의 종교학자 존 드레인(John Drane)은 특히 대형교회에서 성장을 목적으로 교인들을 날림으로 손쉽게 생산하는 교회 현상을 ‘교회의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the Church)라고 부르며, 이것이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52) 맥도날드의 특징은 ‘인스턴트’라는 것이다. 맥도날드에서는 빠르고 쉽게 목적(식사)을 달성할 수 있다. 기독교가 인스턴트식품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기독교인은 꾸준히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삶의 미래에 대해 기도하고 내면 깊숙이 기독교의 사상과 가치를 받아들여 오랫동안 동화시킴으로 기독교인의 성숙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대형교회에서는 짧은 시간에 설교 테이프 듣고, 책 몇 권 읽으면 영혼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능률 위주의 목회전략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앙의 여정은 불편을 최소로 줄이면서, 가능한 한 빨리 여행 목적지에 도달하는 관광산업과 같은 것이 아니다.53) 그것은 오랜 기간의 경험과 훈련과 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앙의 여정은 일종의 순례의 여정과 같은 것이다. 복음이 상품화되고 교회가 마케팅 전략에 의존하게 되면, 교인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패스트푸드가 편리하고 쉽고 맛은 있어도 건강에는 좋지 않은 것처럼 ‘인스턴트’ 신앙은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54)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들이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들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 세속화의 극치는 무엇보다 성직매매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각 교단장 선거와 교파연합 조직의 대표 선거는 온통 돈 잔치로 물들어 있다. 관권과 금권 등 이른 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이 압승을 거두는 일반 사회 정치판의 선거 양상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것이 대부분의 교단선거다. 사회적으로는 엄격한 법에 의해 돈으로 매표를 하는 행위가 줄어들고 있으나, 교회에는 이러한 구태가 여전하다. 교회를 사고파는 행위도 일종의 성직매매다.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면서 프리미엄을 후임자에게 받기도 하고, 교회가 후임자를 구할 때 교회 빚을 갚아 줄 수 있는 목사를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신도수와 재산에 따라 권리금을 얹어 매매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각종 교회관련 신문, 잡지에는 줄지어 교회 매매광고가 나오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에서 돈을 받고 목사직을 날림으로 남발하는 행위도 성직매매의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 세속화의 또 다른 형태는 과소비와 사치풍조다. 교회건축 과정과 함께 예배당을 꾸미는데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엄청난 은행 빚을 진 후 이를 갚지 못해 파산하거나 교인들에게 무리하게 건축헌금을 요구해서 그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일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늘 비어 있어 언제든지 사용이 가능한 교회를 두고 교계 지도자급 인사들의 모임이나 교회 관련 행사를 값비싼 호텔에서 치루는 경우도 많다. 이름뿐인 과시성 대회를 개최하면서 많은 돈을 낭비하는 일도 흔하다. 순수한 선교 활동이나 대회, 집회가 아니라 교회 예산으로 실시하는 유람과 관광의 성격을 띤 해외여행도 문제다.

이렇게 오늘날 한국교회는 표류하고 있다. 세속화, 특히 맘모니즘의 덫에 빠져 신앙의 본질을 상실하여 사회적인 존경과 신뢰를 잃어버렸다. 이러한 문제적인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누가 이 일을 주도할 수 있을까? 바로 목회자들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멍에인 것이다.

2) 한국 목회자의 멍에: 영성의 되찾기

어느 시대이건, 어느 종교든 세속화되면, 특히 맘모니즘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종교는 부패하기 마련이며, 새로운 개혁이나 갱신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소멸되거나 쇠퇴하거나 침체되었다. 즉, 종교 타락의 전형적인 양상은 종교가 지나치게 부와 권세와 명예를 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상황도 비슷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는 점차 부유해졌다. 그러나 그 결과의 하나로 교회에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는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든가 형식만 남게 되었다. 교회의 중심에는 신앙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거대한 맘모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세속화되어 이세상적 가치에 물들고, 기복적이고 도구적인 신앙에 젖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국교회가 이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부가 증가하면서 교만, 분노, 육의 욕망, 삶의 자만, 세상에 대한 사랑도 비례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종교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그 정신은 손쉽게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라는 웨슬리(John Wesley)의 경고는 세속화되어 맘모니즘에 물들어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준엄한 경고일 수 있다.55)

