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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2009/07/22) 제42회 국가조찬기도회 설교

1945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1947년 8월 15일에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우리나라는 36년간 일본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반면, 인도는 무려 200년간이나 영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1900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운명에 처해 있었습니다.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한 예루살렘 함락과,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이스라엘 영내 모든 유대인 추방령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나라 잃은 백성으로 로마 제국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900년 동안을 살아오다가 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 시오니즘 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런 민족주의 운동을 통하여 유대 민족지도자인 벤구리온(David BenGurion 1886~1973)은 마침내 우리나라가 정부를 수립한 해인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건설하였고, 유대인들은 1900여 년 동안의 나라 없는 설움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이스라엘의 독립은 바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굳건한 믿음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텔아비브에서 국가 수립을 선포할 때 성경 아모스서를 낭독하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나라를 수립케 된 것이 옛 예언자들의 예언의 성취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400여 년 간 종살이를 했고, 무려 1900년 동안이나 나라 없이 세계를 이리저리 방황한 민족이 확고한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한 나라를 이루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조차도 약속한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죽음의 순간에서도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 되는 비결이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 신명기서 28장 1절에 나와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신 28:1).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 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특권적 선민의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였고,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은 배타적 민족주의 사고로 세계 평화에 역행하는 모습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유대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 각 나라로부터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신뢰를 얻고 세계 평화에 적극적으로 이바지하는 최고의 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신명기서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우리 민족이 뛰어난 민족이 될까요? 오늘 읽은 신약 누가복음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 속에서 우리는 뛰어난 민족이 되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오늘 여기에 모인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으로부터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칭찬 받았던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우리 민족을 뛰어난 민족으로 만드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이 시대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최고의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위대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민족은 뛰어나게 됩니다.

로마 백부장은 자신이 신임하는 종이 병들자 자신의 높은 사회적 신분과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피지배민족인 예수께 자신의 종을 구해달라고 겸손하게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의 요청에 응답하신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식민지지배계급인 백부장은 피지배계급인 예수 앞에서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제 식민지 시절 일제의 고급관리가 조선의 청년 앞에 자신을 겸손하게 낮춘 것입니다. 지배계급답게 권위적으로,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렸어도 될 텐데 백부장은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눅 7:6~7).

4년간의 남북전쟁이 북군의 승리로 끝나고, 링컨 대통령과 스토우 부인이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북군의 지도자로서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고, 다른 한 사람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작품을 통해 인간평등을 주장했습니다. 링컨은 스토우 부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이 정말 스토우 부인입니까? 위대한 소설을 쓴 부인의 용모는 강인할 줄 알았습니다.” 스토우 부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 소설을 쓴 사람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노예제도를 보고 노여워하신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그분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 일보다는 대통령께서 하신 일이 더욱 놀랍습니다. 저는 단지 제 생각을 글로 표현할 뿐이었는데, 대통령께서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얘기를 듣던 링컨도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저 역시 단지 미천한 하나님의 도구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사람을 써 주신 것이 감사할 따름이지요. 부인! 오직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시다.”

겸손한 지도자가 역사를 창조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지도자들은 모두가 겸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히 모든 계획과 방법과 과정을 주님께 무릎 꿇어 구하였던 겸손한 신앙인들을 택하시어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민족은 뛰어나게 됩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자녀를 살리려고 예수께 사람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종’을 살리려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종이나 노예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라기보다는 움직이는 재산 정도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래서 노예는 그 어떤 법의 보호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컨대, 로마 귀족이라 할지라고 길가는 시민에게 상해를 입히는 것은 정치적 사건이 되었지만, 집안에서 노예를 고문해서 죽이는 것은 그냥 점잖지 못한 행동쯤으로만 치부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노예나 종은 인간이 아니라 인격을 결여한 가축 정도로 취급되었습니다.

