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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성자 손양원 목사의 용서와 화해의 삶

1. 손양원 목사의 생애

손양원 목사는 1902년 경남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손종일 장로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손종일 장로는 3.1 만세 사건 때 1년간 옥고생활을 한 애국신앙인이었다. 손양원 목사는 아버지의 독실한 신앙의 영향을 받아 호주 선교사가 운영하던 진주에 있는 경남성경학원에 입학하면서 복음전도자가 되었다. 호주 선교사 맥켄지(Mackenzie) 지도를 받으면서 부산 나병원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기 시작하였고, 1935년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에 졸업한 후 여수 나병원 애양교회에 부임하여 나병환자를 위한 전도자로 사랑의 친구가 되었다. 그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체포되어 여수 경찰서에서 10개월 구금된 후에광주 구치소와 광주 형무소에서 1년 6개월 형기를 마치고 1943년 5월 17일에 출옥하였다. 그러나 그는 계속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다가 종신형을 받고 경성 구치소와 청주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해방되어 1945년 8월 17일에 석방되었다. 석방된 후 다시 여수 애양원으로 돌아가서 1946년 3월 주기철 목사가 목회하던 마산 문창교회에서 열린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1938년) 그때까지 신사참배 거부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다가 옥고를 치루면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였었다. 해방 후 좌우 대립이 극심할 때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때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가 반란군에게 총살당하여 순교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손양원 목사는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 안재선이 체포되어 사형을 받게 되는 것을 알고 안재선을 용서해 달라, 구타하지도 말라, 그 사람을 내 아들을 삼겠다고 하며 적극적으로 구명활동을 하여 결국 그를 살려서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여 가족으로 함께 살도록 하였다. 그 후 손양원 목사는 애양원 교회에서 나환자들을 돌보며 목회를 하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 모두가 피난을 갔지마는 손목사는 나환자들을 버려두고 피난을 갈 수 없다고 고집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지키다가 공산군이 쳐들어와서 1950년 9월 13일 체포당해 15일간 여수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유엔군이 참전하여 공산군이 퇴각할 때 공산군은 손양원 목사를 여수 밑 미평의 큰 과수원으로 끌고 가서 총살함으로 장렬한 순교를 하였으니 그때가 1950년 9월 29일 향년 49세였다.

2. 손양원 목사의 순교신앙의 배경

① 3.1만세 부르다가 감옥생활을 한 아버지 손종일 장로의 자녀 신앙교육
② 믿음의 스승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신앙을 계승
③ 유교적 문화 배경의 충절 사상
④ 애국애족 신앙과 민족 교회 민족 신앙의 영향
⑤ 강인하고 올곧은 성격

3. 예수님의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성자, 손양원 목사

① 구약의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고 예언자들의 순교신앙 본받음
② 신약의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여 나환자들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함, 나환자 성도들 안에서 예수의 얼굴을 봄
③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대한 신앙,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죽는 신앙
④ 예수님의 산상보훈을 철저히 실천함, 오직 성경대로 살려고 노력, 성경에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았고 하라는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함, 성격적 신앙인, 1~ 2계명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기 때문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고 무신론과 유물론자와 공산당을 거부하고 항거함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았고 순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도 더 어려운 일은 나환자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는 것이요,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요.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를 친아들로 받아들이고 입적시키는 일이요, 그 아들을 거부하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가족들로 하여금 그 신앙으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게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⑦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을 실천하는 생명존중의 신앙인이며 불덩어리 같은 전도자
⑧ 사랑의 힘이 원자탄보다 더 강한 폭발력을 가진 것을 확신하며 실천함. 사랑의 원자탄이 용서를 넘어서 화해와 평화를 만들어낸 원동력이 됨

4. 손양원 목사의 어록(손동희 권사의 저서,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에서)

손양원 목사가 아들 죽인 안재선을 용서하고 아들을 삼겠다고 공표하였을 때 반대하는 딸 동희를 설득하면서 다음과 같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동희야 내 말을 잘 들어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켜 가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냐? 그런데 그 학생이 안 잡혔다면 또 모르되 일단 잡힌 이상 모른 채 할 수가 없구나. 제1, 2계명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원수를 사랑하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그 명령은 순종하면서 이 명령을 순종치 않는다면 그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겠느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과거 5년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들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넘어질 수 없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그가 죽는다고 오빠들이 살아 돌아오겠느냐? 그를 살리고 그의 영혼을 구한다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뿐만 아리나 한 인간의 타락한 영혼을 구제해 준 보람도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 지금 시대가 바뀌었으니 보복이 반드시 뒤따를 것이다. 골육상잔은 민족의 비극이고 국가의 참사인데 이 민족이 이래 죽고 저래 죽으면 누가 남겠느냐? 두 오빠는 천국 갔으나 두 오빠를 죽인 자는 지옥 갈 것이 분명한데 내 전도하는 자로서 지옥 가는 그를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그러면서 빨리 순천으로 가서 그를 용서한다는 말을 전해서 사형되지 않도록 살려내라고 호령하였다. 동희는 악을 쓰면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면서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희는 아버지에게 울면서 말하기를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용서하면 용서했지. 아들 삼겠다는 것은 또 뭡니까? 아버지가 그 놈을 아들 삼으면 내게 오빠가 될 텐데, 날더러 그 원수를 오빠라고 부르란 말입니까? 아버지, 오빠들의 한 맺힌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원수 갚아 달라고 저 하늘에서 슬프디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오빠들이 안 보이세요? 아버지,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예수를 못 믿는 겁니까? 다른 목사님들은 그렇지 않는데 아버지는 왜 항시 별난 예수를 믿습니까? 하늘 아래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지, 제발 이러지 마세요!” 악을 쓰면 달려들었다. 손목사는 딸에게 말했다. “동희야, 성경 말씀을 자세히 보아라. 성경 말씀에는, 분명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다.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 학생을 살려 주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백 살에 얻은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 명령 한 마디에 모리아 제단에서 칼로 찌르려 하지 않았더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또 강철민(안재선)을 죽인다면 그것은 네 두 오빠의 순교를 값없이 만드는 것이 되고 만다.”(손동희,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pp. 237-238)

5. 결론

박형룡 박사는 1950년 10월 29일 손양원 목사의 순교 추모회에서 추모사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위대한 경건인, 전도자, 신앙용사, 나환자의 친구, 원수사랑자, 순교자를 가리켜 한 마디로 명명할 명사가 무엇인지 잘 모르나 아마 성자(聖者)라는 칭호를 써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125년을 맞는 우리 한국 교회는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위대한 순교자 손양원 목사를 용서와 화해의 삶을 실천한 성자(聖者)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손인웅 목사  덕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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