어떻게 한국교회는 세속화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길은 단 하나다. ‘영성’(spirituality)을 회복하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영성’이라는 용어가 너무 흔히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시금 ‘영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는 세속화되어 영성을 상실했고, 이것이 한국교회 위기의 근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성은 신앙의 본질이며, 교회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신적인 가치, 영적인 가치, 성스러운 가치, 초월적인 가치, 신앙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명령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영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비움의 영성’이다. 이것은 ‘가난의 영성’이요, ‘낮아짐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이 가난해져야 한다. 물론 한국교회의 삼분지 이가 미자립교회이며, 많은 교회가 경제적으로 여전히 가난하다. 그러므로 가난해져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부유한 교회, 소위 성공한 교회 지도자다. 물질과 권력은 영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 물론 경제적 부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경제적 수단 없이는 교회가 유지되고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라도 비워야 한다. 이것은 성공에 대한 우월감과 성장에 대한 자만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먼저 교회 지도자, 특히 대형교회 목회자는 스스로 낮아져야 한다. 그것은 대형교회 목회자나 교계 지도자일수록, 성장과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자부하는 목회자일수록 권력과 물질과 명예에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 지도자가 마음을 비워야 한국교회는 살 수 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 권세, 명예는 내려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영적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영성은 종교만이 가지고 있고, 핵심적인 종교적 가치이기 때문에 종교의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불행하게도 한국 개신교의 영적 수준은 매우 낮다. 한 조사 결과 “한국교회가 영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는 응답자는 한국인의 15%에 불과하며, “교회 지도자의 영적 자질이 우수하다”는 비율도 19%에 머물고 있다.56) 목사로 불리기보다는 박사나 교단 직책 혹은 온갖 모임의 장, 대표, 고문 등으로 불리기 좋아하는 목회자, 교단 혹은 교회연합 정치에 몰두하는 목회자, 성공과 출세,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목회자, 자신의 영적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는 목회자로서는 한국교회의 영적 수준을 끌어올릴 수 없다. 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종의 자세가 절실히 요구된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비움의 영성’이 목회자를 높일 것이며, 교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바름의 영성’이다. 이것은 ‘참됨의 영성’, ‘곧음의 영성’이라 하겠다. 이것은 또한 도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도덕성이란 바르고 의롭게, 정직하고 신실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 목회자와 교인의 삶은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칭송받을만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이, 사람들이 목회자와 교인을 평가하는 잣대는 신앙의 수준이 아니라 도덕적 수준이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올곧게 살아야 한다. 특히 성직자가 품위를 잃어 사회의 지탄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의 도덕성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부정적이다. 도덕성의 수준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는 말과 행동이 얼마나 일치하는가 하는 것이다. 한목협의 조사 결과 향후 개신교회가 신뢰받기 위해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지적된 것은 첫 번째가 “교인과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일치”(49%)로 지적되었다.57) 이것은 한국교회 교인과 목회자의 신앙은 좋지만 삶의 모습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을 반영하는 결과라 하겠다. 따라서 목회자와 교인이 바르게 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름의 영성’은 특히 교회 지도자에게는 결정적인 것이다. 그런데 목회자의 도덕성에 대한 평판은 별로 좋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직업인들의 정직/윤리 수준을 평가한 조사 결과에 있어서 신부가 1위를 차지했고, 승려는 3위, 목사는 5위에 머물고 있다.58) 교회 지도자 가운데 금전적인, 혹은 성적인 비리가 드러난다든가, 일부 대형교회에서 목회자가 교회를 사유화하고 담임 자리를 세습한다든가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교단 내에서, 그리고 초교파 단체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도자들의 권력 다툼과 갈등도 교회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킨다. 이러한 일은 모두 ‘바름의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바름의 영성’을 확립하는 일은 한국교회, 특히 목회자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셋째는 ‘나눔의 영성’이다. 이것은 ‘섬김의 영성’, ‘돌봄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영성은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된다. 물론 한국교회는 그동안 사회봉사와 구제에 가장 앞장서왔고, 착한 일을 많이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59) 고아원, 양로원, 모자원, 교도소, 병원 등을 찾아가 위로하고 도움을 주는 교회, 교인이 많이 있다. 도시빈민,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정을 돌보는 교회, 교인도 많다. 북한 주민을 돕고 가난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들을 찾아가 의료, 교육, 복지 등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교회, 교인도 적지 않다. 다행스럽고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그리고 교인은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아직도 충분히 나누지 않고 있다. 이 점에 있어 한국교회 목회자는 모범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목회자 가운데 정기적으로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46%, 교회 헌금 외에 사회 기부금을 내는 비율은 39%에 머물고 있는 반면에, 교회 밖의 어떤 사회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비율이 32%나 된다.60) 전체적으로 보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엄청난 물적, 인적, 시설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을 더욱 내어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에는,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배고프고 목마르고 춥고 아프고 외롭고 슬프고 힘든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물질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고 희망을 나누고 믿음을 나누는 일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섬김을 통한 사랑의 실천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의 하나일 뿐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신뢰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이와 같이 너희 빛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 5:16). ‘나눔의 영성’ 역시 시대가 요청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또 다른 과제라 하겠다.