이런 비천한 종을 위해 백부장은 유대인의 장로까지 예수께 보내어 병을 고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그 종의 인격을 존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관계를 뛰어넘어 비천한 종을 인격체로 보고, 그 종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해서든지 덜어 주려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 이러한 백부장의 따뜻한 마음이 마침내 예수님의 발걸음을 그의 집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신자는 이렇게 백부장처럼 모든 이해관계를 뛰어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핵심 가치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 성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에는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을 실천하시며 지극히 작은 자와 원수, 그리고 자연까지도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보호’가 아니라 ‘경쟁’이 우선시되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경제 양극화와 생태계 파괴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데 정치, 경제, 사회, 종교 지도자들이 한 마음으로 지혜를 모으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경제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지원을 하는 나라로 큰 발전을 이룩하였습니다. 이제 몇 달 후 11월에는 G20 정상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될 정도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빠르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외형적인 국가 위상에 걸맞게 내부적으로도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사회에 대한 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성육신의 신앙을 본받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비정규직, 영세상인, 장애우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돌보고 위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성육신의 신앙 없이 예수의 사랑을 말할 수 없고, 소수의 특권층만이 잘 사는 사회로는 선진국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쟁’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호’를 원하신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경주에 가면 최부자 집이 있습니다. 12대 삼백년 동안 만석꾼이었습니다. 최부자 집의 가훈은 네 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가훈의 첫째는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는 것입니다. 이웃집에서는 70%의 소작료를 받는데, 최부자 집에서는 소작료를 40%만 받고, 재산은 만석만 유지했습니다. 욕심을 버렸던 것입니다. 둘째 가훈은 ‘지나가는 길손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이 가훈에 따라 최부자 집은 1천석은 가족끼리 먹고, 1천석은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는데 섰습니다. 셋째 가훈은 ‘주변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는 것인데, 이는 제대로 된 노블리스 오블리제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사회적 책임을 다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훈은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아라’는 것입니다. 최부자 집은 부와 권력을 동시에 쥐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깨닫고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린 것입니다. 최부자 집은 공들여 이룩한 자신들의 부가 고통 받고 있는 이웃을 돕는 데에 사용되기를 원했습니다.

선조들의 이런 공동체 정신을 본받아 이웃을 배려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런 이웃사랑의 아름다운 전통을 믿음 안에서 잘 계승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이런 이웃사랑이 널리 행해진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브레이크가 파열돼 제어할 수 없는 자동차처럼 인간의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 빚어낸 자연환경의 훼손은 이미 그 한계점을 넘어 인류 종말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금년만 하더라도 아이티와 칠레에 이어 이웃나라 중국에서도 강력한 지진이 벌써 두 차례나 발생하여 수십 만 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상 기후와 폭설, 홍수 등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을 입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자연재해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겸허히 자연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의 잘못된 탐욕을 회개하고, 모든 생명의 근간인 자연을 지키고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창세기 1장 28절 말씀을 통하여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는 인간중심적인 생각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위임한 권한을 오로지 인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은 지금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의 탄식과 고통은 자연만의 탄식과 고통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생태계의 파괴가 불러온 끔직한 자연재해에서 보듯이 자연의 탄식과 고통은 그 결과로서 그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탄식과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모든 피조물이 다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인간중심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연관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세상’ 에는 인간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있고, 우리는 이러한 자연과 함께 공생(共生)하는 존재이며, 자연의 본래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자연의 관리를 위탁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붙잡는 민족은 뛰어나게 됩니다.

백부장은 종이 병들었는데 다른 데로 가지 않고 예수께로 와서 종을 치유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이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날 때 겸허히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는 기도의 행위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눅 7:7). 그는 백부장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하나님의 말씀의 전능함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하면 하나이다”(눅 7:8)라고 고백했습니다. 백부장은 천지를 오로지 말씀으로만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권위, 즉 말씀의 권위를 믿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이렇게 백부장처럼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믿고 기도와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과 간절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진리 위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조선의 선비’ 라고 할 김교신 선생이 ‘성서조선’을 발행한 것도 이러한 취지에서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조선을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성서’, 즉 하나님의 말씀 위에, 즉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어떤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만이 우리나라를 500년 후에라도 번영을 누리게 할 터전이 된다는 것을 김교신 선생은 깨달은 것입니다. 참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해서 우리는 성서한국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네 가지의 덕을 말하였습니다. 철학자가 다스리는 국가에서 통치계급은 ‘지혜’라는 덕을 가져야 하고, 방위계습인 군인은 ‘용기’라는 덕을 가져야 하며, 생산계급인 상민은 ‘절제’라는 덕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세 계급이 각자에 맞는 덕을 실현할 때 마지막 덕목인 ‘정의’가 실현된다고 보았습니다.

오늘 연례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하신 많은 분들은 바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종교지도자들로서 플라톤이 말하는 통치계급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통치계급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십니다.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를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신 스스로가 예수로 성육신하셔서 당신의 지혜를 우리 모두가 구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정치지도자나 일반 시민이나 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능력과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지혜는 크게 두 가지, 즉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각자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철저할 때 우리 민족은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될 것입니다.

전병금 목사  강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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