5. 맺는 말

지난 196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생겨난 경제주의와 이에 편승한 천민적 자본주의 풍조는 세속화의 전형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부도덕성의 근원은 특히 바로 물신(物神) 숭배로 대표되는 세속화 현상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사람들 마음속에 이렇게 세속화, 특히 맘모니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도덕성, 공동체성, 정체성을 상실했다. 특히 종교의 세속화는 신앙의 본질에 있어서, 종교의 존립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의 사회적 평판에 있어서 더욱 치명적인 것이다. 그것은 세속화가 영적이고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고귀함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세속화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했고, 그것을 넘어설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물결에 휩쓸려 표류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이세상적 부와 명예와 지위에 탐닉하면서, 그동안의 성공신화에 취하여 자만하면서 교회의 본질인 영성을 잃어버렸고, 이것은 나아가 사회적 공신력 상실과 교회의 양적 쇠퇴를 가져왔다.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없고 누릴 것이 없었을 때 오히려 신앙적인 역동성이 있었고,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그러나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서 한국교회는 영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교회의 양적 성장이 영적 쇠퇴를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공신력의 상실로 이어졌다. 성공에 취하여 그 열매를 즐기는 동안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멀어져갔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지만, 한편 순수한 신앙, 사회변형의 에토스를 잃어버렸다. 교회는 커졌으나 섬기는 종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부유해졌지만 교만해졌다. 그래서 8만 개의 교회를 얻었지만 사회적 신뢰를 잃어버렸다. 9백 만의 신도를 얻었지만 사회적 존경심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서구 선진사회를 닮아가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 상황은 교회성장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교회가 영성을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잃고 있다. 한국교회 신뢰 회복을 위한 지상명령은 영성의 회복이다. 이때 영성 회복의 우선적인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으며, 한국교회 신뢰 회복의 열쇠 또한 목회자가 쥐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한국 개신교가 신뢰를 받기 위해 바뀌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 첫 번째 대상 혹은 내용은 “교회 지도자들”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61) 한국교회, 그리고 교인들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역량은 주로 목회자들에게 있다는 점이 분명하다.

이제 한국교회는 변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달라져야 한다. 이것은 나아가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 변화의 핵심은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마음을 비우는 ‘비움의 영성’이 필요하다. 바르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바름의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섬기고 돌보는 ‘나눔의 영성’을 더욱 키워야 한다. 한국교회의 미래적 비전은 단 하나 뿐이다. 참된 영성을 되찾는 것이다. 이 역할 수행과 책임의 중심에 목회자가 있다. 이것이 오늘날 표류하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한국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요 멍에인 것이다.

이원규 교수  churchr@church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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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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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운 2014-08-13 04:53:27

    기독교 복음 전파와 선교, 전도의 핵심은 나눔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교회가 커져 갈 수록, 교
    회안에 헌금이 많이 쌓이면, 쌓일수 록 그것은 그많큼 성경의 복음으로 부터 멀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삭제

    • 브라운 2014-08-13 04:52:24

      사실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섬기는 종교입니다.
      개신교 목사나 사제들은 구약과 신약이 왜 나뉘어져 있는지 그 근본이유에 대해서는 슬쩍 넘
      어가면서,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경을 가져다가 신약과 적당히 섞어서 자신들의 경전인양 인
      용합니다.   삭제

      • 브라운 2014-08-13 04:51:11

        구약은 예수의 출현을 예고하는 역사였고, 신약은 그리스도 이후의 행적과 기록을 담은 역사입
        니다. 따라서,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도들은 신약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와 사도, 사도
        행전의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을 그들의 삶의 모델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삭제

        • 브라운 2014-08-13 04:48:09

          만일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실천하지 않고, 말로만 가르친다면, 최고의 위선 종교이며,
          최고의 사회악이 될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속에는 나눔, 희생뿐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버리는 헌신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삭제

          • 브라운 2014-08-13 04:46:58

            따라서, 기독교의 지도자(목사, 사제, 교황)들은 말로하는 전도가 아닌, 자신들의 삶 자체에서 메세지를 전하
            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야 할 것이며, 이것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삶을 욕되지 않게하고, 나아가 기독교의
            가르침을 좇는 기독인들의 삶에 거울이 될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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